지난 주말엔 때롱이의 돌잔치가 있었다. 딱 직계가족까지만 불러 10명도 안 되는 인원이서 한 소소한 돌잔치였다. 그래도 나와 아내에게 그만큼 큰 행사는 없었다.
스냅사진 촬영에 돌잡이, 생일 축하가 끝나고 이제 좀 편하게 밥을 먹는데 아내가 말했다.
"나도 이제 돌끝맘이다."
돌끝맘.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래도 굳이 해석이 필요하진 않았다. 그 정도는 알아먹을 센스는 있다. 아내는 속이 후련한 모양이다.
사실 뭐 큰 행사 하나를 치러서 속이 후련하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이제 나도 돌끝파가 되었다.
때롱이가 태어나고 지난 1년은 바빴다. 그냥 바빴다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다. 몸도 마음도.
진짜 나는 다를 거라고, 정말 나는 잘할 거라 믿었던 육아가 녹록지 않았다. 때롱이 먹이는 거, 재우는 거, 놀리는 것, 입히는 것, 씻기는 것, 모든 게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또 그나마 좀 적응했다 싶으면 어김없이 뭔가 변화가 생기고, 새로운 미션이 생겼다.
때롱이 표정만 봐도 분유 몇 먹겠구나 하고 딱 감이 올 때쯤엔 새롭게 이유식을 먹여야 할 때가 됐다. 목욕시키는 게 좀 쉬워졌다 싶을 때가 되니 이젠 때롱이가 목욕 후 몸을 타월로 다 닦기도 전에 신나게 기어서 돌아다니는 바람에 딱히 쉬워질 것도 없었다.
잠이 모자라 거실 바닥이라도 머리만 붙이면 쓰러지던 때도, 이유식을 만든다고 냄비 앞에 서서 멍하니 기계같이 국자만 돌리고 있을 때도 있었다. 아빠가 되는 일에 적응하느라고 몸도 마음도 바빴다.
그래도 그냥 밋밋하게 바쁜 건 아니었다.
"힘들긴 한데, 그만큼 돌아오는 것도 많아."
육아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매번 들었던 같은 뉘앙스의 이 답변. 그 답변의 의미를 지난 1년 동안 알아버렸다. 실제로 겪어보니 저 대답이 무슨 말인지 알았다.
처음 옹알이를 하고, 혼자 앉아있고, 기어가고, 짚고 일어서는 매 순간이 하찮은 글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신비롭고, 경이로운 기쁨 그 자체였다.
몸과 마음이 바쁜 만큼 그 보답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해주는 1년이었다.
우리 때롱이 1년 동안 크느라 고생했다고, 우리 부부도 수고했다고 기쁜 맘으로 준비한 돌잔치. 조용하고 오붓하게 가족들끼리만 모일 수 있는 장소를 예약하고, 추억을 오래오래 남길 스냅사진 촬영도 예약하고, 기념일인 만큼 메이크업도 신청을 했다. 당일 우리 때롱이가 얼마나 귀여울까 그 생각을 하면서 돌잔치 당일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 돌잔치를 일주일 앞두고 하필 우리 엄마, 아빠가 코로나에 걸렸다. 하... 우리 때롱이를 바라보고만 있어도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던 할머니, 할아버지는 하는 수 없이 돌잔치에 참석하지 못하게 됐다.
원래부터 10명도 안 되는 인원이 하는 작은 잔치는 더 작고 오붓하게 되었다. 아쉬움이 없진 않았지만 그래도 기쁜 날인만큼 웃는 얼굴로 돌잔치는 마무리되었다.
돌잔치를 준비하는데 갑자기 아내는 나보고 성장 영상 제작을 해보라고 했다. 당연히 그러겠다고 했다. 영상 제작에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닌데, 나름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내가 만든 때롱이의 성장 영상이 나왔다. 전문업체에 맡기는 것보다야 훨씬 퀄리티가 떨어지는 부끄러운 영상. 그런데 그 영상을 자꾸자꾸 틀어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몇 분 남짓 영상에 영상미나 센스는 찾아볼 것이 없다. 그냥 영상에 나오는 때롱이의 지난 모습을 보는 게 기분이 좋았다.
저렇게 누워만 있을 때도 있었구나. 지금은 입지도 못하는 저 옷들이 저 땐 저렇게 컸구나. 하면서 보고 또 보고 했다. 돌 다음 날도 영상을 돌려보곤 했다.
성장 영상도 아직 질리지 않았는데 오늘은 돌잔치 때 찍은 스냅사진이 메일로 왔다. 엄청나게 많은 사진이 왔는데, 사진 한 장 한 장 살펴보는 것이 즐겁다. 또 얼마나 그 사진들을 아내와, 부모님과 보면서 감탄을 할까.
때롱이 돌은 며칠 전에 끝났는데 아마 스냅사진들을 백만 번을 더 보고 나서야 맘 속에서도 돌잔치도 마무리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