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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본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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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나까스이따 May 11. 2020

가장 저렴하고 간단한 한 끼 식사

규동(牛丼) - 고기덮밥

돈은 없고 배는 많이 고팠던 유학생 시절, 도쿄 외각에 위치한 기숙사 근처에서 단돈 280엔에 규동(소고기덮밥)과 미소국을 먹을 수 있는 가게를 찾았을 때 마치 사막 속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듯한 기분이었다. 일본에서 가장 서민적이고 저렴한 한 끼를 파는 프랜차이즈, 松屋(마쯔야)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일본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규동이란 음식은 얇게 썬 소고기와 양파를 달달하고 매콤한 맛을 가미한 간장에 소스의 향과 맛이 스며들게 익힌 후 밥 위에 얹어서 먹는 음식이다. 보통 미소국(味噌汁-미소시루)과 가공된 생강(紅しょうが-베니쇼가)를 곁들여 같이 먹는다.


규동의 역사적인 유래는 메이지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상업적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한 건 1899년에 설립된 요시노야(吉野家)라는 가게가 도쿄 니혼바시(日本橋)라는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이 음식을 팔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당시 일본의 하층민이 주로 먹는 음식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동경대지진 이후에 먹을 것이 궁해진 상황에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규동이 서민들에게 널리 퍼지게 되고 그 후로 가장 일반적인 서민음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요시노야는 지금도 전국적으로 가장 큰 규동 프랜차이즈이며, 스키야(すき家), 마쯔야(松屋)가 그다음으로 유명하다.


가난한 사비 유학생에게 한 끼에 700-1,000엔 정도 하는 정식집은 주머니 사정이 매우 부담스러웠고, 라면과 빵으로 매 끼니를 때우자니 건강에는 안 좋은 것 같고 이리저리 찾아봐도 규동만 한 가성비를 가진 음식은 없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밑에 세 가지 이유를 들며 규동을 찬양하고 다녔는데,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얻지는 못했던 기억이 있다.


1) 가격 : 규동 보통 사이즈가 280엔, 조금 사치를 부려 150엔 정도 보태면 계란에 사이드 메뉴를 하나 주문할 수도 있고, 규동을 더 큰 사이즈로 주문할 수도 있다.

2) 맛 : 프랜차이즈의 노하우가 만들어낸 만능 간장소스로 고기를 익히기 때문에, 간장의 짭짤한 맛과 소스의 단맛이 스며들어 밥과 잘 어울린다. 개인적으로 그 맛은 280엔 보다는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

3) 시간 : 주문이 들어가면 그 자리에서 고기를 익혀 (30-40초 소요) 밥과 같이 나오는데 걸리는 시간이 3분을 넘지 않는다.


저렴한 가격에 나름 괜찮은 맛, 밥 먹는 시간까지 절약할 수 있었으니 일석삼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규동 나에게 필요한 존재였다. 한국에서도 뜨끈하고 든든한 국밥이 가성비 면에서 최고라고 생각하며 가성비 위주의 외식생활을 했던 필자라.... 바다 건너 일본까지 와서도 가성비 관점으로 비슷한 음식에 끌리다니 사람은 어딜 가나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일본 내 가성비 최고인 규동도, 깍두기, 양파, 풋고추에 순대, 고기육수에 밥까지 같이 나오는 든든한 국밥의 가성비를 이기기는 힘든 것은 사실... 글을 쓰는 지금도 국밥 먹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든다)


그러던 중 2014년, 중국의 경제 발전에 따른 고기 수요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미국산 소고기 수입 가격의 급격한 상승으로 원재료 가격 압박에 시달리던 규동 3사 (요시노야, 스키야, 마쯔야)가 결국 규동 가격을 280엔에서 380엔으로 올리기로 결정했다. 서민 음식의 가격을 하루아침에 30프로 이상이나 올려버린 것에 분노(?)를 금하지 못했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어디 서민뿐이랴.. 회사도 먹고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인 기억이 난다. 갑자기 100엔이 오르긴 했어도, 여전히 저렴한 서민 음식임에는 변함이 없었기 때문에, 졸업하고 일을 시작해 월급을 받기 전까지 수도 없이 이용했던 것 같다.


チカラめし(치카라메시) 나 なか卯(나카우)라는 조금 마이너 한 가게들도 있지만, 일본에서 처음으로 규동을 먹는 분들에게는 메이저 규동 3사(요시노야, 스키야, 마쯔야)를 먼저 시도해 볼 것을 강력히 권하고 싶다. 필자는 마쯔야에서 반년 정도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규동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접할 기회가 많았는데 규동의 맛을 결정짓는 소스가 다 다르고, 소스가 다르니 규동의 맛도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규동의 원조로 꼽히는 요시노야가 가장 맛있다고 하는 분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쯔야 규동이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다. 맛의 차이는 미묘해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요시노야는 전통적인 소스를 오랫동안 꾸준히 사용해오는 느낌이 강하고, 마쯔야가 조금 더 현대인의 맛에 맞게 소스를 개량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스키야 규동은 웬만해선 거의 안 먹는다. 맛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면, 가격도 저렴하니 가게별로 한 번씩 시도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음식 자체가 너무 서민적이고 저렴하기 때문에 일본에 여행을 오시는 분들에게 규동을 추천하는 것이 조금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일본의 가장 서민적인 음식을 한 번쯤 먹어보고 싶다거나, 배낭으로 여행을 와 비싼 교통비와 숙비가 부담스러워 식비를 줄이고 싶으신 분들, 편의점에서 라면과 빵으로 한 끼 때울 바에는 규동 집을 가라고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일반적으로 역 주변에는 거의 대부분 규동 집이 있기 때문에 찾는데 어려움은 없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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