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식사를 하러 식당에 왔다. 이 집에 온 적이 있었나? 나무로 된 테이블과 의자가 빽빽하게 들어선 가게 안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동료들보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4인용 테이블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두 손 가득 들고 있던 옷 무더기를 벤치형 의자에 내려둔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맡아 둔 자리에 모르는 사람들이 앉아있다. ‘자리도 많은데 굳이 왜 여기에 앉지’라고 생각하며 놓아둔 옷을 가지러 간다. 그들이 벗어둔 옷과 내 옷이 마구 뒤섞여 있다. 얽히고설킨 옷 사이에서 내 옷을 골라내려는데 옷 무더기에서 옷을 빼내는 것조차 어려웠다.
가게를 둘러보니 동료들이 도착하여 한쪽 자리에 앉아있다. 재킷 하나를 찾지 못한 채 동료들을 향해 가는 사이, 어릴 적 오래 살았던 아파트 상가 앞에서 옷 무더기를 들고 서있는 내가 있다.
동료들이 기다리는 그 식당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곳이 어딘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잠시 멍하니 서 있는데 저 쪽에서 사촌 언니가 보인다.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어떤 축하를 받고 있다.
왠지 마주치면 안 될 것 같아 그 앞을 몰래 지나치려는데 들고 있던 옷 무더기에서 신발 깔창이 떨어졌다. 잠깐 주울까 고민하다가 모습을 들킬 것 같아 급하게 택시에 올라탄다. 떨어진 깔창이 멀어진다.
어디에 내려야 하는지 목적지를 모른다. 택시기사의 재촉에 대충 이쯤에서부터 찾아야겠다 싶은 곳에 내려달라고 한다. 택시에서 내리려다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윗부분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심하게 부서졌다.
택시기사가 휴대폰이 깨졌다고 말한다. 택시 밖에 떨어진 나머지 부분을 주워 액정을 본다. 그 휴대폰은 내 것과 같지만 내 것이 아니었다. 깨진 휴대폰엔 ‘엄마’라는 두 글자가 떠있다. 부서진 조각을 택시 뒷자리에 둔 채 황급히 차 문을 닫는다.
깨뜨린 걸 은폐하려고 주머니 속에서 열심히 지문을 닦는다. 어디에 버려야 할지 궁리하는데 늙은 택시기사가 주름진 얼굴에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쳐다본다.
빨리 그에게서 멀어지고 싶은데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모래주머니를 찬 것 마냥 다리가 무거워 발을 질질 끌며 걸어간다.
낮은 주택들을 지나 도시의 황무지가 펼쳐진다. 부서지고 사라지고 없어져가는 것들. 아무도 없는 폐허의 언덕 위에서 저물어가는 해를 잡으려던 찰나, 무심코 뒤를 돌아보니 택시기사가 따라오고 있다.마치 주머니 속 휴대폰을 어딘가에 몰래 버릴 것이라는 걸 안다는 듯 응시한다.
공포가 머릿속을 지배한다. 택시기사에게서 벗어나고 싶은데 여전히 잘 걸을 수가 없다. 무중력 상태에서 한 발짝씩 걸음을 옮기는 것처럼 천천히 허공을 향해 발을 놀려본다. 몸에 힘을 빼고 처음 느껴보는 감각을 익히며 점차 지면을 벗어난다. 택시기사는 입을 벌리고 놀란 얼굴로 바라본다.
더 멀리 택시기사의 눈을 피해 달아나고 싶은데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어느새 택시기사도 다시 쫓아오기 시작한다. 도망치고 싶어서 신고 있던 부츠를 한 짝씩 벗어 그에게 던진다. 하지만 그에게 닿기 전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무거운 다리로는 발버둥을 쳐봐도 앞으로 잘 나아가지 않는다. 필사적으로 방향을 바꿔보지만 같은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날고 있는 이 기분이 어쩐지 나른하고 평온하다. 모두 다 버리고 풍선처럼 사라져 버리고 싶다고, 차마 던져버리지 못한 주머니 속 깨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