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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 Aug 28. 2021

워킹맘의 불렛저널 도전기 - 0


  

  상반기에 업무도 업무대로 많았지만 새로운 어떤 사람(?)에게 입덕하는 바람에 브런치를 등한시했다. 브런치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을 내던지,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다른 것에도 심드렁해졌었다.

  오랜만의 3D(현실사람) 덕질이라 감정의 널뛰기가 오가다가 출구없는 덕질에서 겨우 출구 하나 발견하고 겨우 비집고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완전한 탈덕은 아니지만 아이들 방학 기간 내내 스트리밍을 쉴 틈 없이 돌리고(숨스밍이라고 하더라;) 보이는 라디오(보라라고 하더라;)를 내내 챙겨보던 일상에서 벗어나, 업무도 추스리고 가족들도 둘러보면서 다시 나 자신을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뜬금없는 덕질 덕분에 유튜브와 친해졌다. 생전 보지도 않던 유튜브의 바다를 열심히 헤맨 덕분에, 소위 말하는 MZ세대의 사유과정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놀면뭐하니- 등으로 이어진 2000년대 초반 복고 열풍은 3,40대들의 덧글 참여로 이어졌지만 그건 열외로 하고.

  코로나의 영향으로 웹매체의 접근과 익숙함이 가속화 된 아이들은 컴퓨터와 패드, 유튜브가 여가시간의 전부이다. 포켓몬을 잡으러 간다고 하는 상황이 반가워질 정도로 집돌이 죽돌이 방돌이가 되었다.

  마인크래프트와 리듬게임에 심취해있는 큰아이(한국나이 10세)가 게임 팁을 찾기 위해 ㄴㅇㅂ 검색창이 아니라 유튜브 검색창을 이용하는 모습에 경악한 것도 잠시.

  그들은 정말로 생각하는 것들을 영상으로 찍어 올리고 영상을 찾아 보는 것이 익숙한 세대들이었다. 물론 연령대나 직장 동료들에 비해 다양한 매체와 불특정 다수와의 교류를 꺼리지 않는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사유체계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회사 일정 및 업무관리를 위한 투두리스트, 일정관리앱, 생산성관리를 위한 다양한 방법을 찾아보고 시도해봤지만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면서 양쪽의 장단점을 취사선택(이라기보다는 헤매는) 나에게는 노션이라던가 분더리스트, 할일앱을 꾸리는 클릭하는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메모로 귀결되는 회사생활이었다.

  아이패드라던가, 굿노트라던가, 전자펜 필기라던가, 그런 것들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아이폰 생태계에 완전히 몸담을 수 없는 대한민국 공공기관 근무자가 정착할 곳은 구글캘린더였다.

  회사 일정은 모두 캘린더에 몰아넣고 구글 태스크와 연동이 되니까 업무리스트도 모조리 몰아넣지만 지출서류 결재 상신, 프린트, 회계부서 전송, 전달 이런것들까지 할일 앱에 쓸 수는 없으니 결국 6월 조기집행 시기에 메모지를 다시 꺼내들었다.


  윈도우에 기본 장착되어 있는 스티키메모가 원노트 앱에 동기화 되니 가끔 자기 직전 떠오르는 업무 관련 생각을 그쪽에 적어놓기도 하지만 그 메모조차도 5월 이후로 정리를 못하게 되면서 그냥 메모장 앱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이거라도 동기화되니 망정이지, 구글드라이브부터 아이클라우드, 온갖 클라우드 시스템은 모두 막아버린 회사 네트워크 시스템에서(내년에 내부망/외부망 분리되어버리면 이것조차도 안될 것 같지만) 손글씨 메모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회사 다이어리는 너무 투박하고, 전년도 스벅 호갱으로 얻어낸 몰스킨 다이어리가 사이즈도 좋고 딱 좋아서 활용하고 있었는데 기왕 손글씨로 작성하기 시작했으니 뭔가 체계적으로 하루 일정을 체크하고 싶었다. 한참 글을 안썼으니 뭔가 사유하는 글도 써보고 싶었다.

  다이어리 앱을 수도없이 검색해보고 다운받아서 써보다가 지우고, 수차례 반복하다가 결국 파편화되는 하루하루 기록과 일정 메모들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느낌이었다.


  한글 타자수가 꽤 빠른 편이어서 현장 근무 인력 관리하는 단체 채팅방에서도 블루투스 키보드를 연결해서 자세한 내용으로 업무 지시를 내리는 편이기에 디지털을 아예 놓을 수는 없지만 칼퇴는 커녕 매일 야근에 집안 정리하고 씻고 잠들기 바쁜 워킹맘이 또 피씨를 켜고 뭔가를 타자하며 쏟아낼 시간은 사치에 불과했다.


  이런저런 고민끝에 시도한 것이 아날로그 필기가 디지털 앱에 그대로 전송되는 “네오스마트펜”이었다. 예전부터 시도해보고 싶었지만 초기 진입비용이 그리 낮은 가격은 아니었는데 충분히 검색해보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끝에, 중*나*에서 키워드 설정해놓고 알림이 뜨자마자 반도 안되는 가격에 스마트펜을 득템했다.


네오스마트펜, 보관패드, 메모장, 미니플래너 / 이런 느낌으로 저장됨

  가장 가벼운 모델이었음에도 전자기기를 내장해서였는지 무거운 느낌에 오래 필기하면 팔이 조금 아파서 빠른 필기감이 어려웠지만 이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펜심을 칼라로 바꾼다던가(스마트펜 규격 펜심을 찾아야 한다는게 조금 어렵지만), 앱에서 범위를 설정해서 색을 변경할 수 있지만 그런거 할 시간은 없고(화상강의에도 활용한다고 하는데 그것도 은근히 번거로워보였다.) 그냥 데이터 저장이 목표였기때문에 나름 만족스러웠다.


  역사전공 출신 자중독자였지만 시행착오 끝에 내린 결론은, 기록은 분명 중요하지만 전자기록은 그나름대로 정리가 안되면 그냥 데이터에 불과하고 종이기록 역시 보관, 선별, 저장, 평가 등의 체계가 잡히지 않으면 그냥 종이쓰레기일 이라는 것이었다.

(결혼 전부터 각자의 온갖 책과 메모, 필기자료 등을 끌어와서 몇 번의 이사기간에도 끌어안았던 우리 부부는 최근에 그렇게 결론을 내고 버리기 시작했다. 바쁜 맞벌이 부부에게 정리할 시간을 만드는 것도 너무 어려웠다. 아이들 육아일기 출판도 5년 이상 미루고 있는걸…)




  그와 동시에 유튜브에서 불렛저널에 대한 영상들을 계속해서 찾아봤다. 불렛저널도 몇 년 전 우울증 자가치료의 방법으로 고민했었다가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에는 영 소질이 없는 사람이라 나와는 맞지 않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리디셀렉트를 통해 불렛저널 책을 대충 훑어보기 시작하면서 흥미가 생겼다.


  분명 그 의도와 결과는 모두가 인정하겠지만 편도 출퇴근 시간 1시간 반 왕복 세시간 가까이 운전만 하는, 거의 매일 야근을 하는 워킹맘이 그대로 따라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무엇보다 그 생산된 불렛저널을 저장할 부동산도 없었다(당장 내 집에 내 책상과 내 책장도 다 빼앗긴 마당에…).


  그래서 유튜브는 참고만 하되(팁이라고 올리는 사용자들 중에 주부나 프리랜서는 있었지만 워킹맘은 찾기 어려웠다), 꾸미는 것은 모두 배제하면서 순수하게 메모와 자아성찰 기록의 의미로 운영하기로 결정하고 스마트펜과 연동이 되는 수첩을 추가로 주문했다.

  회사일정과 뒤섞일 것 같지만 어차피 전체적인 일정은 캘린더로 하고 있고 가족 일정은 ㄴㅇㅂ캘린더에 온갖 메모앱 등은 계속 유지하되 생각을 정리하고 체크할 손글씨 공간이 필요한거니까.


  무언가 서론이 길었는데 대충 셋업을 마친 불렛저널 맛보기-.

퓨처로그

  원래 무지노트나 모눈이 좋다고 하는데 연습삼아 시작한거라 줄노트로- 꾸미기 이런거 없이 줄도 안치고 그냥 내마음대로-


습관트래커

  트래커는 안하려고 했는데 그냥 줄 안치고 시도해보기로 했다. 휴대성때문에 작은 사이즈의 노트로 했더니 날짜가 다 안들어가기는 한다. 먼슬리도 선 안그리고 숫자만 적었는데도 여유공간이 없어서 이렇게 해보고 다음 노트는 불렛저널로 많이 사용하는 A5 노트로 사야할까 싶다.


  셋업에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아서 회사 업무 체크리스트와 개인 할일 리스트를 겸해서 적어보고 그 외 한줄일기, 생각 털어내기 용도로 사용해보려고 한다.


  그나마 아이들이 좀 컸으니 망정이지, 워킹맘이 이런거 할 시간이 어딨어(이러면서도 오늘 웹소설 네 권을 순식간에 읽어내렸지).

  예쁘게 꾸미고 그런거 전혀 못해서 요일, 날짜 마스킹테이프도 주문했는데 오늘 일반 마테 위에 글씨 써보니 그건 또 인식을 못하더라…(종이에 미세한 좌표가 찍혀있고 그걸 펜에 달린 적외선센서와 동시에 감응해서 앱에 전송하는 체계…)

  대충 아무렇게나 9월- 큼지막하게 쓰고 그 위에 마테 붙이던가 해야겠다(꾸밀 노력은 하지 않지만 그래도 나중에 들쳐봤을 때 포인트는 남겨보고 싶은 사람).




베로니카, 즐겁게 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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