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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소리 Apr 08. 2021

ISTJ와 ENFP의 일상의 소소한(?) 간극

ISTJ: 어제 그렇게 얘기했잖아? / ENFP: 그건 어제 얘기고.

열대지방에서 삼십 년을 산 사람과 한대지방에서 삼십 년을 산 사람이 어떻게 서로의 삶의 방식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이제 막 만났다면. 내가 열대지방의 밀림 속에서 살아왔다면 나의 ENFP는 한대지방의 이글루에서 살아온 셈이다. 나는 대학교 1학년 때 약간 방황하긴 했지만 대체로 매우 모범적인(이건 내 관점이고 아내의 관점에서는 '고리타분한'이겠지.) 학창 시절을 보냈다. 어린 시절 나는 시골에 살았는데 당시 시골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처럼 우리 집안도 매우 가부장적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읍내 장에 걸어가는 모습을 회상하노라면 열 발짝 앞서서 걸어가는 아버지를 뒤따르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풍경화 속에서 애정이라는 단어를 찾는 일은 사막 한가운데서 잃어버린 바늘을 찾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나의 ENFP의 부모님, 즉 나의 장인, 장모님은 우리 부모님보다 훨씬 더 애정표현이 풍부했다. 두 분은 하루 24시간 중에서 거의 20시간 이상을 함께 보냈다. 장인어른은 택시 기사였는데 일하러 갈 때마다 장모님을 옆자리에 태우고 다니셨다. 그러니 돈벌이가 잘 될 리가 없었다. 그분들은 애정을 선택하면서 곤궁함도 함께 선택한 것이다.  


우리 가족은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결정으로 내가 열두 살 때 도시로 이사를 나왔다. 그리고 '난쏘공'의 난쟁이처럼 아버지는 정말로 근면 성실하게 일하셨고 나는 부모님께 도움이 되는 일은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라는 일념으로 오로지 학업에 정진했다. 하지만 다분히 민주적인 집안에서 자란 나의 ENFP는 초등학교 때 외할머니의 남녀차별에 반발하여 단식 투쟁을 했으며, 중학교 때에는 언니 친구들의 숙녀 같은 사고방식에 분개하여 "인생 그 따위로 살지 마라!"라고 일침을 놓을 정도로 사회의식이 강했다. 학업보다도 학업 외적인 일에 관심이 많았던 나의 ENFP는 내가 대학 가서야 처음 들어 본 동아리 활동에 중학교 때부터 아주 열심히 빠져 있었다. 그것도 다른 학교 학생들과 함께 하는 이름도 거창한 '연합 동아리'.


남녀의 성향 차이를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말로 갈음하기도 하는데 화성과 금성은 같은 행성이라는 공통점이라도 있지, 나와 나의 ENFP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추적하면 내가 화성에서 왔다면 나의 ENFP는 안드로메다 은하 너머의 까마득한 별에서 왔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앞에서 말한 열대지방과 한대지방은 이쯤에서 수정해야 하겠다. 글을 쓰다 보니 둘 사이의 간극이 열대와 한대처럼 몇 천 킬로미터에 머물지는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온다.)


결혼 후 제일 먼저 맞닥뜨린 차이는 취침이었다. 같은 방에서 함께 자다 보니 취침 시간의 차이가 가장 큰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취침 습관과 MBTI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혹시 아는 분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시기 바란다.) 맨 정신의 나는 밤 12시 이후에 잠자리에 드는 법이 거의 없다. 아무리 늦어도 11시가 넘어가면 침대로 기어들어간다. '12시 이전의 한 시간의 잠은 12시 이후의 세 시간의 잠과 같다.'는 영국 속담이 있다던데 이 말대로라면 나는 어엿한 영국 신사인 것이다. 하지만 나의 ENFP는 12시 이전에는 거의 잠을 자지 않는다. 보통 새벽 2시경에 잠이 들어 출근하기 위해 아침 6시에 억지로 눈을 뜬다. 나의 이른 취침을 이해하지 못한 아내는 나를 '중년의 신데렐라'라며 무던히 놀렸었다. 하지만 나는 아내의 늦은 기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내의 휴일 기상시간은 보통 오전 11시를 넘기기 일쑤였다.


취침 습관 차이의 불편함이 지리산만큼 컸다면 다음의 불편함은 차라리 작은 묘목에 불과했다. 나는 한 번 사용한 물건은 있어야 할 곳으로 돌려놓는 편인데 나의 ENFP는 이틀이고 사흘이고 그 자리에 그대로 두었다.(이것도 취침과 마찬가지로 MBTI 차이는 아닌 것 같고 개인 성향의 차이 같다.) 예를 들어 커피를 마신 종이컵을 나는 바로 분리수거함에 넣는 반면, 나의 ENFP는 마신 후 자기 팔이 닿는 범위 내의 바닥에 그냥 두었다. 내가 좀 그때그때 치우라고 잔소리를 하면,

"걱정 마. 이게 지저분해 보여도 뭐가 어디 있는지 다 알고 있으니까 치우려고 마음만 먹으면 금방 치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마음을 잘 안 먹어서 탈이지 마음먹으니 치우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둘 사이의 작지만 확실한 간극은 화장실에서 주로 확인되었다. 화장실을 오성 급 호텔방보다도 더 깨끗하게 관리하고 싶었던 나의 ENFP는 나와 무려 20여 년 간 화장실 전쟁을 벌였다. 처음에 아내의 가장 큰 불만은 남정네 두 명이 차례로 들어갔다가 나오면 꽃향기가 났던 화장실이 시골 퇴비 냄새로 도배된다는 데 있었다. 보통 여성이 남성보다 후각에 예민하다던데 나의 ENFP의 후각은 평균적인 여성을 훨씬 상회하여 거의 마약탐지견에 맞먹었다. 화장실 악취를 해결하기 위해 아내가 취한 첫 번째 조치는 '화장실 미니멀리즘'이었다. 사방 타일 벽만 남기고 최대한 없애는 것. 그래서 일차적으로 희생된 것이 욕조였다. 욕조 표면에 낄 수밖에 없는 물때, 청소하기 힘든 욕조의 밑바닥은 아내의 폭발적인 분노를 유발했고 나와 아들은 아무 죄도 없는 욕조를 들고 쓰레기장에 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 집에서는 샤워만이 허용되었다. 선반 위에 늘어져 있는 용품들, 예를 들면 전기면도기, 코털 제거기, 각질 제거기 등 주로 남자들이 사용하는 물건은 모두 보이지 않게 함 속으로 구금되었다. 보기에는 매우 깨끗한데 항상 찾는 게 문제였다. 아침마다 면도를 하고 면도기를 감옥 속으로 돌려보내지 않으면 내 수염의 열 배도 더 되는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나의 ENFP는 화장실 바닥의 물기도 용납하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벼룩은 먼지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라고 했다는데 그 말을 신봉했는지 곰팡이가 습기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따라서 우리는 샤워를 마친 후 수건으로 바닥의 물기를 모조리 닦아서 사막처럼 만들어 놓아야 했다.


화장실 사용에서 아직도 용납하기 어려운 것이 있기는 하다. 소변을 본 후 변기커버를 덮고 물을 내리라는 것은 아내의 열의에 찬 과학 강의를 듣고 이해했다. 커버를 덮지 않으면 소변이 섞인 물방울이 10미터를 튄다고 한다. 헉, 정말 10미터야?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변기커버가 먼지가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아내의 명쾌한 주장에 그만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해는 되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용변 자세에 관한 것이다. 물을 내리는 데도 10미터를 날아간다는데 스탠딩 자세에서 소변을 볼 경우 화장실 천장이 온통 암모니아로 뒤덮인다는 그럴듯한 주장은 남성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섬뜩한 팩트처럼 들렸다. 그래서 아내의 요구대로 했냐고? 여기에 대해서는 모든 중년 남성들을 대신해서 함구하겠다.


취침의 차이나 화장실 사용의 차이는 MBTI와 무관한 개인적인 성향의 차이라는 것이 내 생각인데 이제 얘기할 것들은 확실히 MBTI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서로 살아온 환경의 차이, 취침 습관의 차이, 청결도의 차이 등은 충분히 이해가 가능한데 이제 풀어놓을 둘 사이의 차이점은 최근에 MBTI를 알고 나서야 겨우 이해된 것이다. 여덟 개의 알파벳 중에서도 'J'와 'P'의 확실한 차이.


나와 나의 ENFP는 퇴근 후 외식을 자주 한다. 아내가 먼저 말을 꺼낸다.

"오늘 저녁 어디 가서 먹을까?"

내가 말한다.

"초밥 먹으러 갈까?"

아내가 말한다.

"그래, 초밥 좋지. 그럼 그 집으로 가자."

그렇게 초밥집을 목적지로 정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밖으로 나온다. 아내가 말한다.

"어, 좀 춥네. 초밥은 좀 그렇겠다. 찬 음식이잖아. 아니면 콩나물국밥 먹으러 갈까?"

한번 결정한 것은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나의 'J'가 속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리지만 나는 꾹 누르고 동의한다.

"그래, 그러지 뭐."

국밥집으로 향한다. 멀리 국밥집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내가 말한다.

"아니면, 오랜만에 생선구이 먹으러 갈까? 이 근처에 맛있는 집이 있다던데."

이미 사라져 버린 초밥집, 멀리서 힘겹게 손짓하는 국밥집을 보며 나는 나의 'J'를 다시 한번 누르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다.

"아니다. 생선구이 먹으면 생선 냄새가 몸에 밸 거야. 차라리 복국집에 가자."

그렇게 우리는 복국집에서 예기치 않은 저녁을 먹게 된다. 어느 미국 야구감독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을 했다는데 나의 ENFP의 경우에는 "입 안에 음식이 들어갈 때까지는 정해진 식당은 없다."라는 말이 적격이다. 애초부터 아내에게는 정해진 목표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길을 걸을 때 나는 주위를 잘 돌아보지 않고 목적지 가는 길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아내는 쉼 없이 주위를 살핀다. 그리고 내가 보지 못한 많은 길거리의 풍경을 이야기해 준다. 신기하게도.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에도 계획한 것만 사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 마트를 세 바퀴쯤 돈 후에 계획에도 없던 물건을 카트에 담는다.

"좀 계획한 대로 행동하면 안 돼?"

내가 불평하면,

"계획 좀 바꾸면서 살면 안 돼?"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나의 머리에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각각의 방을 갖고 있다. 과거의 방에는 남기고 싶은 기억, 버리고 싶지만 남아 버린 기억 등이 뒤섞여 있고, 현재에 하루치를 선물로 준다면 현재의 방에는 방금 전 한 일, 지금 하고 있는 일, 조금 후 할 일로 밀도가 가장 높으며, 미래의 방에는 앞으로의 계획, 현재 하고 있는 일로 인한 결과 등으로 빼곡하다. 이러니까 ISTJ 아닌가? 하지만 아내의 머리에는 그런 복잡성이 애초에 없다. 아내는 과거를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며 그 외의 것은 과감히 지워버린다. 아내의 머리를 차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기억은 현재의 기억이며, 그 현재의 기억도 유효기간이 그리 길지 않은 휘발성 기억이다. 그리고 애초에 미래라는 방은 아내의 머리에는 없다. 이러한 아내의 'P'가 정신건강에는 상당한 장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줄리언 반스의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보면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과거는 왜곡과 창조, 삭제가 난무한 가짜 기억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미래의 방에 들어 찬 찌꺼기들은 기대, 열망, 불안, 공포 등 편안한 수면을 방해하는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니 현재만 기억에 남기는 것이 현명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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