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상사가 오셨다
회사 일을 하다 보면 때떄로 윗사람이 낙하산으로 오시는(?) 경우가 있다.
전 직장에서 우리 부서에 한 분이 오셨다. 상사가 낙하산이 되면 장점과 단점이 확실히 생기는 법이다.
우리 부서는 업무를 숫자로 하는 부서가 아니다 보니 평가나 진행이 어려울 때가 있다. 사람의 눈이 다 다르고 감정이 다르기 때문에 은근 우리 디자인을 까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아예 디자인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남들 눈치 보느라 아무 말도 없는 사람도 있다. 뭔가 근거를 갖고 접근하여 협의 하면 좋은데 쉽지 않다.
그런데 상사가 낙하산이라면 달라진다.
어느 날, 비주얼에 대해 1도 모르는 낙하산 A님이 우리 부서장으로 온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출근하고 바로 부서 회의를 했다. 팀 별로 인사를 하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간단히 정리해 팀장과 업무 회의를 하겠다고 하셨다. 부서 팀장들과 점심을 같이 먹고 오후에 팀별 보고를 했다. 팀장님들만 믿겠다고 했다. 직장 생활 하면서 어려운 일은 다 말하라고 했다. 주저하지 않고 업무에 필요한 도움을 요청드렸다.
달라졌다!
내가 일하는 것은 같은데 주변이 달라졌다. 타부서와 협의할 때, "A부장님이,,,"라는 말로 시작하면 다들 좋다고 했다. 비주얼 퀄리티가 달라지고 있다고 점점 그레이드가 높아진다고 했다. 정말 비주얼이란 것은 말하기 나름일까? 유관 부서와 협의하는 일만 금방 넘어가도 업무하기가 넘 수월했다. 협조부서의 품의 속도가 달라졌다. 좋으면서도 참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이 디자인에 대한 레퍼런스를 듣지도 않은 채 그냥 도장 꾹 찍으면서 " A 어때? 잘 해줘? 오래 갈 것 같아?" 이렇게 묻는다. 직장 생활 이렇게 하는구나, 그 동안의 협의를 위한 논쟁들은 다 무엇이었단 말인가?
또 달라졌다!
보통 VMD 업무를 하며 사용하는 식대, 교통비, 숙박비 등은 평균 정도 사용한다. 그런데, 회의 할 때마다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카페에서 회의를 하기도 했다. 회식은 한 달에 1인당 3만원 정도 선에서 함께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분위기 좋은 맛집에서 좀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었다. 시장 조사 가서도 맛집을 가게 되고, 출장을 가서도 여유로운 스케줄을 갖게 되었다. 물론 대중교통보다는 택시, 기차보다는 가끔 비행기를 타도 경비 결제에 별 문제가 없었다. 타 부서의 호의로운 협조와 여유로운 스케줄, 넉넉한 경비 사용 등으로 부서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 조금 붕~ 뜬 기분으로 일하며 칼퇴도 자유로웠다.
또 달라진 것이 있다.
팀장들이 너무 힘들어졌다.
A님에게 보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가르쳐 드려야(?) 했다. 만약 A님이 매장을 방문한다고 하면, 어느 매장을 가야할 지 가서 무엇을 파악하고 체크해야 하는지 경쟁사의 어던 것을 살펴야 하는지 등을 일일이 알려 드려야 했다. 품의를 상신할 대, 설명을 하자면 정말 신입 가르치듯이 그러나 예의를 다해 말씀드려야 했다. 그러나 동일한 내용을 다시 상신할 때는 완전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다시 알려 드려야 했다. 지치고 힘들었다. 부어도 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항아리 같다고나 할까, 우리팀이 비주얼 위주로 업무를 하긴 하지만 각 머티리얼의 최소 단위와 단가, 견적 내는 법과 매장 단위로 적용할 것들을 풀어 내는 작업도 해야 한다. 가장 큰문제는 우리는 아주 심각한 문제인데 A님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거나 사소한 것에 아주 큰 의미를 두는 것이었다.
결국 일의 수습은 팀장들이 해내느라 힘들었고, 팀원들은 점점 루즈해졌다. 이러한 습관들이 생기면 돌이키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몸이 편해지니 점점 힘든일들, 시간이 걸리지만 중요한 일, 즉 당장 급하지 않은 일들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회사라는 곳은 벽에도 귀가있고 천정에도 눈이 있는 것일까, 결국 1년도 안되어 A님은 우리를 떠나게 되었다.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는데 참 힘들었다. 팀원들은 말한다.
"우리, 스타벅스 가서 미팅하면 안돼?"
"출장가서 택시타면 안돼?"
"KTX 특실타면 안되나?"
"만원넘는 밥 먹으면 안될까?"
"매장갔다가 바로 퇴근하면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