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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j Feb 09. 2021

프랑스 시골마을에서 연극 만들기

여행하면서 일해서 행복했던 프랑스 브르타뉴에서의 일주일

지난 2020년 초, 파리 자끄르꼭(Ecole de théâtre international Jacques Lecoq) 연극학교를 다니면서 마음이 맞는 동료들과 극단을 만들었다. 

학교 교수님이 우리가 황당한 짓을 무대에서 할 때마다 내뱉으셨던 감탄사 'Oh la vache!(올라바쉬, la vache는 암소를 뜻하는데 Oh la vache!라고 하면 '이럴 수가', '오 젠장' 정도의 뜻으로 쓰인다.)'를 익살스럽게 바꿔 'Ohlavaka Ensemble(올라바카 앙상블)'이라고 이름 지었다. 


올라바카 앙상블은 한국, 칠레, 캐나다, 미국, 헝가리에서 온 사람들이 모인 극단으로 다양한 연극적 시도를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우리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어린이들을 위한 인형극이었다. 


극단 멤버 중 한 명의 시댁이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데 그곳에 우리가 머물면서 연습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서 레지던시를 하게 되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연습을 하려면 연습실을 시간 단위로 빌려서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무료로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레지던시의 가장 큰 장점이다. 

레지던시 동안 머물렀던 민박집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 중에서도 북쪽에 있는, 20분 걸으면 바로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서

일주일간 창작활동을 했다. 집안에서는 인터넷은 물론이고 전화도 통하지 않아서 바깥세상과 소통하려면 몇 분을 걸어 마을에 있는 카페 근처에서 와이파이를 잡아야 했던 깡시골이었지만 그 덕분이었을까 집중해서 극을 만들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민박집 가족들이 자기들 바게트를 사면서 우리 몫까지 사다 줘 탁자에 놓아두었다. 덕분에 신선하고 맛있는 빵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작은 시골마을에 딱 하나 있는 빵집이라 그런지 퀄리티가 파리의 빵집과는 비교도 안되게 좋았다. 그냥 바게트만 베어 물어도 감탄이 나오는 맛이었다. 거기에 향긋한 커피까지 더하면 간단하지만 훌륭한 아침식사가 완성된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 오전 연습을 시작한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해변

오전에는 주로 인형을 무대에서 다루는 방법을 연구하거나 필요한 무대 소품을 수정하고 만들었다. 그러다가 어김없이 배꼽시계가 울려오면 우리끼리 당번을 정해 식사를 준비하고 점심식사를 했다. 매일 몸을 움직이면서 연습을 하고 머리를 쓰다 보니 어찌나 자주 배가 고프던지...!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남겨진 바게트를 몰래 한입 베어 물고 연습실에 들어갔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오후에는 주로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에 집중했다. 우리 극은 대본이 완성된 상태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먼저 즉흥을 통해 움직이고 나서 우리가 원하는 방향을 추려 대본을 완성하는 방식을 따른다. 학교에서 2년간 강도 높게 훈련받은 부분이 바로 이런 부분이다. 무대 위에서 움직이면서 공동으로 이야기를 쓰는 훈련을 치열하게 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이 방식이 편하고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는데도 훨씬 도움이 된다. 그러다가 또 저녁시간이 되면 저녁식사를 하고 맥주를 마시면서 조금 알딸딸한 상태로 어린애들처럼 유치하게 놀다가 저녁 마무리 작업을 한다. 주로 그날 만든 장면을 대본으로 정리하거나 인형들을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아홉 시 열 시가 된다. 이때가 인터넷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 다들 외투를 껴입고 동네 카페로 향한다. 나는 추위를 많이 타서 오랜 시간 머무르지는 못하고 애인과 짧은 통화를 하고 들어오곤 했다. 가족들과 통화도 하고 싶었지만 한국은 모두가 한참 잘 시간이라 주말에 자유시간이 생겼을 때야 겨우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저녁에는 각자 자유시간을 가지는데 나는 주로 차를 끓여 마시면서 하루의 생각을 정리하는 글을 쓰거나, 칠레에서 온 극단의 뮤지션인 안드레스에게 스페인어를 배우곤 했다. 안드레스는 이미 한국어를 조금 배워서 뜻은 모를지언정 글을 읽고 쓸 줄 안다. 매일매일 짧은 문장을 알려주면 곧잘 따라 해서 가르치면 보람이 있는 학생을 둔 기분이 들었다. 

어느 저녁에 만들어 먹었던 크레페
나보다 글씨 잘 쓰는 안드레스

이번 레지던시는 조금 여유롭게 흘러갈 예정이었으나 이곳 가족들의 제안으로 동네 학교에서 작은 발표를 하게 되면서 우리의 일정은 아주 빠듯하게 흘러갔다. 다음날인 수요일을 휴일로 잡아두고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의 맥주를 홀짝이고 있었던 화요일 저녁, 지역 신문기자이자 민박집 사장님이신 우리 멤버의 시어머니가 이번 주 금요일에 초등학교에서 작은 공연을 할 기회를 잡았다며 일정이 괜찮냐고 물어왔다. 이야기도 제대로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당연히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이것도 파리 연극학교에서 어느 정도 적응이 된 부분인데, 학교에서는 매주 금요일에 한 가지 주제로 5-7분짜리 극을 발표해야 했고, 그것은 어떤 상황이 있어도 시간이 없어서, 예기치 못한 상황이 전개되어서 극이 못 나왔다는 등의 핑계를 댈 수 없는 발표였다. 학교를 24시간 개방하는 것도 아니어서 연습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제한된 상황에서 우리들은 때로 정말 멋진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언제나 시간이 부족하지만('Oh la vache'를 외쳤던 선생님이 했던 말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우리는 절대 시간이 충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없고, 앞으로 프로의 세상에 나가서도 그럴 일은 없을 거다.'였다.) 그 안에서도 훌륭한 작품은 나올 수 있다는 믿음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그리고 거절하기에는 너무나도 좋은 기회였기 때문에 오케이를 외치고 다음날 예정되어있던 휴가를 반납하고 연습에 몰두했다. 

공연을 했던 초등학교 옆 강당

그 결과 우리는 이틀 후인 그 주 금요일에 두 번에 걸친 작은 공연을 지역 초등학교에서 할 수 있게 되었고 지역신문과 지방관청에서도 우리를 취재해갔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2020년 이후로 한 번도 문화생활을 가질 수 없었던 지역 초등학생들에게 아주 큰 관심을 끌어 모으면서 공연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만큼 스트레스도 많았던 며칠이었지만 압박감이 우리의 극을 보다 더 완성도 있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극도 발전했고, 보도자료가 생겨 앞으로 우리 팀을 소개할 때도 사용할 수 있는 자료가 훨씬 많아졌으니 정말 보람 있는 레지던시였다. 

브르타뉴의 절경

공연을 마치고 난 주말은 황금 같은 주말이었다. 우리에게 매일 바게트를 사다주시던 친구의 시아버지께서 봉고차를 끌고 동네 투어를 시켜주셨다. 날은 흐렸지만 브르타뉴의 멋진 절벽과 파도를 만날 수 있었다. 주말 동안 마음 놓고 맥주와 와인 그리고 지역특산물인 애플 사이다까지 마셨고 친구의 시댁 식구들에게 라끌렛을 대접했다. 맛있는 식사 후에는 앞으로 우리 극단을 이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알리고 이끌어갈 것인지 함께 논의했고, 앞으로 더 나아갈 힘을 얻었다. 


코로나바이러스 상황이 좋아져서 올여름에 수많은 연극축제에 참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곳에서 많은 어린이들을 만나 그동안 나가지 못해 답답했던 마음을 우리 극과 함께 해소할 수만 있다면...! 







*올라바 카 앙상블의 활동 내용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Facebook : https://www.facebook.com/Ohlavaka-Ensemble-105414974392445

Instagram : https://www.instagram.com/ohlav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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