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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보살과 민바람 Jul 05. 2023

외운 적 없는 색깔

니가 여자냐? 분홍색은 여자색이야

남자면 파란색 골라야지

킨더조이 초콜릿을 고르는 남자아이를

여자아이가 혼쭐냈다


내 목소리가 급히 달려나가는 걸 들었다

색깔엔 여자남자 없는 거야

남자도 분홍색 좋아해도 되고 여자도 파란색 좋아해도 돼


작아지던 남자아이의 어깨가 펴졌다

무안하게 만든 내가 미웠던지

여자아이는 계산하지 않은 킨더조이를 쥔 채 문을 나섰다


아이를 끌어안고 물었다

깜빡한 거지?

네! 깜빡했어요!

거짓말할 기회가 반가운 듯했다


잊어버리지는 마

네가 누군지

네가 아닌, 분홍이 되기를 선택하지 마

나는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무례한 두 남동생 대신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던 여자아이에게도

끝내 말하지 않았다


쉽게 사과하지 마

다른 사람의 잘못을 네가 끌어안지 마

그럼 세상이 널 계속 고개숙이게 만들 거야


그리고 나는 힘을 아낀다

당연한  물어보는 여자 중학생에게 덜 상냥하게 답하고

자전거 도로에서 길을 막고 선 아주머니에게 목소리를 높이고

짜증을 억누르던 힘을 풀어버리고

그 힘을

절대로 웃지 않는

언제든 윽박지를 준비가 되어 있는

어떤 남자들의 기분을 위해 비축한다


그건 처음 발견한 오래된 습관이다


레이스옷을 입고 왕관 머리띠를 한 여자 초등학생들이 다녀가고

약속한 듯 살짝 무릎을 굽혀 인사하는 여자 중학생들이 다녀가고

애교살 눈화장을 하고 헤어롤을 만 여자 고등학생들이

잘 웃어서 예쁘다는 말을 들어왔을 여자 단골들이 다녀간다


그들에게서 분홍색을 걷어내는 상상을 한다

그러나 내가 내민 손가락은 분홍이

외운 적이 없어서 잊을 수도 없는 색깔


내 분홍은 그들의 분홍에 더해진다

분홍은 더욱 분홍답게 치장된다


분홍인 나는 작은 너를 껴안고 말했다

깜빡한 걸로 해줄게


나는 어쩌면 여자가 아닐 너를 여자라고 부른다

무색의 너는 자신을 두리번거린다


눈웃음은 파랗게 일그러진다


무엇이 되지 못한 나는

작은 나를 붙잡고 말한다


너를 지우

너에게 속지 마

너도 모르게 네가 되지 마


나는 자꾸만 품에서 미끄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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