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여자냐? 분홍색은 여자색이야
남자면 파란색 골라야지
킨더조이 초콜릿을 고르는 남자아이를
여자아이가 혼쭐냈다
내 목소리가 급히 달려나가는 걸 들었다
색깔엔 여자남자 없는 거야
남자도 분홍색 좋아해도 되고 여자도 파란색 좋아해도 돼
작아지던 남자아이의 어깨가 펴졌다
무안하게 만든 내가 미웠던지
여자아이는 계산하지 않은 킨더조이를 쥔 채 문을 나섰다
아이를 끌어안고 물었다
깜빡한 거지?
네! 깜빡했어요!
거짓말할 기회가 반가운 듯했다
잊어버리지는 마
네가 누군지
네가 아닌, 분홍이 되기를 선택하지 마
나는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무례한 두 남동생 대신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던 여자아이에게도
끝내 말하지 않았다
쉽게 사과하지 마
다른 사람의 잘못을 네가 끌어안지 마
그럼 세상이 널 계속 고개숙이게 만들 거야
그리고 나는 힘을 아낀다
당연한 걸 물어보는 여자 중학생에게 덜 상냥하게 답하고
자전거 도로에서 길을 막고 선 아주머니에게 목소리를 높이고
짜증을 억누르던 힘을 풀어버리고
그 힘을
절대로 웃지 않는
언제든 윽박지를 준비가 되어 있는
어떤 남자들의 기분을 위해 비축한다
그건 처음 발견한 오래된 습관이다
레이스옷을 입고 왕관 머리띠를 한 여자 초등학생들이 다녀가고
약속한 듯 살짝 무릎을 굽혀 인사하는 여자 중학생들이 다녀가고
애교살 눈화장을 하고 헤어롤을 만 여자 고등학생들이
잘 웃어서 예쁘다는 말을 들어왔을 여자 단골들이 다녀간다
그들에게서 분홍색을 걷어내는 상상을 한다
그러나 내가 내민 손가락은 분홍이다
외운 적이 없어서 잊을 수도 없는 색깔
내 분홍은 그들의 분홍에 더해진다
분홍은 더욱 분홍답게 치장된다
분홍인 나는 작은 너를 껴안고 말했다
깜빡한 걸로 해줄게
나는 어쩌면 여자가 아닐 너를 여자라고 부른다
무색의 너는 자신을 두리번거린다
내 눈웃음은 파랗게 일그러진다
무엇이 되지 못한 나는
작은 나를 붙잡고 말한다
너를 지우지 마
너에게 속지 마
너도 모르게 네가 되지 마
나는 자꾸만 품에서 미끄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