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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보살과 민바람 Jul 21. 2023

내가 붙잡은 동앗줄들 - 상담편

성추행 고소를 고민했던 과정 (2)

  ... 그리하여 처음에는 문자 한 통 보내는 걸로 마음을 풀어보려 했던 것이 내용증명으로 사과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고, 사과를 가장한 2차 가해 메시지만 받게 된 다음에는 진지하게 고소를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나에게 고소라는 건 여전히 거대한 산으로 느껴졌다. 정보가 없어서 더 막연했다.


 네이버에서 '성추행을 당했는데 어떻게 할까요?' '성추행 도움 기관'이라고 검색하면 관련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만이 토막토막 뜬다. '성폭력 도움 기관'으로 검색했을 때는 그나마 관련 지식인 답변이 나오고, '성폭력 상담기관'으로 검색하면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가 나온다.

 '성폭력 상담'으로 쳤을 때 비로소 이런 결과가 나왔다.

정확한 키워드를 찾을 능력이 없는 디지털 약자들은 자칫하면 헤매다가 도움주는 곳이 마땅히 없는 줄 알고 쉽게 포기해버릴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정보가 없다는 점도 의외였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이나 대응을 하기 위한 정보가 쭉 정리된 곳이 있을 줄 알았는데, 한국여성의전화를 찾지 못하면  헤매기 쉽다. 여기에서도 홈페이지 자체에  성폭력 대응과 관련된 여러 정보가 다양하게 정리되어 있지는 않다. 일단 전화를 해서 상담을 해야 구두로 조금씩 정보를 얻어갈 수 있는 구조이고, 의사결정을 하는 방법 등 피해자의 심리 상태에 맞게 상세한 정보를 얻으려면 시판하는 성폭력 대응 관련 책을 구매해서 읽어야 하는 것 같다. (혹시 자세한 정보가 정리된 곳을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제가 몰랐다면 제보 부탁 드립니다)


 내가 정보를 얻은 방법은 유료 상담, 무료 상담, 그 외로 나누어서 정리해 본다.



유료 상담


검색을 했을 때 제일 먼저, 많이 접하게 되는 것이 로스쿨이나 개인 변호사의 홍보 글이었다. 나는 로톡 상담글(https://www.lawtalk.co.kr/)에 올린 변호사들의 답변을 보다가 마음이 가는 변호사가 있어 비서에게 유료 전화 상담을 문의했다. 상담은 15분에 3만 원이었고, 전날 미리 질문 내용을 5줄 정도의 글로 정리해서 보내달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가해자에게 보냈던 내용증명 자료를 변호사가 검토하려면 30분으로 잡고 더 지불을 해야 한다고 해서 자료 검토는 받지 않기로 했고 내가 대강의 사건 경위를 간추려 전달했다.


고소를 한다면 어느 정도 승산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직접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수집할 수 있는 간접 증거들을 말하고, 각 증거들이 어떻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지 등을 물어보았다. 상담은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시간이 부족할 수 있어 변호사님이 매우 빠르게 말씀을 하셨는데도 논리정연하고 정확, 상세하게 설명을 해 주셔서 믿음이 갔고 궁금증도 많이 풀렸다.


다만, 승률을 반반으로 본다는 말은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이고 그 자체를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된다는 점은 내 몫으로 남았다. 왜냐하면 유료 상담은 변호사들에게 수임으로 이어지는 전단계의 기능을 하고 있고, 그만큼 희망적으로 이야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 전에 본질적으로 재판의 결과는 '열어봐야' 아는 것이기 때문에 한 사람의 의견으로서 수집해 두는 정도로 여기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료 상담



1. 로톡  https://www.lawtalk.co.kr/

앞서 잠시 적었지만 로톡 홈페이지나 앱에서 무료로 문의 글을 올릴 수 있다. 글이 올라가면 변호사들이 확인을 하고 답변을 달아준다. 답변 중 마음에 드는 것을 두 개 채택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인과 비슷한 체계다. 이용해 보니 가입도 작성도 간단하고, 무엇보다 여러 변호사님들이 빠르게 답변을 달아주셔서 신속하게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전화 상담이 부담되고, 작은 의문점만 해결하고 싶다면 로톡을 추천한다.


2. 한국여성의전화 http://sv.hotline.or.kr/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성폭력상담소를 운영하며 관련해서 여러 지원을 하고 있다.

전화상담은 평일 10시- 5시(점심시간:1시-2시)에 할 수 있다. (상담이 폭주할 경우 통화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통화가 오래 안 될 경우 국번없이 1366, 휴대전화는 지역번호+1366으로 상담하고, 신고는 112로 하라고 적혀 있다.)

가정폭력상담: 02)2263-6464
성폭력상담: 02)2263-6465


매주 월요일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무료법률상담을 한다. 3일-10일 전에 전화로 시간을 확인하고 예약하면 변호사가 1인당 15분 정도 상담을 해준다. 나는 가해자에게 내용증명을 보내기 전에 이 무료법률상담을 통해 명예훼손 우려는 없는지 문의했다. 이때 변호사님이 지압사들이 성추행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압 상황이라고 해서 고소 시 승산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 경우 시간이 많이 지난 것이 안타깝다고 하셨다(시간이 흘러 안타깝다는 얘기는 그 후 어느 기관에 상담을 해도 듣게 된다). 짧은 상담이었지만 진심으로 임해주시는 게 느껴져서 참 감사했다.


3. 대한법률구조공단 https://www.klac.or.kr/

대한법률구조공단을 알게 된  지인이 언급해준 덕분이었다.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법률지식이 부족해 법의 보호를 충분히 받지 못하는 국민에게 법률상담, 소송대리 및 형사변호 등의 법률서비스를 지원하는 곳이다. 잘은 몰랐지만 소송구조를 받으면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고소 과정을 대부분 대신해 주는 게 아닐까 싶어 마음의 짐이 덜어지는 듯했다. 변호사 선임 비용을 고민할 필요도 없고(이때까지 성폭력 피해자는 고소만 하면 국선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는 걸 몰랐다).


먼저 내 주소지에 가까운 공단 사무실로 전화로 문의했다. 나는 차상위계층에 해당하기 때문에 구조 대상인 것이 확실했고, 홈페이지에서 방문상담 접수를 하라고 했다. 예약이 밀려 있어 2주 정도를 기다려서 방문했다. 사무실에 갔을 때도 대기자가 많았다. 명단에 이름을 적고 순서를 기다리자 정확히 내가 예약한 시간에 내 이름이 불렸다.


 상담하시는 분 인상이 상당히 무섭고 냉정해서(어려운 일들 겪는 사람들을 상대로 법률 상담을 해온 산전수전의 고초가 그 인상에 압축되어 있는 느낌) 주눅이 들었지만 30분 제한시간이 있어서 용기를 내 질문을 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더 질문할 것이 없어져 버렸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는 민사소송만 지원을 하는데, 소송 구조를 하려면 먼저 형사소송에서 승소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형사소송은 돕지 않는다고 하니, 결국 나 혼자의 몫이었다.


 대신 이곳에서 처음으로 '해바라기센터'의 존재를 안내받았다. 지역 해바라기센터에 문의해서 도움을 받으라는 말을 듣고, 나는 공단에서 나오자마자 부산 해바라기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4. 지역 해바라기센터 https://sunflower.pnuh.or.kr/sunflower/board/list.do?rbsIdx=79

 

 처음에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할지도 모른 채 무작정 전화를 걸었는데, 상담사분이 부드럽게 이끌어주고 들어주셔서 피해 이야기를 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모든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내가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형사소송을 먼저 하라고 했다고 전하자 고소할 생각이 있는지 물으셨고 또 연락 달라고 하셨다.


그 후로 정보를 알아보고 고민하면서 세 번 정도 더 해바라기센터에 전화상담을 받았다. 그 중 두 번은 경관님께서 받으셨는데, 수사와 관련해서 대답할 수 있는 건 모두 대답해 주려고 노력하셨다. 고소를 하게 되면 고소장을 어떻게 제출하는지(미리 작성해 가도 되고 가서 써도 된다), 어느 서로 방문해야 하는지(가해자의 주소지 관할 경찰서로 가는 게 좋다), 증거는 언제 제출해야 하는지(고소장과 함께 제출해도 되지만 그 후에 제출해도 된다고 한다) 등.


그런 과정에 대해 상담사님들과 경관님들은 어느 쪽이든 상관없는 것처럼 말씀하셨는데, 사선 변호사들이 하는 말과 다른 점이 있어서 혼란스럽기도 했다. 변호사들은 고소장도 검토를 받고 써야 불리해지는 일을 막을 수 있다고 했고, 증거를 최대한 준비해서 고소장과 함께 접수하는 편이 좋다고 했다. 물론 이것도 수임을 받기 위한 홍보 전략의 하나일 거라고 생각이 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는 편이 승률을 조금이라도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도 사실이었다.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꿰어 지는 싸움을 하게 될까 봐 겁이 났다. 


 해바라기센터에서는 수사, 법률, 의료, 상담, 심리 지원을 한다. 정기적으로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는데, 다른 문제가 아닌 성폭력에 의한 심리적 문제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심리치료를 받고 싶었는데 내가 정신적 문제를 겪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섞여 있어서 지원받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5. 지역 성폭력가정폭력상담소


 해바라기센터에서 상담을 받다 비로소 가까운 지역에 성폭력가정폭력상담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무려 집에서 도보로 5분 거리였다).

 

 전화로 약속을 잡고 찾아가니 상담사님께서 50분 동안 사건의 경위에 대해 매우 자세하게 묻고 기록하셨다. 믿을 만한 국선변호사님께 바로 전화 문의를 해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다리도 놓아 주셨다. 금요일마다 무료법률상담도 진행하고 있어 예약을 하면 사선 변호사와 상담할 수 있는데(매주 다른 분께 상담을 받아 정보를 종합해 의사를 결정하는 피해자도 있다고 한다), 나는 국선변호사님께 문의한 것으로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가 충분해져서 더 신청하지 않았다.


성/가정폭력상담소는 해바라기센터의 일을 분담해서 하는 개념인 것 같았다. 그런데 해바라기센터와 달리 성폭력이나 가정폭력 피해자이기만 하면 다른 문제까지 포함해 원하는 만큼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나는 지금까지 16회 넘게 주1회 상담을 받고 있다. 무료 상담이면서도 전문가분께 깊이 있게 치료 받을 수 있어서 경제적인 고민 없이 많은 도움을 얻었다. 처음에는 고소와 관련한 고민들을 상담했는데, 결정을 한 다음에는 성추행 후유증뿐 아니라 다른 문제들까지 제한없이 상담했다. 정기상담 외에도 집단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내담자들과 함께 캠프도 다녀오면서 후유증이 많이 해소되었다.


 혹시 거주 지역에 이런 상담소가 있는지 해바라기센터에 문의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여러 곳에 열 번 넘게 문의를 하며 피해자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기다리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았다. 런데 한 곳에 가니 다른 곳을 알게 되고, 거기서 또 다른 곳을 알게 되는 식이라 아쉬웠다. 고소는 시간도 중요하다. 가장 나중에 알게 된 성가정상담소를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정보를 얻고 결정을 하기가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성가정상담소에서도 왜 바로 오지 않았냐고 했다. 있는 줄도 몰랐다. 홍보가 필요하다!!!)


그리고 모두 최선을 다해 정보를 제공해 주시지만, 누구도 고소를 강력히 권하거나 말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결정은 자신의 몫이라는 점이 여전히 어려웠다.


 변호사, 정부 기관상담사, 경관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되 판단은 현실적으로 해야 한다. 중요한 건 고소했을 때의 장점과 단점을 두루 파악하고, 자신만의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결과와 관계 없이, 과정에서 소모되는 것들도 상관없이 끝까지 해보는 게 자신에게 중요하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하지만 이기는 게 중요하다면, 지는 싸움을 하고 싶지 않다면 상황을 좀더 잘 파악해야 한다.


 사실 말이 쉽지 이런 판단은 정말 괴롭고 외롭고 어렵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적을 기회가 있을 것 같다. 국선이냐 사선이냐, 고소냐 합의냐를 놓고 고민했던 내용을 한번 다루려고 한다.


 그리고 아직 동앗줄 2편이 남아있다. 오늘은 상담에 대해서만 적었는데, 다음 화에서 내가 정보를 얻은 '그 외'의 방법에 대해 소개하려고 한다.

 


그 외

1. 지인

2. 블로그와 브런치 글 (먼저 겪고 글을 쓴 분들)

3.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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