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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내게 성폭력에 대해 말해주지 않은 이유

[2화] 친족 성폭력 생존자에게 가족이란

by 묘보살과 민바람

살면서 기억하는 첫 성폭력은 삼촌의 성추행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삼촌이 우리집에 놀러 왔다. 삼촌은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고, 나는 그가 뭘 하나 궁금해서 들어갔다가 삼촌 무릎에 앉았다. 그 후 일어난 일은 단 몇 분 정도였다. 몇 초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가만히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왜 그런 기분이 드는지는 몰랐다. 그때 갑자기 아버지가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뭐 하냐?”

삼촌은 황급히 내 옷 속에서 손을 뺐다. 얼굴이 빨개지며 몹시 당황하는 삼촌의 모습도 이상해 보였다. 삼촌이 왜 저럴까. 역시 뭔가 이상해.


하지만 그 후 몇 년간 그 기억은 묻혀 있었다.


그것이 성추행임을 인지한 건, 5학년이 되었을 때다. 친구들은 아이가 어떻게 생기는지에 대해 자기가 들은 것을 서로 속닥거렸다. 성이라는 개념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예민한 시기였다. 그때 갑자기 지난 기억이 떠올랐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난 성이 뭔지 알기도 전에 내 몸을 침범당했구나. 더럽혀진 거야.’ 그런 생각이 어린 나를 괴롭혔다.


성폭력 생존자들을 위한 책 『아주 특별한 용기』에서 저자 엘렌 베스와 로라 데이비스는 모든 성폭력이 피해자에게 손상을 입히며, 어릴 때 당한 성폭력 피해는 장기적으로 일상 곳곳에 영향을 미친다고 썼다. “한참 자라기 시작하던 자존감과 자기가치 인식에 가장 가혹한 상처가 생”기고, “이렇게 손상된 자기존중감은 어른이 될 때까지 계속 간다.”


▲ 『아주 특별한 용기』(엘렌 베스‧로라 데이비스 공저, 이경미 번역, 동녘, 2012) 표지와 내지 일부. 어린이 성폭력 생존자의 신체적·정신적 치유에 초점을 둔 상처극복 지침서


9살에 겪은 친족 성폭력을 부모님에게 고백했을 때


첫 화에서 언급한 성폭력 피해자 동료와의 만남 이후 나는 각성했고, 늦게라도 자신을 지켰다는 느낌을 갖고 싶었다. 우선 가해자인 삼촌에게 사과를 요구하기로 했다. 엄마에게 물어 삼촌의 전화번호를 받았다. 그리고 긴 문자메시지를 썼다. 내가 기억하는 모든 상황과, 그게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적었다. 당신도 딸이 있지 않냐고, 지금이라도 사과를 하라고 썼다.


답은 오지 않았다. 문자메시지 앞의 1은 없었는데 처음부터 없었는지, 있다가 없어진 것인지, 그 사람의 휴대전화가 나와 다른 기종이라서 표시가 되지 않은 건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처음에는 단지 그렇게 보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답이 없자 그대로 끝맺고 싶지 않은 마음이 올라왔다.


엄마에게 문자를 대신 보내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때 나의 보호자였던 엄마가 이제라도 그에게 단호하게 사과를 요구해 주었으면 했다. 그게 어린 시절 나를 보호하지 못한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다. 엄마는 대뜸 그런 문자를 보내기가 좀 그러니 전화로 설명하는 게 낫지 않느냐고 했다. 삼촌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엄마의 그런 태도가 못마땅했다. 삼촌에게 성추행 당했던 얘기를 처음 꺼냈을 때 엄마는 놀랐지만, 화가 나 보이지는 않았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이야기했을 때 가족이나 주변 사람이 피해자의 감정보다 지나치게 격앙된 모습을 보이는 건 좋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 나는 화가 나 어쩔 줄 모르는 엄마를 보고 싶었다.


“엄마는 삼촌한테 화가 나지 않아? 어린 엄마 딸한테 그렇게 했는데?” 내가 묻자 엄마는 말했다. “화나지. 마음 아프고….” 하지만 내가 다시 부탁하자 엄마는 심장이 아프다고 했고, 나는 별수 없이 그냥 ‘신경 쓰지 마시라’고 했다. 몸이 약하고 불안도가 높은 엄마는 내가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몸이 아파졌다.


그 몇 주 전, 본가에 가 저녁을 먹던 중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나를 성추행한 다른 가해자에게 내용증명을 보낼 생각이라고 얘기했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엄마는 인상을 쓰며 호통을 쳤다. “너, 하지 마!”


‘용기를 내다니 장하다’는 말까지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그런 반응은 예상치 못했기에 왈칵 눈물이 났다. 평생 참아오다 이제 목소리를 내려 하는데 다시 누군가 내 입을 틀어막는 게, 그렇게 하는 이가 엄마라는 게 서러웠다. 나는 울면서 악다구니를 썼다. 엄마는 마른 가슴이 쑥 들어올려지도록 한숨을 쉬며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미안하다.” 없어졌던 엄마의 심장통이 그날 이후 다시 생겼다고 했다.


그래서 대신 아버지에게 연락을 취했다. 아버지와는 큰 갈등이 있은 후 연락도 하지 않고 있는 시기였지만, 가해자가 아버지의 형제인 만큼 아버지가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대답했다. “그래, 내가 연락해 보마. ‘○○아, 바람이한테 사과해라. 그래야 바람이 마음의 상처가 나을 수 있다.’ 그렇게 보내마.”


아버지 역시 감정적 동요를 보이지는 않았으나, 나쁘지 않은 대답이라 생각했고 고마웠다. 하지만 역시 몇 주가 지나도록 가해자의 답은 오지 않았다. 그가 친형제들과도 연락이 되지 않는 상태라고 했다. 나는 다시 아버지에게, 나중에라도 만나면 따끔하게 한마디 해주시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그 말에 아버지는 답이 없었다.


며칠간 새벽에 잠에서 깨어 화가 올라오곤 했다. 아버지는 왜 대답이 없는 걸까. 결국 나는 물었다. ‘못할 것 같으세요?’ 돌아온 대답은 내게 상처가 되었다. ‘언제 만날지도 알 수 없고, 만난다 한들 이 일이 생각날 확률은 1%도 안 되는 일’이라는 답이었다. 그 말은 내가 친족 간에 겪은 성폭력이 우리 가족의 일이 아닌, 나만의 사소한 문제로 치부되는 것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혹시나 내심 ‘남자가 젊은 치기에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2021년 상담통계를 보면, 피해 생존자의 34.2%가 ‘주변인들에게 지지를 받기 위해서’ 피해 사실을 말했다. 그러나 친족 성폭력 피해자의 주변인이 피해자를 방관(22.7%), 비난(22.7%)하거나, 가해자를 보호(9.1%)하는 환경이라고 답한 비율이 절반인 50%를 넘고, 피해자를 지지하는 경우는 20.5%에 불과했다.

▲ 한국성폭력상담소 2021년 상담통계 자료 일부 ⓒ한국성폭력상담소 누리집


어린 나에게 일어난 일을 가족들도 중요하게 여겨주길 바랐다. 가해자에게 분노를 느끼고, 나에게 미안함을 느껴주길 바랐다. 그건 아무도 나에게 자신을 지키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던 것에 대해 늦게나마 책임 지우고 싶은 보상심리였다.



가부장제의 문화적 편견이 낳는 ‘피해의 대물림’


그러나 시간이 더 흐르며 다른 생각도 찾아왔다. 격변하는 시대를 좋은 부모도, 좋은 교육도 없이 맨몸으로 건넜던 부모님에게 나와 같은 성인지 감수성을 요구하는 일도 어쩌면 하나의 폭력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당신도 젊었을 때 동네 아저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엄마가 십대 후반일 때의 일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엄마가 안쓰럽기보다 야속했다. ‘그런데 왜 알려주지 않았을까? 먼저 겪었으면, 딸에게 알려줄 수 있었을 텐데. 타인이 내 몸에 함부로 손을 대면 어떻게 해야되는지 알려줬다면, 아홉 살의 나는 엄마한테 달려가 삼촌이 한 일을 일렀을 텐데. 내가 더럽혀진 게 아니라는 걸 알았을 것이고, 적어도 그 사건으로는 나쁜 영향을 받으며 자라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그 이유를 지금은 잘 알고 있다. 엄마도 남성중심 문화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직접 겪어서, 겪고서 늘 아무 말도 못했기에 ‘피할 수 없는 일’, ‘참는 것밖에 도리가 없는 일’로 여겨왔을 수도 있다. 그 기저에 깔린 건 ‘남자에게 성폭력을 겪으며 살게 되어 있는 게 여자의 삶’이라는 문화적 인식일 것이다. 그런 인식이 성폭력을 저지르는 남성에게서는 가해자라는 자각을 지우고 피해 여성에게는 피해를 감내하게 하여, 성폭력을 대물림하게 만든다.


내가 자라며 지켜본 모습도 그랬다.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다닐 때 우리 집은 구멍가게를 했다. 좁은 가게에서 가맥을 파는 엄마에게 함부로 성희롱을 일삼는 남자 손님이 많았다. 전해 듣고서 지금도 잊히지 않는 성적 모욕들도 있다. 엄마가 정색해봤자 상대방은 모른척하면 그만이었고, 빠듯한 살림에 단골이나마 유지해야 했던 엄마가 할 수 있는 대응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인권 문제 전문가인 샬럿 번치(Charlotte Bunch)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폭력이 사소하게 취급되는 이유를 네 가지로 제시했는데, 네 번째가 ‘여성에 대한 폭력은 너무 만연한 문제라서 불가피하며 어차피 노력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사고방식’이다. 윗세대 여자들의 삶을 생각하면 안타깝다. 미투운동조차 없던 시대에 사는 것만 생각하며 버티면서 살아온 삶들. 그렇게 물들어버린 생각들. 그들이 자신도 모르게 하는 2차 가해를 용인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 삶 또한 참 안쓰럽다.


엄마는 몸과 정신이 취약하긴 해도, 내가 뭔가를 가르쳐 주면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어느 날은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한 남성에게 손이 시렵다고 말하자 그가 “내가 손잡아줄까?”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엄마는 손 시렵다는 말을 꺼낸 자신을 탓했다. “성희롱은 그럴 만한 여지를 만드는 여자 잘못도 있는 거야. 그치?”


나는 대답했다. “엄마는 그 아저씨가 손 시렵다고 했어도 그런 식으로 대답하지 않았을 거잖아요?” 다행히 내가 지속적으로 설명하면서, 지금은 잘못된 인식에서 많이 벗어나신 것 같다. 과거의 상처로부터 제대로 치유 받지 못한 나였지만, 나라도 조금씩 가부장적 인식의 고리를 끊어내고 싶었다.



그 자리에 남아 있던 아이를 떠나보내기


엘렌 베스와 로라 데이비스는 『아주 특별한 용기』에서, 피해자에게 가족 한 사람 한 사람과의 관계를 현실적으로 평가할 것을 권한다. ‘이 사람은 내 치유를 지지하는가?’ ‘이야기를 나누거나 시간을 같이 보낼 때 어떤 느낌이 드는가?’ ‘만난 후 기분은 어떤가?’ 등의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고, 가족들과 ‘치유를 위한 이별’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가족과의 관계가 세월이 지나면서 변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 어린 나를 안아주는 지금의 나.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나는 친족성폭력 가해자에게 아직까지 답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첫 성추행의 아픔을 떠나보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의식이었고, 비록 이후의 전개가 완전한 치유를 가져오진 않았을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그 의식을 행했다. 아무것도 알지 못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아홉 살의 나, 그리고 그런 나를 깨닫고 마음 아팠던 십대 시절의 나를 위해서.


보호받지 못한 작은 아이를 내면에 품고 있는 분들을 향해 이야기하고 싶다. 그들을 지켰어야 하는, 또는 가르쳐 주었어야 하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잘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네가 당한 일을 알지 못해서, 오래 아프지 않도록 더 빨리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 나는 네가 겪은 일에 화가 나. 너를 아프게 한 사람한테 너무 화가 나. 그리고 그 마음을 혼자서 안고 여기까지 살아온 네가 정말로 자랑스러워.


만약 당신이 성폭력 피해자의 가족이라면, 이 조언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녀를 용감하고 결단력 있는 존재로 보라. 그녀의 힘과 영혼에 몰입하라. 생존자가 가진 힘을 스스로 다시 기억할 수 있도록 하라. 그것은 당신이 치유 과정에서 줄 수 있는 선물이다. (중략) 어린이 성폭력으로부터 치유되는 것은 영웅적인 과업에 버금간다. 그녀는 당신의 존경과 확신, 찬탄을 받기에 충분한 인간이다.
― 엘렌 베스‧로라 데이비스, 『아주 특별한 용기』



[필자 소개] 민바람. 자신의 경험으로 사회 구조를 비추는 글을 쓴다. 퀴어, 여성, 신경다양성, 빈곤, 지역 문제의 교차성 탐구에 관심이 많다. 『나는 ADHD 노동자입니다』(2025년 재출간), 『낱말의 장면들』(2023) 등을 출간 후, 퀴어 소설을 써왔다.



출처: 엄마가 내게 성폭력에 대해 말해주지 않은 이유 - 일다 - https://www.ildaro.com/10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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