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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학윤 Apr 16. 2020

일상이 망가지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데, 일상은 또 망가지기 쉬워서 돌봐줘야 한다

몸은 좀 괜찮으냐는 안부에 익숙해지고 있다. 


경산에 살고 있다. 잘살고 있다고는 말을 하지는 못하겠다. 전염병이 돌기 이전과 생활방식이 완전히 달라졌으니까. 조금 더 안 좋은 쪽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말을 만약 다른 시기에 들었다면 좋았을 거다. 지금은 안전하기 위해 거리를 두고 있으니까. 오래 보기 위해서 거리를 두는 게 아니라 정말로 가까이하지 않기 위해서 거리를 둬야 한다.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게 당연한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거의 집에 있다고 봐도 된다. 잠깐씩 엄마와 장을 보기 위해 나가는 일을 말고는 나갈 일이 사라졌다. 혼자서도 잘 돌아다녔는데 외출을 자제하라는 권고를 잘 따르고 있다. 불안해서 그렇다. 내가 전염병에 걸리는 일보다 전염병에 걸린 내가 누군가에게 다시 전염병을 퍼트리는 일이 더 두렵게 느껴진다. 아마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고 집 안에서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을 거다. 피해를 받는 일보다 피해를 주는 일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으리라는 가정을 할 때마다 조금은 안심이 되고,  감사하다.


지금도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감사하다. 이들이 있어서 사람들이 유지하고 있는 일상은 앞으로도 유지가 될 수 있다. 이들을 통해 감사함을 배우는 나날들이 이어진다. 


집 앞 목련 나무에 목련이 한 아름 피었다.


나는 목련보다 매화를 좋아하는데도 이렇게 한아름 핀 목련을 보고 있으면 어쩔 수 없다. 시선이 자꾸 간다.


목련을 보고 있으면 봄이 이미 왔거나 혹은 통과하고 있다는 감각으로 조금은 가슴이 뻣뻣해지면서 들뜨게 된다. 마음이 돌아다닌다고 해야 할까. 봄은 마음을 풀어두기 좋아서 몸도 더러 풀린 마음에 따라가서 이리저리 꽃 찾아 멀리 걷거나 오래 걷기 좋다. 작년이었으면 진작 밖을 돌아다닐 날씨들이 선명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봄이 온다는 건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말보다 더 와닿으면서 지금 흐르고 있는 시간을 실감하게 하고 있다. 전염병도 시간을 멈추지는 못하니까.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 한다.


사람이 사람을 혐오하기 쉬울 때다. 집에서 청소를 하다 베란다로 나가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는 거리를 내다보고 있으면 종종 지금도 어딘가에서 힘들게 전염병과 싸우고 있을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떠올려보게 된다. 그 사람의 국적이나 나이는 다양하다. 성별도 마찬가지다. 인종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모두가 힘들어하고 있다. 모두가 싸우거나 견디고 있다. 끝을 어림잡아 짐작하기도 힘든데도 꿋꿋하게 각자의 자리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과 다시 건강을 되찾아 자신의 삶으로 복귀하려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난다. 희망의 번성. 


지금 일어나는 혐오는 아무런 힘이 없다. 감정을 해소해주지도 않을 거고, 해답을 내놓지도 않을 거다. 분풀이도 되지 않는다. 혐오하는 사람은 자기가 꺼내놓은 혐오에 되려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 더 큰 혐오를 내놓을 뿐이다. 끔찍한 인간이 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혐오를 조장하고 의도하는 사람들이다. 혐오의 퇴화.


저번 주 금요일에는 대구 식물원에 다녀왔다. 자동차를 렌트해서 운전을 하며 도착한 그곳에는 마스크를 쓰고 눈으로 웃으면서 꽃을 보는 사람들이 일상을 꼭 쥐고 놓아주지 않는 듯 했다. 우리는 살아야 한다. '살아야' 앞에 인간적이라는 말이 붙는다.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며 일정 거리를 두고 다가오지 않는 모든 이들이 서로의 일상을 존중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하면서 경계하는 일이 따뜻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게 신기했다. 혐오가 아니라 희망을 안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방심하면 안 되고 안심해서도 안 된다. 지금은 여전히 전염병이 계속해서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전염병이 만들어낸 게 공포뿐만 아니라 혐오도 있다면 희망을 믿는 사람들은 혐오와 대적하기 위해 일상을 지켜내야 한다. 그리고 혐오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일상을 잘 유지하는 힘이 어디서 나오고, 지금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일상을 잘 꾸려나가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절로 힘이 난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그럴 거다. 


일상은 잘 꾸려나가고 있느냐는 안부를


이제 내가 건네야겠다. 


 



  *

이 글은 사회적 거리 두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에 쓰였습니다. 저는 지금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장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글을 고민 끝에 이제라도 올리는 이유는 모두가 바라던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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