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연애일기
“다녀왔습니다.”
“다녀와쯤뉘따”
내가 사랑하는 두 사람이 긴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남편은 익숙하게 아이를 유모차에서 꺼내고, 신발을 벗기고, 손을 씻기러 화장실로 들어간다.
결혼생활 3년 차인 그는 지금 가정에 충실한 아빠이다. 밥을 먹고 주방 정리를 하려고 하면 그는 자연스럽게 아이를 데리고 욕실로 향한다.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욕실에서 부녀가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가 웅웅 거리며 들려온다. 그는 자상한 남편이기도 하다. 한밤중에 찾아온 생리통에 신음하면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따뜻한 물주머니를 준비해온다.
쉽지 않을 나와의 결혼생활 동안 이 남자가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돌이켜보면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온다.
왜냐하면 나는 이 남자처럼 잠을 많이 자는 사람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찌나 잠을 잘 자던지 아직 나와 사귀기도 전, 그는 이미 여러 밤을 나의 집에서 보냈다, 아니 잠들었다. 친구들과 함께 내 집에서 술을 마시다 먼저 곯아떨어져 잠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를 저 구석에 몰아넣고 나와 친구는 계속 술을 마셨고, 몇 시간 후 다른 친구들도 집으로 돌아가면 나는 코를 골며 자는 그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다음날 아침 내가 눈을 떴을 때 그는 놀랍도록 어제와 같은 자세로 잠을 자고 있었고 곤히 잠든 그를 두고 나는 악기를 챙겨 학교로 향했다. 오전 연습을 끝내고 친구들과 점심까지 먹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 복도 끝까지 그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정말 그 시간까지 쭉 잠을 잤는지, 혹여 기꺼이 잠을 자며 내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린 것인지 궁금했다.
개나리가 피기 시작하던 3월 나는 이 잠꾸러기와 연애를 시작했다.
오케스트라 연주가 있던 어느 날 뒤풀이 장소에 그와 함께 가게 되었다. 사방에서 들리는 독일어와 막 연주를 끝내 흥분이 가시지 않은 연주자들 사이에서 피곤해진 그는 나에게서 열쇠를 받아 먼저 집으로 (내 집) 돌아갔다. 봄이었지만 맥주에 취한 밤은 꽤나 쌀쌀했다. 집 앞에 도착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역시나 잠에 든 모양이다. 40통이 넘는 전화와 쉴 새 없이 눌러대는 초인종 소리도 그를 깨울 수 없었다. 쌀쌀한 밖에서 한 시간을 넘게 기다리다 민폐를 무릅쓰고 다른 집을 호출해서야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집 앞에 도착한 나는 짜증과 원망을 가득 담아 문을 쾅쾅 두드렸다. 그로부터도 한참을 지나서야 그는 두 눈을 아주 크게 뜬 채로 문을 열었다. 당황스러움과 미안함이 뒤섞인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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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보며 사랑의 힘이 (혹은 잔소리의 힘) 얼마나 위대한지 느낀다. 나를 만나고, 아이가 태어나고서 그의 잠은 놀랍도록 얇아졌다. 바다처럼 넓고 깊어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들었던 그의 잠은 이제 아이들 전용의 얕은 수영장만 한 크기로 줄어들었다. 감기에 걸린 아기가 칭얼거리는 소리, 통곡을 하며 우는 나의 잠꼬대를 들으면 그는 곧장 계단을 타고 잠의 수영장에서 빠져나와 아이를 안아주거나 나의 등을 쓸어내린다.
우리는 더 이상 밤새 카톡을 주고받으며 키득거리지 않고, 밤하늘을 바라보며 사랑을 속삭이지 않는다.
서로에게 보내는 카톡은 집에 올 때 양파를 사들고 와달라는 부탁 혹은 각자가 찍은 아이의 웃긴 사진 정도지만 우리는 지금 너무나도 괜찮다.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때 가졌던 두근거림은 가고 없지만 기꺼이 잠에서 깨어나는 사랑은 쉽게 식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