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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미워이 Jan 2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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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의 비결 - Stephen Curry

어디서부터 글을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며칠 전부터,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이 주제로 글을 쓰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게으름이 또 나를 물고 그러는 동안 상황은 변하고 시간은 흘러갔다. 최근에 와서 다시 이런 얘기를 하기에 적절한 때가 찾아왔다고 느꼈다.


NBA를 처음으로 막 보게 된 당시부터 내가 좋아했던 선수들이 있는데 나는 지금도 이들의 플레이를 찾아보는 것을 즐긴다.

Mark Price, Latrell Sprewell, Eddie Jones 그리고 our great, Steve Nash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가드 포지션에서 플레이했다는 것, 그리고 우승 가까이*에서 좌절한 경험은 있지만 우승 경험은 없다는 것이다.

(*파이널 또는 컨퍼런스 파이널)


그들의 소속팀이 우승하기를 진정으로 바라며 응원을 했었지만 우승 앞에서 좌절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마음이 그들을 더 좋아하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했던 것 같다. 이루지 못한 목표가 언젠가는 이뤄질 것을 기대하는 마음이 계속 남아있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들 모두 우승반지를 껴보지 못한 채 커리어를 마감하였다.

1999년  NBA finals 5차전 Sprewell의 마지막 슈팅장면… 그중 그나마 우승에 가장 가까웠던 선수

나로 하여금 처음으로 우승팀을 응원하게 해 준 선수가 있으니 바로 Stephen Curry다. 그가 NBA에 진출한 이후부터 리그 MVP가 되고 첫 우승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 겪은 선수로서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과 함께 개인과 소속팀이 NBA에 남긴 역사와 뚜렷한 성장과정의 이야기는 Golden State Warriors와 Curry를 응원하는 사람들에게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첫 우승 이후 이어진 네 번의 시즌 동안 2번의 우승과 2번의 준우승이 더 있었지만 첫 우승 때만큼의 응원하는 기쁨은 주지 못했는데 이유를 설명하려고 하면 아주 길어질 여러 종류의 내용들을 포함하기에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이후 Kevin Durant가 팀을 나가고 리그 최하위를 달리다 Covid-19로 인해 시즌이 중단되고, 다음 시즌 인시즌 토너먼트 탈락을 하면서 Warriors 왕조가 사실상 막을 내렸다거나 리빌딩을 생각할 적기라거나 하는 얘기들이 솔솔 나오기도 하였다. 하지만 다음 시즌에 거짓말 같이 다시 우승을 차지하고 Curry는 파이널 MVP까지 수상을 하면서 이전 세 번의 우승 동안 한 번도 파이널 MVP를 수상하지 못하며 다른 에이스에 기대어 우승하는 슈퍼스타라는 조롱을 받아왔던 아픔까지 훅 털어 버렸다.


<Celtics와의 파이널 6차전을 승리하며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Curry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먹이는 모습을 보며 나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조금 다른 얘기이기는 하지만 1999년에 한화 이글스가 구단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한국 시리즈 우승을 한 이후 더 이상 한국 야구를 볼 이유가 내게서 사라져 버린 것과는 다르게 난 여전히 Warriors와 Curry의 경기를 보고 있다. 그냥 조용히 프랜차이즈 선수들의 마지막을 예우해 주며 팀 역사의 한 챕터를 마무리하면 될 것이라 생각을 했지만 그러기엔 여전히 준수한 Curry의 실력도 그렇고 아직 나는 고액 연봉을 받아낼 가치가 있다고 자신하는 다른 두 명의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은퇴시키기에도 시간이 좀 남은 듯하다. 덕분(?)에 팀은 본격적인 Curry 시대에 들어선 이후로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부침을 겪고 있다. 선수와 감독의 능력치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으며 플레이오프 탈락이 예견될 만한 상황도 모자라서 팀 주축 선수들의 기행과 언사들까지 더해지며 Warriors는 연일 호사가들의 도마 위에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 팀의 어시스턴트 코치가 심장마비로 급작스레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팀을 바라보는 팬으로서 이래저래 마음이 편치가 않다.


Curry는 항상 본인의 농구화에 아래의 문장을 쓰고 경기에 출전한다.

“I can do all things…”

<데뷔 초창기에는 Nike를 신었던 Curry>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것은 기독교 성경의 구절 중 하나로 사도바울에 의해 기록된 빌립보서 4장 13절 말씀의 일부이며 한국어로 된 전체 문장은 이러하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Curry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져 있고 본인도 그것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하지 않는다. Curry의 Davidson 대학교 입학부터 NBA입단 과정, 초창기의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이 구절이 그의 성공과 함께 얼마나 많이 언급이 되었는지는 많이들 알 것이다. ‘믿음을 갖고 기도하며 최선을 다해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해 주신다‘는 간증과 같은 해석부터 신앙과 상관없이 ’나도 할 수 있다!‘를 외치며 자신감을 갖고 도전하기를 격려하는 내용들을 지금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성경을 좀 더 들여다보자. 이 구절 앞의 빌립보서 4장 11-12절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결국 이 뒤에 이어지는 ‘I can do all things…’는 ‘내가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하면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나로 하여금 기쁠 때나 힘들 때나 모든 상황을 견디고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셨다’는 뜻이다.


이를 기록한 바울은 유대인이지만 당시 많은 특권을 누리던 로마 시민권자였고 당대 유대교 최고 랍비의 제자로 학식이 높은 사람이었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박해하기를 일삼다가 예수를 만나 회심하고 나서는 오히려 이전의 자신과 같은 사람들로부터 박해를 받고 갖은 고초를 겪으며 그야말로 사서 고생하는 삶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기록은 이러한 본인의 경험에서부터 나온 고백일 것이다.


나는 Curry가 정확히 어떤 마음으로 빌립보서 4장 13절을 마음에 새기고 신발에도 새기고 2009년부터 지금까지 15번의 시즌을 달려왔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가 그 성경 구절에 담긴 진짜 의미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다면 그것이 진정으로 빛을 발하는 순간은 성공가도를 달리던 지난 시절이 아니라 오히려 내리막길을 달리며 커리어 끝을 향해가는 바로 지금일 것이라 확신한다.


모두가 실패의 가능성을 더 크게 보던, 고질적인 발목 부상에 발목 잡혀 더 이상 가망성 없어 보이던 한 어린 선수가 농구의 패러다임을 바꿔 버린 위대한 선수가 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정말로 노력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가졌었다. 반대로, 지금의 Warriors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엔 절망과 조롱이 담겨있고 Curry에 대해서도 그간 동료들 덕에 성공을 달려온, 더 이상 혼자 힘으론 팀을 구할 재주가 없는 과거의 에이스라는 비아냥이 들린다.


농구 선수는 성적으로 평가를 받는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평가도 좋지 않은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문제는, 성적이 좋지 않은 선수는 성적 이외의 것으로도 평가를 받는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과거엔 좋은 성적의 요인이 되었던 것들이 지금은 실패의 원인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Klay Thompson의 엄청난 자신감, Draymond Green의 터프함, Curry의 창조적인 플레이는 분수를 모르는 자존심, 더티한 매너, 요행을 바라는 무리한 플레이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바라보는 Curry는 여전히 겸손하고 이타적인 마인드로 팀을 이끄는 동시에 철저히 동료들을 의지하는 최고의 리더이다.


그가 이룬 과거의 성공들도 숫자로 영상으로 기록되어 있는 변함없는 역사가 되어 있다. 남은 기간 더 이상의 우승은 기대하기 힘들 상황에도 그가 지금까지 선수로서, 인간으로서 보여준  긍정적인 가치와 태도들 역시 역사로 남을 것이다.


I can do all things… 부디 Curry 본인에게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변함없이 서로 사랑하며 농구하겠다는 다짐이 있길 바란다. 그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견디고 살아내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기를 바란다.


신발에 써넣은 그 성경 말씀처럼, 설령 과거의 성공 근처에도 이르지 못하고 남은 커리어를 마감하게 되더라도 마지막까지 자기 위치를 제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며 최선을 다해 경기하는 선수이기를, 그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올바른 신념과 가치를 제대로 살아내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것은 곧 동료와 팬들에게 그가 이룬 어떤 업적과 성공보다도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될 것이다.


“I can do all things through Christ who strengthens me.” (Philippians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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