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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미워이 Apr 19. 2024

4월은 잔인한 달

Klay Thompson 그리고 박혜진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T.S. Elliot, The Waste Land ) NBA를 즐겨보는 나로선 그 말이 더 깊이 와닿는 요즘이다.


NBA 23-24 시즌 인 시즌 토너먼트 1라운드가 끝났다. 시즌 내내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의 경기를 지켜보는 나에겐 시즌 종료와도 같은 하루가 지나갔다. NBA의 단일 쿼터 최다 득점 기록(37점)을 가지고 있는 클레이 톰슨은 그 기록의 상대였던 새크라멘토와의 인시즌 토너먼트에서 단 1점도 기록하지 못하며 팀 완패의 책임을 떠안으면서 어쩌면 워리어로서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시즌을 그렇게 마감하고 말았다.

탐슨은 경기 후 쉽게 퇴장하지 못하고 코트위에서 관중석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유니폼을 입은 관중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경기 직후, 다음 시즌에도 워리워스와 함께 하려면 새로운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 톰슨의 거취에 대한 질문이 커리와 그린, 커 감독에게 쏟아졌다. 약속이라도 한 듯 다들 톰슨과 함께 하길 원하고, 여전히 그가 훌륭한 선수이며, 우리는 우승을 위해 그가 필요하다고 말을 하면서도, 프로스포츠는 결국 비즈니스이기 때문에…라는 태도를 완전히 버리지는 못한 느낌이었다.


내가 농구에 크게 집중하기 시작한 이후로 NBA에서 왕조라고 일컬어지는 팀을 꼽아보자면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 샤크와 함께 뛴 시절을 포함한 코비 브라이언트의 LA 레이커스, 팀 던컨의 샌안토니오 스퍼스 그리고 스테픈 커리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정도가 있겠다. 그중 커리어의 시작부터 마감까지 한 팀에서만 4회 이상의 우승을 기록한 선수는 그리 많지 않은데 마이클 조던(은퇴 이후 잠시 복귀한 워싱턴 시절은 제외한다면…), 코비 브라이언트, 팀 던컨과 마누 지노빌리 정도가 있겠다. 워리어스의 커리, 탐슨, 그린은 아직 커리어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데뷔 이후 지금까지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4회 우승하는 과정 모두 핵심 전력으로 뛰었다는 측면에서 근래 보기 드문 낭만 농구를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중 누군가 팀을 떠난다는 건 팬이든 동료든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은 아닐 것이다. 팀을 위해서든 선수 개인을 위해서든 무엇이 중요한 결정인가에 대해 많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프로 선수라면 어떠한 상황에 직면하던지 간에 선수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 말고는 더 나은 선택지가 딱히 없기 마련이다. 그것은 잔인한 일이기도 하고 가끔은 대단히 중요한 변화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탐슨, 커리 그린. 워리어스가 최근 10년 동안 4번의 우승을 차지하는 동안 그들은 늘 함께였다.


매번 NBA 얘기만 하다가 뜬금없다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WKBL의 박혜진 선수가 데뷔 이후 16년 간 몸 담았던 우리은행을 떠났다. 부상으로 오랜 공백기를 딛고, 이번 시즌만큼은 정말 이기기 힘들 것 같았던 정규시즌 1위 KB를 꺾고 리그 2연패를 하는데 기여한 그녀를 바라보며 큰 감동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적소식을 듣게 되다니, 그것도 자유계약 신분으로 내린 결정이었기에 팬으로서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박혜진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워리어스를 응원하는 입장에서 클레이 톰슨에게도 애정이 있는 나로서는 그가 어떻게든 워리어스에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본투비워리어…이런 류의 감성을 찾아보기 힘들어진 우리 시대의 NBA에서 워리어스만큼은 마지막 감성을 지켜주는 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탐슨 정도의 선수가 은퇴하기 전까지는 팀의 변화를 꾀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농구에 대해 그 정도의 열정과 실력을 가진 선수에게 적당한 금액과 역할에 만족하고 그냥 남아서 뛰라고 종용한다면  그것 역시 잔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박혜진이 내린 결정에 마음으로부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국내 프로스포츠로 한정하더라도 WKBL이 가진 위상과 관심은 결코 크지 않다. 이 나라는 결국 야구와 축구에 더 열광할 뿐인데, 그 와중에 농구 선수로서의 길을 선택하고 무려 16 시즌이나 한 팀에서 하이레벨의 커리어를 이어 나갔다는 것은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증거이다. 말년에 익숙한 자리에서 존경받는 팀의 레전드로 남기보다 새로운 도전을 택한 그녀를 응원한다.

BNK로 이적 보도가 나온 이후, 그녀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팬들에게 인사를 남겼고, 팔로워인 나는 좋아요와 댓글을 남겼다.


같은 의미로 클레이 톰슨에게 어떠한 선택지가 주어지더라도 우리는 선수로써 그의 선택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나는 그가 적당한 금액에 줄어든 역할을 받아들이고 팀에 남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것은 드레이먼드 그린에게도 마찬가지로 갖는 생각이다. 결은 조금 다르지만…)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선수로서 그의 가치를 인정하고 자신들에게 중요한 자산으로 활용하기 원하는 팀으로 가겠다고 하면 나는 그 길을 축복하고 응원할 것이며 그러한 부분에 있어 대다수의 워리어스 팬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팀을 떠나더라도 그가 쌓아온 모든 커리어와 선수로서의 가치는 워리어스라는 팀에서 커리와 그린과 함께 뛰며 만들어낸 것이고 이는 곧 다른 팀에서도 그것을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한다는 증거가 된다.


사실 내가 워리어스를 응원한 것은 탐슨이 아닌 커리 때문이다. 커리의 농구 실력이나 선수로서 만들어 낸 여러 결과보다는 한 인간으로서의 그가 가진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의 실력이 그저 그런 것이었다면 관심을 가질 기회조차 없었겠지만 어쨌든 그는 자기가 받는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좋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리그의 다른 어떤 선수보다도 그것을 성숙하게 잘 이어나가고 있다. 그것은 워리어스 팀 문화의 기반이다. 그리고 탐슨을 원하는 팀 입장에서는 그 정도의 프랜차이즈 스타라면 그러한 문화를 자신들의 팀에도 이식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가 그것을 잘 해내길 바라는 마음에서 탐슨을 응원할 것이다. 탐슨은 언제든지 체이스 센터에서 기립박수로 환영받을 레전드로 남을 자격을 이미 갖고 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한 번의 도전을 가로막을 만큼 옹졸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떠나라는 건지 아니면 남으라는 건지…어떤 것이 옳은 결정일지를 톰슨이 나에게 물어볼 일은 없겠지만 어쨌든 우유부단한 나의 대답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창세기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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