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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미워이 Nov 09. 2024

상처 입은 치유자

24-25 시즌 NBA가 개막을 하고 벌써 3주가 지나고 있다. 그 사이 많은 소식이 있지만 최근 들어 가장 많은 관심을 끄는 것은 선수들의 부상 소식이다. 지난 시즌 혹은 오프시즌 기간 동안 당한 부상으로 아직 시즌 데뷔를 못한 선수도 있고, 개막전을 뛰는 중에 혹은 뛰고 난 직후 부상을 당한 선수도 있고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부상으로 일찌감치 시즌을 마감한 선수도 있다.


올 시즌 개막전에서 아킬레스 부상으로 사실상 시즌을 마감한 인디애나의 제임스 와이즈먼이나 2년 동안 코트를 밟지 못하고 가까스로 복귀하며 농구인들로부터 격한 환영을 받았던 론조 볼이 복귀 후 또 다른 부상으로 이탈하는 것을 보면서,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2009년), 그렉 오든의 부상 직후 미니홈피에 올렸던 나의 글이 생각이 나서 다시 찾아 읽어 보았다. NBA.com에 게재되었던 칼럼을 읽던 중에 비슷한 시기에 읽었던 헨리 나우엔의 <상처 입은 치유자>에서 영감을 얻어서 칼럼 원문의 번역글에 내 생각을 조금 덧붙인 글이었는데, 원문을 다시 보려고 아무리 검색해도 나오지 않아서 이제는 원작자가 누구인지도, 나의 독해가 얼마나 엉터리인지도 밝힐 수 없게 돼 버렸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케빈 듀란트를 제쳐두고 1라운드 1번으로 지명한 포틀랜드를 아무도 나무라지 않았을 만큼 엄청난 재능으로 불리던 오든에 대해 말하는 사람도 이제는 별로 없는 듯하여 아쉽기도 하다. 타인의 아픔을 이용하는 기회주의자로 비치지 않기를 바라며, 부상으로 신음하는 선수들의 아픔에 한 명이라도 더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길 바라며 (내 새 글을 기대하는 독자들에게도 안부인사를 전할 겸…) 그때 작성했던 글을 조금 다듬어서 다시 올려본다.


(2009년 12월에 최초 작성된 글임을 밝힌다.)


20091215 그렉 오든(Greg Oden) <Wounded Healer>


오든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없겠느냐고 물었을 때, 힐(Grant Hill)은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잠시 침묵했다. 감정이 복받쳐 오른 것이다.

 

"많이 힘들 거예요." 한숨을 쉬며 힐이 대답했다.

"제가 그와 똑같은 부상을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탈출했다 싶으면 다시 쓰러지고, 혹독한 재활이 한 번 두 번 반복되고 그러는 동안 체념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겁니다."

 

좌절, 무기력, 분노, 침체, 근심 등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 것 같은 상황에 느낄 수 있는 여러 감정들 전부가 힐에겐 아주 익숙한 것이다. 올스타 6회 선정에 빛나는 슈퍼스타였던 힐은 발목 수술과 그 뒤를 이은 여러 다른 부상으로 전성기의 4년가량을 날려버렸다. 당시 힐은 마치 뱀에게 물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지금의 오든 역시도 그럴 것이다. 21살의 7피트 장신 Blazer에겐 현 상황이 너무나 가혹한 것처럼 보인다. 부상으로 인해 그의 커리어에 제동이 걸린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지난 12월 5일, 시즌 개막 단 21경기 만에 왼쪽 슬개골 골절이란 흔치 않은 부상을 당한 오든에게는 다시 한번 부상을 극복해야 하는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2007년 드래프트 전체 1번으로 지명되었던 그는 화려하게 자신을 알려야 했을 프로데뷔 첫 시즌을 마이크로프랙쳐 수술로 포기해야 했고, 지난 시즌엔 신체의 이런저런 문제들로 인해 여러 차례 결정하며 61게임만을 소화했다.

"그는 분명히 계속해서 뛰고 싶을 거예요." 힐은 말한다. 힐은 지금까지 총 15 시즌을 뛰었다. Pheonix에서는 3년째다.


"반드시 복귀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해요. 그리고 이 시간을 부상과 자신의 신체에 대해서, 그리고 이어지는 선수생활을 다른 부상 없이 건강하게 이어나가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기회로 여겨야 합니다."

 

37세의 힐은 현재 인체해부학 강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발목에 대해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재활치료 기간 동안 배워 나갔다. 하지만 그 과정에 얻은 정신적인 소득은 그의 해부학적 지식보다 훨씬 큰 것이다.

 

"부상에 지칠 대로 지쳐 미쳐갈 즈음에 나는 이것에서부터 뭔가 얻어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오든은 그를 드래프트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등의 말로 그에 대해 의심을 품는 평론가들이나 팬들을 무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스스로 포틀랜드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건 신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신력과 감정의 문제입니다. 부상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또 일어날 수 있어요."

 

힐은 그가 6년째 뛰던 시절에 그의 발목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을 행운이라 생각하고 있다. 선수로서 아주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결혼해서 막 가정을 이루기 시작하면서, 개인적으로도 프로선수로서도 가장 안정감을 느낄 수 있던 시기에 그는 부상을 당했다.

 

오든의 경우 결혼은커녕 커리어를 제대로 시작할 기회조차 없었다.

 

"그는 모두로부터 주목받던 최고의 고교선수였고, 대학에서도 자신의 팀을 결승전에 올려놓은 장본인이며 드래프트에선 전체 1위로 지목받은 자신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상은 그것과 달리 매우 괴로운 경험이지만 곧 자신에게 새로운 시각과 이해를 가져다줄 좋은 경험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다시 경기를 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 현 상황을 다르게 생각하며 감사하고, 희망을 가지고 그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란 어린 나이에는 더욱 쉽지 않은 일이죠."

 

피닉스의 락커룸에서 오든의 괴로움을 이해할 사람은 힐뿐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레 스타더마이어(Amar'e Stoudemire). 그는 벌써 3번의 무릎 수술을 받았고 그중에는

그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에 받은 마이크로프랙쳐 수술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망막 박리로 인해 지난 시즌도 일찍 마감해야 했다. 오든과 잘 아는 사이인 스타더마이어는 오든의 부상소식을 듣고 마음이 많이 가라앉았다고 말했다.

 

"저는 오든처럼 나쁜 상황을 겪어 보지는 못했어요. 그는 아마 스스로 머리를 감싸고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의아해하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훌륭한 선수였던 본인을 기억하면서 반드시 복귀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진정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오든 스스로의 평가일 것입니다."



 

오든의 부상이 있고 얼마 후에 읽은 nba.com에 게재된 칼럼을 번역한 내용이다. 이건 헨리 나우엔의 '상처 입은 치유자' NBA 판이라고 해야겠다. 책을 정독하고 난 직후라 그런가 더 맘에 와닿았다.

 

다행인 건 지금 포틀랜드의 팬들이 그를 잘못 뽑았다느니 제2의 샘 보위(Sam Bowie - 전체 2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포틀랜드가 마이클 조던-당시 3순위-보다 앞서 뽑았던 선수로 역대 NBA 최악의 드래프트로 지금까지 화자 됨)라느니 하는 말들은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 안 좋은 일만 터지면 악플이 난무하고 사소한 과거 행적 하나까지 모두 들춰내며 비난하는 요즘 시대에는 이 정도 기사도 얼마든지 마음을 감동시킨다. 힐이나 스타더마이어가 '상처 입은 치유자'를 읽어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고통을 당하고 아픔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비슷한 경험으로 괴로워하는 다른 사람을 공감할 수 있는 축복이 허락된다. 이는 고진감래의 열매보다 훨씬 귀하고 갑진 것이다. 아니 고진감래의 달콤한 열매는 그로 인해 이뤄낸 성과가 아닌 그로부터 체득한 경험이라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부상으로 뛰지 못한 경기를 손에 꼽을 만큼 철저한 자기 관리로 모두에게 귀감이 된 존 스탁턴(John Stockton) 같은 선수도 있고 이런저런 부상에 시달리면서도 그것을 극복해 나가며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는 선수도 있다. 대부분은 스탁턴과 같이 커리어를 이어가고 싶겠지만 부상 없는 운동선수를 만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현실이다.

 

힐과 스타더마이어가 어떤 커리어를 이어 나갈지는 모르지만 부상의 어려움을 이겨낸 그들의 경험은 부상으로 고통받는 다른 선수들을 위로하고 도울 수 있는 축복이기도 하다. 고난, 상처 등은 그냥 나쁜 기억으로 치부하고 지워버리기엔 그것을 극복하며 지불한 대가가 너무나 크다.

 

상처 입은 치유자, 그것은 자신의 상처를 돌보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준비되는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 상처 입은 치유자 中-

 

10년 베테랑의 얼굴을 한 21살의 오든이 지금 겪는 어려움을 통해서 10년 베테랑의 연륜을, 부상으로 힘겨워하는 다른 동료들의 회복을 돕는 치유된 상처를 얻을 수 있다면 챔피언쉽보다 더 큰 영광을 선수 시절 동안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선수생명을 구하는 선수라, 말만 들어도 영광스럽다.

내년에 코트에서 만나자 오든.


(여기까지가 2009년 당시 기록했던 글이다.)


안타깝게도 오든은 지난한 재활을 이어가다 결국 NBA 무대로 정상적으로 복귀하는데 실패하면서 보위, 브랜든 로이(Brandon Roy)와 함께 이른바 ‘포틀랜드의 저주’에 합류하고 말았다.


당시에는 힐이나 스타더마이어처럼 부상을 극복하고 성공적인 컴백을 이루어 그 경험을 바탕으로 오든처럼 부상으로 신음하는 다른 선수들이 회복의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독려하는 롤모델이 되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글을 썼던 것 같다. 그것은 여전히 중요하고 영광스러운 일이겠지만 그만큼 마주치기 힘든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원래의 바라던 모습이 아니어도 충분히 아름답고 소중한 삶을 이어나가는 선수들에 대해서도 많이 보여주고 그 역시 충분히 가치 있는 커리어임을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오든은 비록 선수로서의 커리어는 일찌감치 마무리하였지만, 이후 모교인 오하이오 주립대학에 복학하여 스포츠 관련 학사를 취득하고, 농구계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해 왔으며 바로 얼마 전까지는 버틀러 대학 농구부의 코칭스태프로 일했다. 모든 이의 주목을 받으며 최상위 레벨에서 경쟁하던 선수로서의 화려함은 없었을지라도 적어도 그저 과거를 되돌아보며 절망 속에 살아가는 인생은 아닌 것처럼 보였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며 짧은 커리어 동안 이룩한 일들과 이후의 행보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앞선 나의 2009년 글과는 조금은 다른 의미에서 ‘상처 입은 치유자’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제임스 와이즈먼도, 테일러 헨드릭스도, 론조 볼도 그저 건강하게 코트 위로 다시 돌아오기를 바랄 뿐이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 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히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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