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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미워이 Aug 18. 2024

잘못된 판단

커리, 르브론, 올림픽 농구

한 동안  농구계가 파리 올림픽 미국 대표팀 얘기로 가득 찼다가 이제 물이 좀 빠진 느낌이다.


현재 머무는 국가 사정 상 대한민국의 다른 올림픽 경기들도 제대로 본 것이 없었지만 농구를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이전까지 죽 쑤던 커리가 세르비아와의 4강전에서 한 방에 불이 붙어 팀에게 어려운 승리를 가져다준 활약을 본 나머지, 이 나라 기준으로 새벽 2시 반에 진행된 농구 결승전을 유료의 시청료를 지불하며 라이브로 지켜봤다. 프랑스와의 결승전 4쿼터 커리의 활약은 그가 2번째 정규시즌 MVP를 거머 줬던 시즌의 그것을 보는 듯하였다. 1분도 남지 않은 시점에 바툼과 포니에의 더블팀을 달고 페이더웨이 3점을 성공시킨 후 나잇나잇 세리머니를 할 때는 과거 커리의 서커스 샷 이후 머리를 쥐어뜯던 스티브 커 감독의 모습도 떠올랐고, 보스턴을 상대로 4번째 NBA 우승을 확정 짓던 때 이후로 정말 오래간만에 전율을 느꼈다.

미국 대 프랑스의 파리올림픽 농구 결승 종료 30초 전, 와이드 오픈의 듀란트와 르브론을 두고 더블팀을 넘어 3점을 성공시키는 커리 그리고 나잇나잇


극심한 슛부진으로 자칫 기분만 내다가 파리에서 돌아올 뻔했던 커리는 준결승과 결승전에서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인 덕분에 그야말로 흥이 오를 대로 오른 상태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중심에 르브론 제임스가 있었고 케빈 듀란트가 있었고 데빈 부커가 있었고 앤서니 데이비스가 있었다. (그 밖에도 즈루, 앤트맨 등등등…) 커리를 빼고선 그다지 좋아하는 선수를 찾기 힘들었던 대표팀, 안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 싫어했던 선수들 투성이었는데 나의 기호와는 상관없이 서로 하나가 돼서 뛰는 모습은 보기 좋지 않다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냥 보기 좋았다고 하면 되는데…)


이번 올림픽 결승 전 이후 미국의 어느 방송(인지 팟캐스트인지)에서 르브론의 팬이라고 하는 어떤 농구해설자가 커리를 응원하는 기분이 이런 느낌이었구나 말하면서 신기해했는데, 그가 미국 사람이기도 하고 르브론과 커리가 한 팀에서 같은 목표로 최선을 다해 뛰는 것을 생전 본 일이 없었으니 그럴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림픽 얘기는 아니었지만, 내가 즐겨보는 농구유투버 채널에 나온 워리어스 팬으로 알려진 유명인이 했던 이야기도 기억에 남았다. 다음 시즌 워리어스의 성적에 대해 예상해 보는 그런 영상이었는데, 지난 시즌 로스터를 언급하며 자기 생전에 크리스 폴을 응원하는 일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는 얘기를 할 때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폴이 한 시즌만에 팀을 떠난 사실에 대해서도 차라리 잘됐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도 역시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후후후)


농구를 좋아하고 농구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를 돌아보며 가장 크게 반성할 일이 있다면 누군가에 대해 험담을 밥먹듯이 해왔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미안한 사람은 돌아가신 코비 브라이언트 형님과 흰 턱수염이 자라고 있는 나보다 올림픽 한 번 덜 본 르브론 제임스다.


내 농구 관련 글에 가장 많은 영감을 주었던 선수는 스티브 내쉬였다. 그의 전성기는 샤크와의 결별 이후 홀로서기에 성공한 코비 브라이언트의 전성기와 맞닿아 있었다. 파이널 문턱에서 레이커스에게 패배를 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레이커스를 떨어트리고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던 순간이나 코비가 구설수로 차지하지 못한 리그 MVP를 내쉬가 가져갔던 것은 내겐 참으로 통쾌한 일이었다.

Kobe의 미성년자 성추문 사건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기에 2006년은 아직 이른 감이 있었나보다. 그는 2008년이 되어서야 처음이자 마지막 정규시즌 MVP를 수상한다.


내쉬 이후 갈곳 모르던 나의 마음은 내쉬와 여러 면에서 닮았다고 생각이 되었던 커리에게로 향했다. 커리의 전성기는 대부분의 현역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르브론의 전성기와 맞닿아 있다. 차이가 있다면 대부분의 현역 선수들과는 달리 커리는 르브론과 맞붙어 르브론만큼의 우승을 차지했다는 점이다.  


코비나 르브론은 둘 다 리그에 자기보다 뛰어난 선수는 없다는 엄청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고 타인들도 그것을 인정하기에 충분한 커리어를 보낸 선수들이었다. 엄청난 실력을 가졌다고 하지만, 코비가 동료들을 심한 말로 질책하던 모습이나, 르브론이 팀을 옮겨 다니고 구단을 압박하여 자기 입맛대로 팀을 재구성하는 모습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여겼었다. 그래서, 그들과는 다르게 이타적이었던 내가 좋아하는 선수들을 높이면서, 동시에 글을 쓰는 나를 스스로 우월한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드러내는 일에 그들을 향한 비난을 사용해 왔던 것 같다.


코비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보니, 그는 정말 거만하고 고집 센 사람이었지만 단순히 돈에 이끌려 이 팀 저 팀 옮겨 다니는데 에너지를 쓰지 않고 그것을 오로지 농구에 대한 열정과 노력에 쏟아부어 최고의 자리에 여러 차례 오르면서 팀과 팬에 대한 존중까지 지켜낸 선수였다. 이는 분명 요즘 NBA에서는 쉽게 찾기 힘든 모습이다.


남들 같으면 은퇴하고도 한참을 지났을 나이에도 전 세계 최고의 기량을 유지하는 자기 관리, 올스타팀이든 올림픽팀이든 그 누구도 그가 자신의 리더가 되는 것에 있어 이견을 갖지 않는 리더십의 소유자 르브론은 그것 만으로도 농구인이든 일반인에게든 좋은 영감을 주는 선수다.


그동안의 내 생각이 틀렸었고 그들은 완벽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좋은 가치를 전달하겠다고 하면서 정작 그들이 보여준 좋은 가치는 외면하고 부정적인 것만을 부각시키려 했다는 것을 스스로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비판하고 싫어했던 선수들도 막상 내게 필요한 무언가를 얻어내야 하는 상황에서는 응원도 하고 보면서 즐거워도 하는 이율배반적이었던 내 태도를 보고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지난 1년 남짓의 시간 동안 나와 많은 얘기를 나눠오던 한 친구로부터 내가 수다가 많은 사람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 대화 자체는 유쾌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로 인하여 그간 내가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 속에 타인에 대한 비판이 차지하던 비중이 상당했음을 알고 속으로 혼자 뜨끔해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그동안 내 글쓰기의 원동력이 누군가의 행동과 가치관에 대한 내 기준의 비판이었음도 깨닫게 되었다. 글쓰기가 늘 어려운 이유가 내 안에 이에 대한 불편함을 나도 모르게 느끼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라고 핑계를…)


농구를 보며 느끼는 좋은 가치를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네이버 블로그에 많은 글들을 써 왔고, 이제는 브런치에다 글을 쓰고 있다. 계속하고 싶다면 내가 애정하는 선수를 높이기 위해 다른 선수를 비하하며 비교하는 일부터 멈추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어쩌면 은퇴와 가까운 결심이 될 수도 있겠다. 사람이 하는 일을 얘기하면서 사람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고 올바른 가치를 말하면서 옳지 않은 가치에 대해 비판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그런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되겠다. 진리가 감추어질 수 없는 것처럼 좋은 가치는 어떻게든 전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계속 보고 계속 써보련다. 누구를 미워하지 못한다고 해서 재미없을 농구는 아니지 않은가? ‘구독과 좋아요’가 좀 줄어들어도 상관없다. (어차피 얼마 안 된다.) 사람의 인기를 얻기 위해서가 아닌, 농구를 보고 즐기는 시간들을 보다 의미 있게 하기 위함이니까.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로마서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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