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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라 Oct 17. 2024

고독을 즐기는 것이란 무엇인가

즉흥적인 후쿠오카 혼여행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신경을 쓰는 일이 때로는 버거워서, 나 자신이 1순위가 되지 못하는 부자유가 갑갑해서, 연휴 동안 집에 있기보단 혼자 어딘가 가고 싶었다. 갑자기 내일 일본에 가겠다고 하니 혼자 해외여행은 안된다, 차라리 남친이랑 간다 했으면 편히 보내줬을 거라는 부모님의 코멘트를 뒤로 하고(없으니까 남친) 바로 숙소랑 항공편 결제 완료. 


 호주와 영국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면서 자주 돌아다녔지만 카메라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다행히 2008년도에 아버지가 구매하신 캐논 450D가 잘 작동되길래 들고 갔다. 10/1~10/4 후쿠오카 3박 4일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혼자 여행을 다니는 장점과 '고독'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ICN → FUK

 혼자 하는 해외여행은 자존감을 채워준다. 여행자의 신분으로 새로운 장소에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문화를 습득하는 경험은 즐거운 불안정성을 느끼게 해 준다. 여행 중의 불안정성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오는 성취감은 확실하고 부담 없이 이룰 수 있다. 게다가 혼자면 얼마든지 실수해도 괜찮다. 지하철을 잘못 타든 계획이 틀어지든 부담이 없다. 해방감과 성취감 때문인지 여행 둘째 날에는 얼굴이 핀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래도 가끔은 심심하더라. 복잡한 하카타역 주변에서 길을 헤맸을 때는 혼자 와서 다행이었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는 혼자 와서 아쉬웠다.


 여행을 다니는 내내 홀로 있던 건 아니다. 인스타나 카톡을 끊지도 않았고, 호스텔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언어가 힘이고 소통이 곧 능력이더라.) 도시를 돌아다니는 동안에도 말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후쿠오카 미술관에서 일본어로 한국인 대학생인데 학생 티켓이 되는지, 카메라로 작품 촬영이 가능한지 등의 당연한 질문을 하고 다시 그 직원분을 마주쳤을 때 기분 좋게 웃으며 목례하는 상호작용 하나하나가 작품 감상보다 더 기억에 남았다. 감정은 경험과 불가분 하다. 그리고 그 경험과 생각, 감정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알기에 혼자여도 크게 심심하지 않았다.


 내게는 혼자 있고 싶지만 존재는 의식되었으면 하는 아이러니한 바람이 있다. 이러한 실존 욕구는 나 자신을 1순위로 두지 못하는 결함에서 온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다. 그저 타인과의 관계 속에 존재하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데에 익숙해져서 통제 가능한 나를 조금 눌러두는 게 당연해졌을 뿐이다. 존재가 의식되고 싶은 바람은 '아무도 없는 숲의 나무는 쓰러져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라는 경험론자 버클리의 말과 잘 들어맞는다.


 나는 좋은 일은 공유하고 힘든 일은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이 근간에서 온다고 믿고 있다. 나의 관점에서 현존재가 시공간 속에서 연속체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인식이 이루어져야 한다. (여담으로 이때 감정의 공감보다 현황(status quo) 파악이 우선 되어야 한다. 상황을 알아야 공감이 가능하지 않냐구-"나 힘들어"->"왜?"는 당연한 수순이다. T 응원해,,)


 아무도 없는 숲의 나무의 비유처럼,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기에 서로 의식해 줄 때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인사는 중요하다) 타인에게 인식되어야 존재할 수 있기에 '고독을 즐긴다'는 것은 홀로 있어도 완전한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기저에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고독'을 즐긴 후, 본인의 깨달음과 이야기를 짜잔~하고 공개하고 영상이나 글로 기록하는 사람이 많은 게 그 증거다. 그 상태가 진정한 고독인지 아닌지는 크게 관심 없다. 모두가 간헐적으로 자발적인 고독을 즐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홀로 있을 때 비로소 본인이 진정히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으며, 그러한 명상과도 같은 시간이 끝난 후 그 경험을 공유하는 것까지가 고독을 즐기는 일이다.


 경험을 공유하는 대상도 참 중요하다. 혼자서도 좋았다고, 그리고 혼자서 있었던 일을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게 되어 그 경험이 더 소중해졌다고 편히 말할 수 있는 관계, 그런 시간을 존중해 주고 존중받을 수 있는 관계, 본인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공유할 수 있는 관계야말로 이상적이지 않을까? (근데 말만 써뒀지 사실 잘 모르겠다.) 

만능 커비, 케이크를 좋아하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각자 고독을 즐기는 법은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자발적으로 고독을 택하는 이유는 보편적으로 바쁜 현실에서 자신을 분리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고독의 시간을 슬프고 외로운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어떠한 사회적 역할에도 구애받지 않고 본인이 가장 본인다울 수 있는 시간 속에서 나를 아끼는 것이야말로 고독의 목적이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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