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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창희 대리님 Jun 21. 2022

한라산에 가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더라

EP.4 언제나 "인연"은 "대화"에서 시작된다.

한라산에 가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더라.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제주는 2년마다 눈이 많이 내린다. 눈이 소복히 쌓인 어느날이었다.


우리는 15시 체크인, 익일 11시 체크아웃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퇴실 시간이 늦는 경우 입실 시간과 텀이 짧아서 개인 정비 시간이 부족했었기에 체크인을 16시로 바꿔보기도 했고, 최종 17시로 바꾸게 되었다. 입실시간을 변경하니 상대적으로 여유가 생겨 스텝분들과 주변 경치를 즐길 수 있었고, 예쁜 카페에서 수다를 떨기에도 좋았다.


그렇게 손님 맞이를 위해 개인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평범한날 '띵동' 소리가 들렸다.


오후 3시였다.


아직 체크인 하기엔 이른 시간이었지만 황급히 현관문을 열어드렸다. 온 몸이 눈으로 뒤덮힌 채 동동 발을 구르고 계셨던 여자분이셨다.

누가봐도 한라산을 등산하고 오셨을 법한 비쥬얼이었다. 등산스틱을 한 손에 쥔채 "혹시 지금 입실이 가능할까요?" 라며 조심스럽게 물어보셨다.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린날 한라산에 다녀오신 것도 신기했고, 우선 추우실까봐 황급히 안으로 모셨고 방을 안내해드렸다.


그 후 30분정도 지났을까?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로비에 나오셨다.

추운 겨울 눈덮힌 한라산을 다녀오셨기에 얼마나 개운하실까...? 하고 생각했다.

추위에 얼어붙은 몸은 이내 스르륵 녹아버렸다.

붉어진 볼이 대신 말해주었다.


나는 차 한잔을 내드렸다. 알면서도 말을 건냈다.


 "한라산에 다녀오셨나요?"


"네"


한라산의 절정은 겨울 산행이라고 하더라. 설경이 아주 예쁘기로 유명하다. 눈꽃이 덮힌 한라산, 그리고 백록담은 참으로 경이로웠다고 하셨다.


"아니 혼자 다녀오신거에요?" 대단하세요!

따뜻한 차에 몸도 마음도 점점 녹으셨는지 자연스레 공간에 스며드셨다. 그리고 차분히 이야기를 이어나가셨다.


사실은 제가 이번에 임용고시에 붙었거든요.

"와! 축하드려요. 고생많으셨을텐데!"
그리고 갑자기 눈믈을 흘리셨다.


당황스러웠다.

나는 휴지를 가져다 드렸다. "아...아니 ..."
"죄송해요 갑자기 눈물이 나네요."


그렇게 5분 정도 지났을까? 나는 기다려주었다. 무슨 사연이 있겠지 하며


혹시 실례일 수 있고, 이야기를 굳이 해주셔야 하는 건 아니라고 말씀을드렸다.


조금 진정이 되셨는지 차분히 이야기를 해주셨다.


실은 아버지가 위암 말기셨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3개월밖에 남지 않으셨다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씀을 해주셨을때 예상은 했지만 그 시기가 너무 일러 매일 매일을 눈물로 지새우셨다고 한다.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이 우리 딸 임용고시 붙은거 보고 가야 한다는 말이 아직도 가슴이 미어진다고 하셨다.

그 후 하루도 빠짐없이 20시간을 공부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추운 겨울 임용고시에 합격하셨다.

합격 소식을 알리고, 결국 아버님은 돌아가셨다.

합격 소식을 알려드려 기쁘지만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슬프기에 만감이 교차한다고 하셨다. 슬픔에 하루 하루를 지내다가 도저히 기운이 나지 않았다고 하셨다. 임용고시에 합격했는데도 마냥 소리쳐 기뻐할 수 없음에 공허했다. 이대론 안되겠다 싶어 무작정 제주도 항공권을 끊고 한라산 하나만 바라보고 오셨다고 한다. 그래서 날씨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며 백록담을 찍고 내려오면 무거운 마음을 좀 더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오셨고, 막상 한라산에 오르며, 하산하기까지 생각보다 춥고, 힘들었다고 하셨다.


혹시 마음이 더 힘들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지금은 임용된 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봄이 따뜻한 이유는 추운 겨울을 지냈기 떄문이 아닐까 싶다.


임용을 준비하시고, 아버님을 떠나보내시고, 한라산을 다녀오시고, 추운 겨울 용기내어 말씀해주셨던 대화에서 우리는 온기를 느꼈다. 굳이 연락하지 않아도, 멀리서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마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겨울처럼 춥더라도 견디면 따뜻한 봄이 오지 않을까?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면서 한라산에 다녀오신 분들이 정말 많았다. 위치가 한라산 성판악 코스와 관음사 코스의 중간지점이여서 그럴까?


취업, 이직성공, 퇴사, 이별 후, 마음이 아파서, 지금 시기에 한라산이 절경이여서, 12월 31일 1년중 유일하게 야간 산행이 개방되어 1월 1일 새해 일출을 백록담에서 볼 수 있어서 등등


한라산에 가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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