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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말을 배우던 시절

불안을 눌러준 건 완벽한 기술이 아니었다

by 감격발전소

“저는 늘 표현이 어려운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글을 만나고, 그림을 만나며 차츰 제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하와이 춤 ‘훌라’를 만났습니다. 글과 그림이 종이에 남는 이야기였다면, 훌라는 몸으로 살아 숨 쉬는 이야기였어요. 훌라를 통해 조금씩 찾아가고 있는 저만의 언어에 대한 기록을 담았습니다.”


하와이의 전통 춤, 훌라를 배우고 있다. 배운 지 2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나는 지독한 몸치다. 동작의 유려함은 차치하고, 순서를 외우는 것조차 늘 버겁다. 선생님이 한 번 보여주면 곧장 따라 하는 친구들과는 달리, 나는 번번이 멈칫거린다. 수업 시간마다 좌절감이 고개를 들지만, 그럼에도 계속 이어가는 건 훌라가 내게 주는 행복이 그 좌절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시간은 언제나 내게 기쁨을 안겨준다.


그러던 차에 한·일 훌라 교류 공연 소식이 들려왔다. 올해 초 부산에서 1차로 열렸던 무대가 이번에는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린다 했다. 일본이라니! 해외 무대라니! 설렘은 가득했지만 동시에 부담도 뒤따랐다. 우리 팀은 맹연습에 들어갔고, 나는 집에서도 곡 영상을 수십 번 돌려 보며 개인 연습을 이어갔다. 하지만 잘 될 때와 안 될 때의 기복은 여전했다.


일본까지 갔는데 내가 동작을 틀리면 어쩌지?

부담감은 공연 날이 다가올수록 더 커졌다. 지난 부산 공연에서 곡 초반에 동작을 까먹고 얼어붙었던 기억이 자꾸만 떠올랐기 때문이다.


선생님도 나의 불안을 느끼셨던 걸까. 공연 전날 밤에도, 공연 당일 새벽에도 그는 틈만 나면 코칭을 해주셨다. 호텔 주차장이든, 쓰레기 수거장 앞이든 장소는 상관없었다. 어디서든 함께 합을 맞추며 나를 다독여 주셨다.


그러나 무대에 오르기 직전, 내 마음은 여전히 얼음장 같았다. 아찔한 속눈썹을 붙이고, 맨살이 드러나는 공연 의상을 입고 대기하는 동안 긴장은 극에 달했다. 그때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우리, 일렬 말고 그냥 두 줄로 설까요?”


순간 무슨 뜻인가 싶어 바라보니, 선생님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나를 바라보며) 계속 불안해하시는 것 같아서요. 앞사람을 보면서 추면 조금 편할 것 같아 그렇게 하려 했어요.”


머쓱해졌다. 잘해야지 하는 마음보다, 팀에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부담이 더 컸던 나는 곧장 고개를 끄덕이려 했다. 그런데 그때, 옆에서 오래도록 합을 맞춰온 동료가 말했다.


“이잉? 으응 으응~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마치 내 등을 토닥이듯 건네는 그 말에, 얼어붙어 있던 가슴이 조금 풀렸다. 대열 변경은 결국 흐지부지 되었고, 우리 팀은 원래대로 일렬 대형으로 무대에 올랐다.


결과는? 완벽하지는 않았다. 중간중간 작은 실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료의 투박한 격려가 등에 힘이 되어주었고, 그 덕에 내겐 기세가 붙었다. 첫 번째 곡, 두 번째 곡을 지나 세 번째 곡에 이르렀을 때, 미묘하게 떨리던 볼 근육이 점점 풀리며 눈웃음으로 바뀌는 걸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공연을 준비하며 수없이 연습을 반복해 곡을 몸에 새기려 애썼다. 그런데 정작 무대 위에서 나를 춤추게 한 건, 동료의 세 마디였다. “이잉? 으응 으응~ 할 수 있어.”


공연이 끝난 뒤, 나는 꼭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본인이 실수를 많이 했다며 속상해했다. 그래서 “당신 덕분에 내가 힘을 낼 수 있었어”라는 진심을 끝내 건네지 못했다.


공연이 끝나고 2주가 지난 지금, 나는 다시 생각한다.


그날 내 발목을 옥죄던 두려움을 밀어낸 건 멋진 칭찬도, 완벽한 지도도 아니었다. 투박했지만 지지를 담아 건네준 세 마디였다. 그 말이 내 안의 불안을 조용히 눌러주었고, 결국 무대 위에서 다시 웃을 수 있게 했다.


세련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옆에 서서 “괜찮아, 계속해”라고 말해주는 지지.
그 말이야말로 나를 끝까지 춤추게 한 힘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날 이후, 내 안의 ‘표현’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글을 넘어, 몸으로 마음을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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