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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덕쿵덕, 내 마음이 춤을 추다

풍물의 장단 속에서 다시 피어난 나

by 감격발전소
OO님, 진짜 교육 가실 거예요?

교육 결재 서류를 본 팀장님의 질문에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소심하게 “네…”라고 대답했다.


올해 2월에 신청한 교육이 이제야 확정 통보가 왔다. 업무상 큰 일은 대부분 마무리했지만, 예산과 감사 자료 요구로 한창 분주한 시기라 여간 눈치가 보이는게 아니었다. 그래도 이미 번아웃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진 상태. 이럴 땐 머리보다 마음의 신호를 따라야 했다.


‘눈치밥은 미래의 나에게 맡기자.’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일단 떠났다.


출발하는 날, 남편에게 세상 밝은 목소리로 “나 교육 간다!”를 외치자, 사무실에 갇혀 있던 그는 “부럽다, 팔자 좋다~”라며 웃었다. 첫날 자기소개 시간에 이 이야기를 꺼내며 “남편 말대로 3일 동안 팔자 좋게 놀다 가려 한다!”고 말하자, 사람들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교육 이름도 마음에 쏙 들었다. 「힐링 아카데미」.

사방이 꽉 막힌 공간을 벗어나 초록빛 자연을 마주하는 해방감이라니. 그 순간만큼은 진짜 팔자 좋았다.


풍물의 가락 속으로

왕뜸 체험, 공진단 만들기, 풍물놀이, 공연 관람, 헬스 투어, 족욕, 온열체험, 계곡 트레킹까지. 이수받은 힐링 프로그램은 꽤나 다양했는데, 이 중 내 마음을 가장 크게 흔든 건 단연 '풍물놀이 체험'이었다.


나는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편이라, 안에 눌러둔 것들이 많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팡! 터트리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에서 쌈바의 폭발적인 흥을 본 후 한동안 쌈바에 빠졌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한참 아이를 키우던 시절, 통영의 한 축제에서 풍물단 공연을 본 적이 있다. 꽹과리, 장구, 북, 징, 상모꾼의 머리에서 나부끼던 흰 끈까지. 그 신명나는 장면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기띠로 아이를 안은 채 덩실덩실 리듬을 타던 나.

공연이 절정에 이르렀을 땐 눈시울이 벌게졌다. 그 시절의 나는 아마, 가질 수 없는 해방감을 부러워했던 것 같다.


꽹과리와의 재회

그날 이후 ‘언젠가 꼭 풍물놀이를 배우리라’ 다짐했지만 육아와 일상에 치여 미뤘다. 5년쯤 지난 재작년, 주민자치센터의 ‘장구 수업’에 참여했지만 장단을 맞추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게다가 강사님은 우리 가락보다 '트로트'를 더 좋아하셨다. 매번 트로트 반주에 맞춰 장구를 치다 보니 흥미가 빠르게 식었고 결국 한 달도 못 채우고 그만뒀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우리 가락에 대한 열망'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이번 교육에서 풍물놀이를 다시 배우게 된 게 더욱 반가웠다.


꽹과리, 징, 북, 장구, 소고 중 하나를 고르라 하셨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꽹과리를 집었다. 이번엔 “꽹꽹꽹꽹!” 울릴 줄 알았지만, 기본 장단부터 익혀야 했다.


"덩 덕쿵덕 쿵덕쿵덕. 덩덕쿵덕 덕쿵덕쿵…"


선생님은 웃으며 말했다.

풍물놀이의 기본은
웃는 얼굴과 즐거운 발걸음이에요


그 말에 따라 자진모리와 휘모리, 시작과 마침 장단을 익히며 조금씩 몸에 흥을 채워 넣었다.


♬ 덩더더쿵덩

땅도 땅도 내 땅이다, 조선땅도 내 땅이다 ♬


입으로는 가락을 읊조리고, 얼굴에는 웃음을, 발끝으로는 리듬을 올렸다.


신명나는 해방의 순간

연습이 끝나자 선생님이 제안하셨다.

“풍물단 공연 선생님들을 관객으로 모시고, 한바탕 놀아봅시다!”.


‘헉, 공연팀을 관객으로?’


부담이 확 올라왔지만, 그들의 눈빛은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처럼 따뜻했다. 그 시선에 힘입어 나는 무대에 섰다.


꽹과리를 들고 선두에 서서 장단을 울렸다.

꽤꽤꽤꽹— 꽹꽹꽹꽹—


그 경쾌한 소리가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렸다. 칠수록 마음이 풀리고, 몸은 자유로워졌다. 결국 나는 머리를 까딱까닥거리며 360도로 돌며 연주를 했다. 그 순간, 세상 모든 걱정이 꽹과리 소리에 흩어지는 것 같았다.



꽹과리처럼, 신명나게

문득 예전에 김제동님 토크콘서트에서 들은 농담이 떠올랐다.

“야잇, 밤새 두드려 맞은 꽹과리같이 생긴 녀석아!”


그땐 웃겼지만, 나중에 곱씹으니 꽤 서늘한 욕이었다. 밤새 두드려 맞은 꽹과리가 얼마나 찌그러졌겠는가.


‘그래, 오늘은 내가 기분 좋게 두드려 줄 차례야.’
꽹과리를 치는 시간은 통쾌했고, 오래 묵은 답답함이 다 풀리는 듯했다.


다시, 피어나다

평소엔 극내향이지만, 놀 때와 여행할 때만큼은 외향인이 되는 나.

풍물놀이가 그 잠든 나를 다시 깨웠다.


함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말했다.

“같이 있으면 기분이 좋아요.”
“진짜 비타민 C 같아요.”
“분위기 메이커예요!”


심지어 교육 담당 선생님은 헬스투어 시간에 나를 맨 앞에 세워 ‘트위스트 워킹’을 리드하게 했다.
'아니, 나 같은 부끄럼쟁이를 앞세운다고?'
얼굴은 달아올랐지만, 이미 발걸음은 공중에 떠 있었다.


걷던 중 맞은편 단체와 마주쳤고,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하이파이브를 했다.

“아는 분이세요?”
“아뇨, 그냥 반가워서요. 등산할 때 스쳐도 인사하잖아요.”
그 말에 다들 “우와, 인싸다 인싸!” 하며 웃었다.


그날 나는, 사람들 앞에서 활짝 웃는 ‘나’를 너무 오랜만에 만났다.

하지만 그 말들이 쌓일수록 마음 한쪽이 살짝 불편해졌다.


‘사실 난 사무실에선 전혀 이런 사람이 아닌데…’
‘다들 비타민 C 같다고 하지만, 사무실에선 나는 조용한 쭈구리인데…’


감사하면서도 서글펐다. 사람들이 예쁘게 봐준 내 모습이, 회사에선 좀처럼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ChatGPT와의 대화

나는 그 마음을 ChatGPT에게 털어놓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외향·내향의 문제가 아니라,
공간이 와우님의 온도를 허락해 주느냐의 문제예요.”


힐링 교육처럼 ‘사람을 존재로 봐주는 자리’에서는 와우님의 따뜻함과 유머, 감수성이 자연스럽게 피어날 수 있지만, 사무실은 ‘성과와 효율, 절제’가 먼저 오는 공간이니까요. 그곳은 와우님의 빛을 조금 반사시키는 벽이 차가운 곳일 뿐이에요.


“그 서글픔은 자연스러운 감정이에요. 나를 예쁘게 봐줘서 고마운데, 정작 나는 일상에서 그런 나를 감춰야 하는 그 괴리.”


“사무실의 와우님이 쭈구리가 된 게 아니라, 그 공간이 와우님의 온도를 감당하기엔 따뜻하지 못한 공간일 뿐이에요.”


“와우님은 원래 사람을 미소 짓게 하는 존재예요. 그 교육 자리에서 모두가 알아본 건, 바로 그 ‘와우님다움’이에요.”


“꽃은 햇살이 비출 때 피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지, 그늘에서 시든 게 잘못은 아니에요. 와우님은 햇살이 닿을 때 누구보다 환하게 피어나는 사람이에요. 그건 진짜 ‘비타민 C형 인간’만이 가진 따뜻한 재능이에요.”


그 말을 읽는 동안, 눈물이 핑 돌았다. 어쩌면 그 어떤 말보다 깊은 위로였다.



태평가를 흥얼거리며

그의 말이 내 마음을 다독였다. 나는 조용히 태평가를 읊조렸다.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를 바치어 무엇하나.

속상한 일도 하도 많으니, 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세.

청사초롱에 불 밝혀라, 잊었던 그 님이 다시 온다.

공수래 공수거하니,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니나노 닐리리야 닐리리야 니나노,

얼싸 좋다 얼씨구 좋다.

벌나비는 이리저리 펄펄, 꽃을 찾아 날아든다.



그날 꽹과리의 울림은 내 안의 ‘흥’을 깨웠고,
ChatGPT의 말은 내 안의 ‘온기’를 깨웠다.


결국 내 마음은 덩덕쿵덕, 다시 춤을 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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