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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벗 Jun 04. 2023

고난을 통해 성숙한다는 착각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아이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겠다는 생각은 이불을 덮고 누워있을 때만 작동한다. 운전하다가 누가 깜빡이 안 켜고 끼어들면 어김없이 기분이 상하고 비보호 좌회전을 하려는 데 반대편 차선에서 애매한 거리에 차가 있으면 상대가 놀라거나 말거나 핸들을 틀어 내가 먼저 간다. 물론 딸이 타고 있으면 조금은 더 얌전하게 운전한다. 계산대에 줄을 서서도 앞에서 동전까지 세어서 물건값을 내는 사람들이 있으면 짜증이 몰려온다. 미국에서는 팁을 받는 근로자들에게는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는데, 팁은 현금으로 주는 경우가 많아서 현금을 세어서 계산하는 사람들은 노인이나 허름한 차림의 사람들일 경우가 많다. 물론 돈 많은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신용카드가 없거나 팁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현금으로 계산한다. 상점에서 1, 2분 빨리 나가서 달리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고 숨소리가 거칠어지다가 흠칫 놀란다. 정말 사람은 안 변하는구나.


내 생각이 늘 옳다고 여기는 고집도 여전할 정도가 넘어서 나이가 들면서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아마 그 옳은 생각을 떠들어댈 곳이 없으니 여기에서 글을 쓰면서 푸는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내가 뭘 믿고 이렇게 용감한지, 왜 오기가 올라오면 주체를 못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그림을 시작한 후 이런 경향이 강해진 것 같기도 하다. 내 기준에 완벽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짜증이 몰려올 때는 한발 물러서서 숨을 고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기도 한다. 이런 짜증은 항상 나를 향한 것이었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경험한 일이 있었다. 내가 속한 수채화협회가 지역 도서관에서 전시를 시작하는 날이었다. 요즘도 나는 매일 그림을 그리지만 수채화 협회 모임에 안 나간 지는 꽤 오래되었고 전시에 작품을 내는 일에 싫증을 느껴서 지난번 전시에는 작품을 내지 않았고 한동안은 작품을 낼 생각이 없었다. 그림 그리는 과정은 내게 명상이며 독백의 시간인데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태어난 그림을 1, 2초간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해 걸어놓는 것에 의미를 찾지 못했다. 단, 전시 이틀 전까지 작품 숫자가 모자란다고 하여 전시 시작하는 날 부랴부랴 들고 갔다. 마침 바쁜 일이 끝나서 그림 거는 일을 돕겠다고 했다. 참여하는 회원들은 누구나 그림을 접수하고 걸고 철수하는 일 중에 한두 가지 거들어야 한다. 다들 나보다 인생과 그림의 연륜이 훨씬 많고 수없이 많은 전시를 했고 그림을 주문받아 그리기도 하는 베테랑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벽에 그림을 걸려고 배치해 놓은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기에서는 불협화음이 일어나고, 저기에서는 피치가 떨어지는 불완전함이 내 눈을 괴롭혔다.

여기는 조금 더 초대하는 듯한 느낌의 그림이 어울리지 않겠니?

이 두 그림 위치는 바꾸면 어떨까?

여기는 너무 복잡해 보이지 않니?

그림의 높이가 지루해 보이지 않니?

이 벽에 이 그림이 고아처럼 보이지 않니?

정말 그러네 하고 맞장구치며 내 의견에 따라 그림을 이리저리 옮기다가 그런 움직임이 조용해졌을 때쯤 정신이 돌아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도움을 주러 와서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어머, 너무너무 미안해.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지?

아마 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을 것 같다.

전시 책임을 맡은 회원은 의견을 주어서 고마운데 무슨 소리냐고 했지만 나와 함께 도움을 주러 왔던 다른 두 회원은 조용히 뜸을 들이고 나서야 무언가 말을 했다.

내가 이런 진상 자원봉사자라니. 그것도 그림 생초보가 전문가들 앞에서. 생각만 해도 낯이 화끈거린다.


몇 해 전에는 나의 이런 불편한 성품이 그일 후 조금 숨 죽었다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아니었다. 고난을 겪었다고, 아픔을 겪었다고 성품이 성숙하는 건 아닌가 보다. 적어도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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