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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벗 Mar 24. 2023

남은 부모의 의미

고아나 과부라는 말은 있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를 가리키는 말이 없는 것은 그 고통이 표현할 수 없이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들을 잃은 후 살아서 겪을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면서, 정말 이 고통을 표현할 단어가 없구나 하고 더 큰 비참함을 느꼈었다.


얼마 전에 알게 되었는데 자식을 잃은 부모를 가리키는 표현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한 빌로마(Vilomah)라는 단어가 있는데 빌로마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다는 뜻으로, 듀크대학의 한 교수가 자녀를 잃은 뒤 사용하여 영어에 도입된 표현으로 보인다. 히브리어에는 샤칼(Sh"khol)이라는 단어가 자식을 잃은 부모를 가리킨다. 그런 표현이 존재하는 문화도 있는 거다. 하지만 다수의 문화에는 이 표현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 아들이 없는 세상에서 5년을 살면서 이 표현이 이토록 드문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물론 아래 내용은 자료 조사나 연구로 전혀 밑받침 되지 않고 그저 나의 생각이 여기에 미쳤다는 거다.


민족별로 언어와 문화가 형성되던 시절에는 자녀를 잃는 것이 부모나 배우자를 잃는 일보다 훨씬 흔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자녀가 다섯 살을 넘기기 전에 병마에 빼앗기는 일도 흔했을 것이고, 별다른 안전 장치 없이 놀고 일하고 싸우다가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는 일이 드물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자식을 잃지 않은 부모가 오히려 운이 좋은 소수에 속했을 테니까 자식을 잃었다고 별도의 명칭을 붙여줄 명분이 크지 않았을 거라고 상상해 본다.


또 하나는, 부모는 자식을 잃어도 처지가 바뀌지 않는다는 거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아이는 특별한 보살핌이 필요한 처지가 된다. 그런 보살핌 없이는 그 아이가 살 수 없으니까. 남편을 잃은 여자도 생업을 이어가면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며 역시 특별한 보살핌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내를 잃은 남자도 마찬가지이다. 지인에게 들었는데 엄마가 아픈 집에 가면 밥상도, 집안 구석도 모두 티가 나지만 특히 이부자리는 눈에 띄게 꼬질한 모습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자식을 잃은 부모는 그 고통이 눈을 뽑는 고통이거나 생살을 에이는 고통이거나 처지가 바뀌지는 않는다. 아버지는 남은 가족을 위해 일자리로 가야 하고 어머니는 남은 가족을 위해 밥을 지어야 한다.


어느 순간 이 생각이 들자 나는 자신이 별로 불쌍하지 않았다. 고통이 작기 때문이 아니라 나는 고통을 가슴으로 힘껏 껴안고 몇 년을 버틴 어머니인데 스스로 동정의 대상이 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내 귀여운 아들은 지금도 마음과 꿈에 찾아오고, 아이가 몇 명이냐는 질문은 여전히 괴로우며, 죄책감은 아직도 가슴에 딱딱하게 남아있는 건 사실이다. 단, 고통의 무게가 나를 짓누르지 않도록 등에 지지 않고 가슴에 꽉 끌어안기로 결정했다.


지금 나는 그다지 불쌍하지 않게, 때때로 행복하고, 삶의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남은 부모의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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