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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벗 Jun 20. 2023

킹스캐년 캠핑

금요일부터 주말을 끼고 캠핑을 다녀왔다. 가족 네 명이 모두 자연을 좋아해서 일 년 중 가장 기다리는 행사 중 하나였다. 가장 큰 즐거움은 떠올리기 가장 아픈 일이기도 하여서 다른 일상을 대부분 회복한 후에도 차마 할 수 없던 일이기도 하다. 5년 째 접어든 지금도 K의 가족이 캠핑에 초대하지 않았다면 엄두를 낼 수 없었을 것이다. 고마운 K 가족...  다행히 캠핑장은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킹스캐년(Kings Canyon) 국립공원이었다. 어린 두 아이와 함께 행복이 날아가버릴까 두려울 만큼 행복한 경험을 했던 요세미티(Yosemite)였다면 캠핑장을 찾기가 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용기를 냈지만 이번에도 선뜻 준비를 시작하기는 어려웠다. 


미국 국립공원에서 캠핑을 하려면 여정이 짧더라도 준비할 게 많다. 여름이라도 날씨 변덕에 대비해야 하고 모든 잠자리 짐과 세면도구와 먹을 것을 챙겨야 하고 인터넷이 안 되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게다가 이 캠핑장의 시설은 물이 나오는 화장실이 전부였다. 이것을 알면서도 마음과 몸은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작년에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가기 전날까지 우리는 심지어 가져갈 음식도 사러갈 수 없었다. 출발하는 날 아침이 되었다. 남편과 나는 속내를 짤막하게 나누고 잠깐 눈물을 훔친 뒤 벌떡 일어나서 마치 아침에 가게를 여는 시장 상인 부부처럼 씩씩하게 장을 보러갔다. 허겁지겁 음식을 준비하고 허겁지겁 짐을 싸서 출발했다. 막히는 구간을 지나고, 끝없이 이어지는 농경지를 지나고, 꼬불꼬불한 길을 달려서 땅거미가 내려앉는 시간이 되어서야 킹스캐년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그곳은 장엄하면서도 너그러운 얼굴을 지닌 땅으로 세코야(Sequoia) 국립공원과 연결되며 요세미티와도 멀지 않았다. 도착해보니 꼭 필요한데 빠뜨리고 가져오지 않은 물건들이 많았지만 다행히 K 가족이 여분을 가져와서 아쉬움 없이 지낼 수 있었다.


트레일을 걸었다. 세코야 나무를 비롯해서 하늘을 찌를 듯 곧게 뻗은 각종 상록수들이 끝없이 펼쳐졌다. 

양지바른 곳에 숲에 자리잡고 2천 년을 넘게 살며 500미터가 넘게 자란 나무, 

나무가 자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바위 틈에서 바위를 쪼개면서 뿌리를 단단히 내린 나무,

밑둥은 다 타버린 듯 한데 여전히 가지에 새순을 내고 있는 나무,

셀 수 없이 많은 딱따구리 구멍을 안고 있는 나무... 

나무는 과연 얼마나 험한 곳에서 자랄 수 있는 걸까?

산불과 가뭄을 이기려면 뿌리를 얼마나 깊게 내려야 하는 걸까? 

무엇을 품을 수 있고, 얼마나 많은 곳에 쓰일 수 있는 걸까? 

걸으면서 많은 생각이 오갔고 나무에 대한 경외심이 다시 한 번 솟았다.



출발 전에 마음을 짓눌렀던 아픔에도 불구하고 킹스캐년의 위용은 모든 것을 잊게 했다. 지난 겨울은 유독 길고 눈과 비가 많이 와서 산에는 아직까지 녹지 않은 눈이 보였다. 심하게 훼손되어 폐쇄된 도로가 많아서 제한적인 지역만 다닐 수 있는 점은 아쉬웠지만, 계곡마다 눈 녹은 물이 우렁찬 소리를 내며 흘렀고 호수는 가장자리까지 물이 그득했다. 오전에는 걷고 오후에는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밤에는 장작을 태웠다. 개구리들을 밤새 울었고 개구리 울음소리가 그치는 새벽녘에는 새들이 울기 시작했다.


늦게 도착해서 먼저 캠핑장을 떠나는 우리 가족이 텐트치고 걷는 걸 도와주며 아들의 빈자리를 채워준 K 가족의 세심한 마음씀이 너무 고맙다. 짐을 나르고 텐트 치고 걷는 일을 늘 남편과 아들이 맡아서 했기 때문에 그게 정말 걱정이었는데... 돌아오는 길에도 눈물을 훔쳤지만 또 하나의 고비를 넘은 것 같은 안도가 깃들었다. 언젠가는 함께 캠핑을 하던 곳을 다시 찾아가 조금은 덜 아프게 아들을 떠올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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