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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벗 Jul 17. 2022

스페인 - 여행 마무리

7/8-9

비행기 출발 시간이 오후 1:15이고 숙소와 공항이 15분 거리이지만, 11시도 채 되지 않아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전날 온라인으로 체크인할 때 계속 에러가 나서 체크인을 못했기 때문이다. 마드리드 공항이 아수라장이 되어 있을 것 같은 악몽에 시달리며 일찍 공항으로 갔다. 다행히 공항은 한산했고 항공사 부스에서 체크인은 몹시 쉽게 되었다. 토론토와 시카고를 거쳐서 가는 경로인데 두 공항 모두 복잡하기로 이름난 공항이라서 마음이 썩 편하지는 않았다. 토론토에서 갈아타는 시간이 촉박할 것 같아서 연결편까지 발권을 요구했다. 에어캐나다 직원은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발권을 하지 않으므로 토론토에서 발권해야 한다고 했다. 매우 찜찜했다. 탑승 후 좌석도 예정된 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함께 앉아서 갈 수 있는 좌석이 맨 뒷좌석뿐이어서 그렇게 선택을 해두었고 선택한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스튜어디스가 와서 여기는 자신들이 앉아서 쉬어야 하는 좌석이라고 했다. 자신들은 쉴 틈 없이 여행해서 뒷자리에서 쉬면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기꺼이 협조한다고 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감사하다며 앞으로 가서 다른 승객들을 설득하여 우리가 앞쪽에 함께 앉아서 가도록 좌석을 마련해 주었다. 연결편을 빨리 갈아타야 하니까 우리가 선택한 자리보다 더 나은 자리인 것 같았다.


20분 지연되어 토론토에 도착했다. 레이오버가 2시간이니까 평상 시라면 전편이 고작 20분쯤 지연되어도 연결편에 탑승하기에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날 토론토 공항은 아수라장이었다. 연결편 탑승을 위한 줄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발권 창구에는 직원이나 줄을 서 있는 승객 모두 날이 서있었다. 출발 시간이 원래 5:40에서 5:50분으로 늦춰졌다는 메시지가 왔다. 10분이라도 늦춰져서 다행이었다. 마드리드에서 같은 비행기에 탑승했던 우리 앞에 줄 서 있던 미국인 가족도 초조해 보였다. 그쪽은 오레건으로 간다고 했다. 초조한 기다림 끝에 티켓을 손에 쥔 시간은 5:35분. 게이트를 확인하고 전 속력으로 게이트를 향해 달려 게이트에 5:40분에 거의 닿았을 때 우리 앞에 있던 가족이 게이트 앞에서 맥없이 돌아서는 모습이 보였다.

"They're gone(갔어요)."

딸은 다리 힘이 풀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게이트는 닫혀 있고 직원들은 무언가를 주섬주섬 챙겨서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5:50에 출발한다는 공지를 받았는데 어떻게 일찍 출발했냐고 하자 직원은 그런 공지를 보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지금 5:40이다. 창구에서 승객이 발권했다는 정보가 갔을 텐데 기다려주지는 못할 망정 어떻게 예정보다 일찍 출발할 수가 있는지 어이가 없었다. 미국인 가족은 "They lied" 하며 깨끗이 포기하고 창구로 향했다. 직원은 부스로 가서 재예약하면 운이 좋으면 시카고를 거치지 않고 샌프란시스코까지 바로 갈 수도 있을 거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물론 허황된 이야기이리라.


에어 캐나다와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부스의 줄은 그다지 길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줄어들지도 않았다. 줄에 선 승객들의 문제가 좀처럼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중국인 가족은 우리보다 한참 후에 와서 그중 여자가 갑자기 소리를 질러댔다. 너희 잘못으로 비행기를 놓쳤으니 호텔을 내놓든지 보상을 하라고 소리쳤다. 여자의 남편과 아들은 조용히 우리 뒤에 서서 기다렸다. 협박이 효과가 있었는지 여자가 직원을 따라갔다 오더니 세 사람은 먼저 줄 서기에서 벗어났다. 두 시간쯤 기다려서 우리 차례가 왔다. 우리가 연결편을 놓쳤다고 하자 우리가 공항에 늦게 도착해서 놓쳤냐고 물었다. 참 얼토당토않은 질문이군. 연결편이니까 우리가 늦게 도착한 것이 아니고 전편이 약간 늦게 도착했고 공항에서 줄이 길었다고 답했다. 내 대답이 시스템 상 선택지에 없는지 직원은 한참 고민했다. 오늘 항공편은 모두 만석이라 내일 항공을 예약해야 하며 항공사 측 잘못인 경우에만 호텔 예약과 식사 제공이 가능하다고 했다.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알아보겠다면서 누군가와 또 한참 전화 통화를 했다. 우리 앞에 있던 가족은 우리를 담당하는 옆자리 직원이 담당하고 있었는데 그쪽도 쉽게 용무가 끝나지 않는 듯했다. 우리를 담당하던 직원은 전화를 끊고 이 경우 항공사 책임이므로 호텔과 식사 제공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호텔 예약을 해주겠다며 다시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5시 40분부터 줄을 서기 시작했는데 8시가 넘었다. 내내 내가 줄을 서있다가 남편과 교대했다. 잠시 후 남편이 종이쪽지를 들고 나에게 왔다. 직원이 자체 호텔 예약번호에 연결이 되지 않고 사이트 접근도 되지 않는다면서 우리가 알아서 예약하고 나중에 청구하라고 했단다. 나중에 청구하는 게 말이 쉽지... 남편이 식권을 받아오지 않아 다시 가서 식권을 받았다. 부스는 8:30에 문을 닫으니 항공사 직원은 개운하게 퇴근하고, 우리는 단 몇 시간 머물기 위해 위해 방을 예약하고 나는 짜증 나는 항공사 환급 절차를 거치게 생겼다. 근방 호텔이 우리와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로 매진이었고 공항 내 쉐라톤만 방이 있었다. 공항에서 스페인이 그리워지는 비싸고 맛없는 식사를 하여 아침까지 써야 하는 식권을 모두 써버렸다. 공항 보안구역 내에서 셔틀을 타고 나가려면 공항 직원이나 항공사 직원이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퇴근한 시간, 운 좋게 친절한 항공사 직원을 만나 셔틀 타는 곳까지 안내를 받았다.


호텔에 체크인한 시간은 10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내일 아침 6:20분에 탑승을 시작하는 비행기이니 공항에 늦어도 다섯 시까지 가야 한다. 객실에는 길어야 여섯 시간 머물겠군. 새벽 네 시에 눈을 떠서 창밖을 보니 이미 셔틀을 타려고 줄 선 사람들과 만원이 된 셔틀이 보였다. 바로 딸을 깨워서 공항으로 갔다. 새벽 4:30 토론토 공항은 이미 출국장 앞에 몇 겹의 줄이 형성되어 있었다. 여기까지가 항공대란의 마무리였다. 출국장을 지난 뒤에는 탑승까지 순조로웠다. 공항에서 아침 태양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시카고에서 연결편 탑승이 문제없었고, 샌프란시스코 공항까지 무사히 왔다. 단, 카드를 잃어버렸으니 장기주차 초과 요금을 지불할 수 없어서 약간 애를 먹긴 했다. 주차장 출입 차단기 기계는 애플 페이가 되지 않는다.


집에 도착해서 강아지  마리와 뜨거운 상봉을 하고 꿈에도 그리던 라면을 끓여먹었다. 출국편 연착으로 여행 일정 하루를 날렸을 때, 소매치기를 당해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 관광객을 상대로 무성의한 음식을 파는 음식점을 만났을 때, 귀국편 연착으로 토론토에서 하루를 보내고 예상보다 하루 늦게 돌아올 수 있었을 때, 여행에서 겪을 수 있는 온갖 악재를 겪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집에 와서 한숨 돌리고 생각하니까, 지갑을 잃어버렸어도 여권은 잃어버리지 않았고 우리는 알차고 멋진 여행을 했으며 가족 모두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집에 돌아왔다. 이 시국에 겨우 작은 소동만 겪은 편안한 여행이었다. 여행 후 지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건강해진 느낌이 들기도 한다. 여행 기간 중 하루 평균 2만보를 걸었고 좋은 재료로 만든 건강한 음식을 섭취한 것도 한몫했다.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드는 비슷한 감상이 있다.

집이 제일 편하지만 다녀오길 잘했다.

(좌) 새벽 4:30 토론토 공항 출국장 모습 (중) 공항의 일출 (우) 시카고 착륙 전 미시건 호 상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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