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어마하게 긴, 자잘한 글자로 빽빽하게 백 장쯤 되는 계약서를 번역 중이다. 문장마다 어찌나 긴지 ctrl+F를 써서 마침표를 찾는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울화통을 꾹꾹 누르며 몇 줄 번역하고 마주 보는 그림 책상으로 돌아앉는다. 그림 책상에는 계약서 페이지 수만큼 많은 벽돌로 쌓은 회랑 그림이 펼쳐 있다. 물감과 크레파스로 몇 겹째 칠하고 있는지 두께가 느껴진다. 붓질을 몇 번 더하고, 크레파스를 몇 군데 찍어 바르고, 머리가 좀 식었다. 다시 컴퓨터가 놓인 책상으로 돌아앉는다.
너무 지겨워서 완성도 안 한 그림을 인스타에도, 브런치에도 올려본다. 완성도 안 한 이 글도 발행해 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