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벗 Dec 05. 2023

북가주에서 가을 산책 2

12월이니까 공식적으로 겨울에 들어섰다. 제목을 겨울로 바꾸어야 하나 잠시 망설이다가 요즘 북가주의 모습은 한국의 늦가을 모습을 닮았으므로 제목은 그냥 '가을'로 두기로 했다.

울긋불긋한 잎이 보이기 시작할 때 산책을 시작했는데 이제는 남편의 뒤통수처럼 잎이 듬성듬성해진 나무들이 많아졌다.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양분을 만들어 나무를 먹여 살리느라 수고한 잎들이 이쁘게 한 번 물들고 바닥에 떨어졌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과실수를 기르는 집이 많다. 게 중에는 앞마당에 채소밭이나 포도밭을 일궈놓은 집도 있다. 대부분 또는 모두 중국인의 집이다. 샌디에이고에서 살던 동네에는 앞마당을 전문 조경사의 솜씨로 깔끔하게 꾸며 놓은 집들이 많았는데 그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과일을 부지런히 따먹는 집도 있고 과일이 담장너머 도로에 흥청 떨어지도록 그냥 내버려 두는 집도 있다. 산책하는 길에 만나는 과실수로는 감, 대추, 오렌지, 레몬, 사과, 포도, 비파, 석류, 은행 등이 있고 올리브 나무를 심은 집도 꽤 많다.


산책을 시작하기 전이지만 여름에는 복숭아와 체리, 뽕나무의 오디 열매가 많이 열렸다. 여름 과일들이 한철 지나가고 나면 올리브와 대추가 열리기 시작한다. 올리브는 열매가 작고 올리브 색으로 열리기 시작해서 검게 익어가서 잘 눈에 띄지 않지만 엄청나게 많이 열리고 많이 떨어진다. 길에 뭐가 지저분하게 많이 떨어져 있어서 위를 쳐다봤는데 까만 열매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올리브 나무라는 걸 알았다. 그렇게 많이 떨어뜨리고도 아직 가지에 붙어 있는 열매는 대부분 말라서 쪼글쪼글하게 보인다. 대추, 은행, 올리브 열매가 비슷한 시기에 열리고 지는 것 같다. 그중에서 올리브와 은행이 많이 떨어져서 길을 더럽힌다. 은행 냄새는 특히 지독하다.

잘 보면 까만 올리브가 다닥다닥 달려있다

산책길에 만나는 어떤 집은 담장 너머로 포도가 흐드러지게 열린다. 포도알이 까맣고 작은 포도인데 와인을 만드는 포도라고 한다. 특이한 것은 이 집 포도가 아니라 포도잎이다. 포도잎은 보통 끝이 누렇게 되면서 시드는데 이 집 포도는 빨갛게 단풍이 들었다. 초록 잎들이 하나둘 빨갛게 변하더니 지금은 온통 고운 빨간색이다. 포도는 아무도 따먹지 않아서 아직까지 쪼글거리며 달려있다. 하나 따서 입에 넣어봤더니 제법 달았다. 집주인은 인도인이나 파키스탄인 가족인 것 같다. 산책길을 자주 바꾸니까 이 집 앞은 가끔 지나는데 왜 맛있는 포도를 먹지 않는지 지날 때마다 궁금하다. 암튼 포도잎의 고운 단풍 덕분에 요즘 포도 덩굴 그리기를 즐기고 있다.

수채물감과 차콜파스텔로 아르쉐 종이에 그린 그림 © 글벗

오늘 아침에는 날이 잔뜩 찌푸려 있었다.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몇 개 안 남은 감을 달고 있는 감나무가 허전해 보였다. 그래도 다닥다닥 열렸을 때는 그릴 엄두도 못 내던 감나무 가지를 그려볼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찌뿌둥한 날씨만큼 안 좋은 컨디션을 이기고 산책을 나가길 잘했다.

연필, 목탄, 수채물감으로 스케치북에 그린 스케치 © 글벗


매거진의 이전글 북가주에서 가을 산책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