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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진호 Oct 24. 2022

파리에서 인싸되는 법

관광객들이 내 사진을 찍어갔던 이유

한 중국인 관광객이 나를 향해 불쑥 다가왔다. 아무 말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도 너도나도 몰려들어 내 사진을 담아가기 시작했다. 낯뜨거웠다. 내가 유일하게 알던 단어를 나지막이 뱉었다. "메르씨, 메르씨" 그 날밤 난 파리지엥 유명화가였다. 한 달 전의 나는 전혀 예상 못했었다. 전자기학을 꾸벅꾸벅 졸면서 듣고 있던 평범한 대학생이었으니까.  


한 달 전, 수업 중에 문자를 받았다. '최종 합격하였습니다'. 내가 가장 들어가고 싶던 회사였다. 그 순간은 우주의 기운이 나를 향해 모여주는 기분이었다. 판서에 적혀있던 '플레밍의 왼손 법칙'이 저렇게 매혹적인 공식인지 몰랐다. 창밖의 화단에 있던 이름 모를 꽃도 날 향해 피어주고, 살결에 스친 선선한 바람도 날 축복하기 위함이 아닌가?


잠시 날뛰는 기쁨도 잠시, 입사일을 보고 양가적인 감정에 빠졌다. 4학년 2학기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곧바로 일주일 뒤 입사였다. 나에게는 '한 달 유럽 여행하기'이라는 간절한 버킷리스트가 있었다. 하지만 여행 갈 수 있는 시간이 일주일밖에 없다. 더군다나 직장인 되면 은퇴하기 전까지 최소 30년간은 한 달 휴가는 낼 수 없을 터이다. 곧바로 교수님께 찾아갔다. 교수님! 저에게는 오랜 꿈이 있습니다. 교수님께 학문을  배운 것도 너무도 좋았지만, 여행을 통해 세상의 넓이를 느끼고 배우고 싶습니다. 마지막 주 수업과 시험을 빠지고 싶습니다. F학점이 뜨면 졸업 불가로 입사 취소가 되오니 C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행히도 중간고사 성적까지도 괜찮았고, 교수님의 배려심과 넓은 아량 덕분에 성공적으로 서희급 담판을 지을 수 있었다. 덕분에 2주일이라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합격통지서를 증빙한다면 은행 신용 대출이 가능했다. 곧바로 여행 자금을 마련했고, 가장 가격이 쌌던 Paris In-Out으로 Ticketing 하였다. 그리고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한 권 들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 책은 바로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 중에 인상 깊었던 건 아름다움에 대한 소유였다. 우리가 여행을 가서 사진을 찍고, 관광품을 사는 행위가 아름다움을 보는 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달래기 위해서라고 했다. 작가가 추천하는 소유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그림이었다. 그림을 그리면 대상을 면밀하게, 오래 바라보게 되어 그 아름다움을 오롯이 더 느끼고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실천해 보겠다고 어렴풋이 결심을 하고 파리에 도착했다.

참 좋아라하는 작가. 철학과 예술을 에세이나 소설에 잘 우려낸다.


도착 후 난 그 어떤 계획도 없었고, 어떤 정보도 없었다. 공항에서 지나가던 한국인에게 여쭤보았다. 숙소가 어디세요? 한인 민박이었다. 나도 갈래요! 그렇게 낯선 사람을 따라가서 숙소에서 하루를 보내고 12시간을 내리 잔 뒤에 샹젤리제라는 거리에 나왔다. 그리고 무작정 걸었다. 파리는 모든 건물은 예술이었다. 그러다 개선문이 나왔다. 비행기에서 읽었던 '여행의 기술' 책이 생각이 났다. 개선문 앞 길바닥에 앉았다. 무작정 노트를 펼쳤다. 그리고 그리기 시작했다. 학교 미술 시간 외에 자의적으로 그리는 행위는 처음이었다. 나중에는 거의 반쯤 누워서 그렸다. 4시간 동안이나 말이다. 그러다 한 중국인 관광객이 나를 향해 불쑥 다가와 아무 말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도 너도나도 몰려들어 내 사진을 담아가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개선문의 명물 인사, 파리지엥 화가인 줄 알았나 보다. 그리고 내 그림을 보고 간다. 그들은 ‘에이 뭐야? 별거 아니잖아!‘라는 표정으로 웃고 돌아섰다. Sorry, I'm normal person!

인생 첨이자 마지막 여행지 그림



아무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여행지를 그림으로 담아냈던 행위는 책에서 말한 것과 같이 아름다움을 지긋이 관찰할 수 있었다. 덕분에 10년이 넘은 지금도 그때의 감정과 기억을 선명하게 새길 수 있었다.


평소 그냥 지나칠 문양 하나하나 뜯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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