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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사로잡힌 분노

과거의 욕구에 사로잡힘으로서 오는 고통

by soulgarden

결혼한 지 25년 되는 한 중년 여인이 상담실에 왔다. 이 여인이 상담실에 온 이유는 자신의 시어머니 때문이었다. 시어머니는 첫째 아들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첫째 아들과 결혼한 이 여인을 이유없이 싫어하고 시기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결혼 초기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어 왔다.

상담실을 찾을 시점 이 여인의 남편은 5년간의 해외근무를 끝내고 귀국하여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시댁을 방문하였다. 그 때 시어머니가 남편과 아이들에게 하룻밤 자고 가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지금까지 시댁과의 관계에서 있었던 일 모두가 떠오르면서, 25년간 남편만 챙기는, 변하지 않는 시어머니의 모습에 화가 났다.

며느리로서의 의무는 다 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 뒤에는 항상 남편에게 시댁 욕을 하게 되고 갈등이 생겼다. 예전에 갈등이 깊었을 때 한 번은 시어머니께 대든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시아버지가 경찰에 신고한다고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 때도 지금도 남편은 내 편을 들어주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서 남편도 시어머니도 변한 게 없다고 말하였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이 부부의 가족에 대해 탐색해보았다.

시댁에서 장남인 남편은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하는 순종적이고 착한 아들이었다. 이 장남은 부모님의 사랑만큼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했고 부모님이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지 순종하였다. 그러나 반대하는 결혼을 하게 되면서 부모님은 며느리 때문에 자신의 아들이 변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며느리가 시댁으로 올 때마나 자신의 아들이 며느리에게 잘 해주는 것을 시기하고 둘 사이가 좋지 않게 이간질했다. 시어머니는 아들이 새로운 가정을 이룬 것에 대해서 인정해주기보다는 결혼하기 모습이기만을 바랬던 것이다.

남편은 이러한 부모님의 요구에 대해 결혼 전처럼 행동했다. 자신이 선택한 가족 안에서 남편과 아빠로서의 적절한 역할과 의무를 찾아서 행동하기 보다는, 결혼 전처럼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 즉 부모에게서 인정받는 것을 우선시하였다. 그런 남편은 아내로부터 시댁에 대한 불만을 들을 때마다, 나는 우리집에서도 아내도 모두 만족시킬 수 없구나 라는 무기력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5녀 2남 중 다섯 째로, 위로 언니 셋과 바로 위 오빠, 아래로 여동생과 막내 남동생이 있었다. 다섯째였던 아내는 친정에서 부모의 챙김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내가 지금은 친정에 제일 잘하면서 형제들에게 엄마에게 좀 잘해라고 말한다고 한다. 어린 시절 받지 못한 사랑과 인정을 자신이 베품으로서 다른 형제들에게 생색까지 내면서 받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있는 아내에게 상대에게 충실하고 순종적인 남자인 남편이 나타났을 때, 이 남자는 나를 진정으로 챙겨주고 사랑해 줄거 라는 생각은 당연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충실하고 순종적인 남자를 통해 어린시절 받지 못한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었을 것이다.

이렇게 사랑과 인정에 목마른 아내였기에 남편에게 시댁 욕을 하면서도 25년 동안 며느리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있었다. 10년 전 시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도 남편, 시동생, 시어머니 대신 자신이 간병을 다하였다. 하지만 그 때도 남편이나 시어머니, 시동생에게 수고했다, 고맙다 라는 말도 듣지 못했다. 남편이 귀국하였을 때도, 남편의 급여를 하나도 쓰지 않고 통장에 넣어둔 것을 보여주며, 자신이 돈 번 돈으로 생활비를 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말한다. 그 때도 남편이 수고했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하지 않아, 화가 나 죽을 것 같다고 말한다.

이런 아내의 불평을 하면서도 시어머니와 남편에 대한 봉양과 헌신의 행동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남편도 아내가 불평을 하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아내가 시어머니께 잘하니 변할 이유가 없었다. 시어머님 또한 며느리가 불평만 할 뿐 원하는 대로 자신의 아들이 결혼 전과 똑같이 하는 데다, 며느리로서의 일은 다 하여 불편한 것이 없으니 변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며느리의 입장에서는 친정에서 받지 못한 사랑과 인정을 결혼 후 남편에게서 받기를 원했고 그것을 받기 위해 25년간 불평하며 힘들어 하면서도 자신의 의무를 다했지만, 오히려 더 인정받지 못해 화가 났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여인에게 물었다. 당신이 25년 동안 노력한 것은 누구에게 인정받고자 함이었는지 아니면 자신을 위해서였는지... 그제서야 그 여인은 자신이 어린 시절 인정받고 사랑받지 못했던 욕구에 사로 잡힌채 지금까지 살아왔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을 알게 되면서 이 아내는 남편에게 화내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말하고, 자신이 어떻게 하고 싶으며, 어떻게 할 것인지를 말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로소 자신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과거 욕구에 사로잡히게 되면 지금 현재, 여기에 무엇이 필요하고 적절한 것인지를 알게 못하게 된다. 그게 지속되면 자신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은 과거의 가족으로부터 비롯된 나의 욕구를 알고, 그 욕구가 현재에 어떤 영항을 미치는지, 지금 그리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나에게 이로운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래야만 과거의 욕구에 사로잡힘으로서 오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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