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냐옹 May 29. 2023

크로바레코드 12

12. 양치기 소년-H

  

거의 단발이 되어가는 지원이를 미용실에 앉혀놓고 잡지를 뒤적였다. 어, 준이 형이다. 캔퍼스 앞에 앉아있는 준이 형은 화가라기보단 꼭 모델 같다. 프랑스에서도 꽤 이름을 알린 신예라는데, 돌연 귀국했다. 이유는 정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아마도 향수병인 것 같다고. 그 향수병에 루비 누나가 팅거벨처럼 반짝이고 있는 건, 나만의 상상이겠지. 


매직이는 파마를 하고 있다. 저 귀여운 얼굴에 파마까지 하면, 그건 범죄다. 집 앞에 텐트까지 치고 소녀들이 죽 칠지도 몰라. 위험하다고!

“지원이랑 목욕탕 갔다 온다.”

심장 저격자 매직이를 남겨두고 지원이랑 목욕탕으로 향한다. 며칠 새에 녀석이 훌쩍 자란 것 같다. 이발을 해서 더 그런가? 

“헬멧을 쓴 거 같더니, 아주 깔끔해졌네.”

“저도 가벼워서 좋아요.”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 속에서 녀석의 등을 밀었다. 뼈만 있던 어깨에도 조금 살이 붙은 것 같다. 확실히 성장하고 있구나.


“너, 좀 큰 것 같은데? 요즘 잘 먹는구나?”

“아빠가 오셨어요. 그래서 외식도 자주 하고. 엄마도 음식을 해요.”

그랬구나. 뭔가 달라진 것 같다고 생각했어.

“아빠가 오셔서 좋겠다!”

“모르겠어요. 좋은지 나쁜지. 제가 다섯 살 때, 미국에 가신 거거든요. 아빠인 건 알겠는데, 아직은 서먹하고, 좀 남 같아요.”

내가 할아버지를 봤을 때 나이다. 우리의 서먹함도 너와 같았을 거야. 그래도 금세 한 가족이 될 거야. 그게 핏줄이니까. 그나저나 정말 다행이네. 네 엄마 위험해 보였는데. 이젠 아빠가 계시니까 안심이다.

“형.”

“응?”

“계속 이렇게 만나러 와도 되죠?”

“물론이지.”

네가 아빠와 친해질 때까진, 그리고 내가 필요 없어질 때까진 계속 와도 돼. 


핫도그를 문 지원이가 손을 흔들며 사라진다. 아빠랑 야구장에 가기로 했단다. 오늘 많이  친해지겠는걸. 다소 뽀글거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몹시 귀여운 매직이가 껑충껑충 뛰어온다. 키우고 싶은, 아니 납치하고 싶은 강아지 같으니라고!

“푸들이냐?”

“일주일 지나면, 완전 멋있어지거든.”

“오호? 그래?”

“그때 부러워서, 따라하지나 말라고.”

너처럼 귀여워질까 봐 차마 못하겠다. 벌써 소녀들이 뺨을 붉히고 지나가잖아. 들장미도 피고, 안소니 같은 너도 피고, 주근깨 가득한 소녀들도 피어나는 계절이다. 슬슬 옷장정리를 해야겠다. 반팔 셔츠들도 세탁소에 맡기고. 성큼 여름이 다가왔다. 


“준이 형이 크로바에서 보자더라.”

“왜 크로바야?”

“그야 우리 동네 사랑방이니까?”

그러니까 왜 거기가 우리동네 사랑방이냐고. 내 사랑방도 아니고. 

“야! 사랑도 일사천리면 재미없다. 우리가 번갈아 가면서 이렇게 방해해주니까, 더 애타는 거라고.”

“의도적으로 방해하지 않아도 충분히 애 타거든!”

이 녀석을 걷어차면, 혹시 동물 학대인가요?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슈퍼에 들렀다. 어쩐 일로 오늘은 순이, 아니 루비 언니가 가게를 지키고 있다. 

“아주머니는요?”

“감기 기운 있어서 일찍 들어가셨어. 자, 콜라는 덤이다.”

누나가 콜라 두 개 묶음짜리를 떡하니 봉지에 넣는다. 오, 이래서 고양이한테 생선가게를 맡기면 안 되는구나. 


준이 형은 벌써 크로바에 와있다. 민트색 남방에 발목이 드러나게 말아 올린 청바지가 허술해 보이면서도 멋있다. 저런 게 꾸민 듯, 안 꾸민 듯 꾸민 거로구나. 나의 그녀는 보송보송한 연노랑 니트 티를 입고, 색바랜 청치마를 입고 있다. 어쩐지 둘이 너무 잘 어울려서 질투가 났다. 형, 여기서 끼 부리지 말랬잖아요!

“형, 오늘도 빈손이에요?”

“아, 미안. 미처 생각을 못 했네.”

나 대신 매직이가 심술을 부린다. 역시 넌 내 친구야.

“여긴 이용료가 없는 대신, 먹을 거로 받는단 말이에요.”

“아, 그렇구나! 그럼, 뭐 사올까?”

준이 형이 벌떡 일어선다. 제이가 덩달아 일어나 만류한다. 손사래도 어쩜, 너무 귀엽다. 

“방앗간에 가서 꿀떡도 좀 사 오고, 건어물 가게에 가서 오징어도 좀 사오고, 그 김에 세탁소에 가서 좀 인사도 하구. 참, 과일 가게에서 과일도 좀 사 와요.”

준이 형이 순순히 나간다. 저길 다 돌고 오면, 이 근방 가게에 다 인사를 하는 거네. 준이 형이 살았던 때부터 지금까지 있는 가게들. 매직이는 부러 형을 보낸 거구나. 


“오래된 가게들만 보냈네.”

“코흘리개 시절부터 다 알고 지낸 사이니까.” 

잔잔하고 정겨운 멜로디가 흘러나와서 턴테이블을 내려다봤다. 일기예보의 ‘인형의 꿈’ 이구나. 누나의 방에서 CD를 본 것 같다. 몽이 누난 이런 곡들을 좋아한다. 잔잔하고 마음에 감기는 노래. 

“무슨 얘기 했어?”

매직이가 벌써 과자 봉지를 까며 묻는다. 일부러 루비 누나가 권한 과자를 깠다. 네 심술도 보통이 아니구나. 나도 한 개 집어먹었다. 너무 달고, 너무 딱딱하고, 땅콩도 너무 많이 붙었다. 준이 형은 이런 으른 취향이구나. 

“아, 봄봄 화실에 들어오고 싶대.”

“정말?”

복숭아 향이 나는 그녀의 곁에 앉았다. 그녀가 콜라 대신 시원한 보리차를 건넨다. 

“응, 화실 겸 카페를 하고 싶대.”

으른 취향의 과자를 더는 못 먹겠는지 매직이가 결국 다른 봉지를 뜯는다. 

“여기 정착할 생각인가 보네.”

“응.”


과자 한 봉지가 비어갈 무렵, 준이 형이 바리바리 봉지를 들고 들어왔다. 매직이가 제일 먼저 오징어 봉지를 받아든다. 스스럼없이 방에 들어가 오징어를 굽는다. 그러다 뭔가를 발견했는지 쿡쿡 웃는다. 제이는 준이 형이랑 대화 중이라 눈치채지 못했다. 

“세탁소 아주머니한테 등짝을 얻어맞았어.”

“맞을만 하죠. 다들 궁금해했는데, 인사도 안 가고.”

“생각을 미처 못 했어. 여기 봄봄으로 들어온다니까 다들 좋아하시더라. 시간 날 때 그림 배우러 오신대.”

이제는 소녀들이 아닌 중년 어머니들의 마음에 위험한 불씨를 놓게 생겼구만, 오징어를 굽다말고, 매직이가 살랑살랑 손짓을 한다. 눈치껏 일어서서 슬쩍 방으로 들어갔다. 처음 들어가보는 그녀의 방이다. 곰 아저씨가 있을 땐 우리의 아지트였던 곳. 예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는 데도, 주인이 바뀌어서 그런가, 어쩐지 낯간지럽고 낯설다. 오징어 냄새가 진동한다. 매직아, 이건 좀 너무 했다. 밤새 오징어 배를 타는 꿈을 꿀 것 같은데. 잘 구운 오징어를 담고, 사과를 깎을 과도를 찾는데, 매직이가 어딘가를 가리킨다. 


연보라색 내지가 벽에 붙어서 나부낀다. 그녀는 늘 여기 서서 내 마음을 읽었겠구나. 벚꽃이 피어있던 그 서가 구석을 떠올렸겠구나. 시간이 멈춘 듯, 천천히 흘러간다. 매직이가 나간 줄도 모르고, 연보라색 내지 앞에 서 있었다. 

“접시가…”

사과를 담을 접시를 가지러 들어왔던 그녀가 덩달아 멈춰선다. 내 얼굴처럼 그녀의 얼굴도 달아오른다. 말없이 그 손을 잡는다. 잠시 멈춘 들, 상관없다. 사랑하는 이들의 시간은 어느 누군가를 위해 거기 머무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는 밤보다 훨씬 멀고, 낮보다 훨씬 높은 다른 곳에 거주한다. 우리 사랑의 눈부신 투명함 속에. 


“사과 다 깎았어!”

그럼, 먹어. 꼭지까지 다. 

벌컥 문이 열려서 깜짝 놀랐다. 못마땅한 표정의 누나가 혀를 끌끌 차며 이편을 올려다본다. 

“접시 구우러 가마에라도 들어 갔는 줄 알았다.”

제이가 호다닥 접시를 챙겨든다. 아무튼 이 동네를 떠나야 해. 준이 형도 봄봄에 들어오지 마요. 저 같은 꼴 당한다구요. 

“쳇, 언제 온 거야?”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겠냐?”

누나가 실실 웃으며 아이스크림 봉지를 흔들어댄다. 얼굴이 홍당무가 된 제이가 접시를 내주고, 봉지를 받아서 냉장고에 넣는다. 하여간 사악하다. 사악해. 


매직이가 토끼 모양으로 깎아놓은 사과를 접시에 담고 포크를 꽂았다. 

“벌써 부동산에 들렀다 왔다며.”

“응.”

“너, 그 돈은 있는 거야?”

“뭐, 이 나이 먹도록 논 건 아니니까. 그림 판 돈이 좀 있어.”

“허, 부자네.” 

“봄 쌤 그림이랑 남은 그림들도 살까 해. 내겐 모두 추억이니까.”

“밀린 월세 대신이겠네?”

역시 누난 눈치가 빠르다. 부동산 아줌마한테 들었겠지. 봄 쌤이 밀린 월세를 낼 여력이 없다는 것을. 형은 대신 그 돈을 내주려는 거고, 

“그만한 가치가 있어. 내게 그 그림들은.”

제이는 말없이 사과를 먹는다. 나도 그녀를 따라 사과를 먹는다. 붉고 작은 토끼가 입속으로 사라진다. 사람이 많을수록 그녀는 고요해지고,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나도 잠잠해진다. 


“제이는 어때?”

그녀가 사과를 먹다 흠칫 놀란다. 먼 심연에 배를 띄우고 있었나 보다.  

“저도, 그 생각을 했었어요. 월세 대신 그 그림들을 사면 어떨까 하고.”

“혹시 크로바 레코드 그림?”

매직이가 끼어든다.

“그 그림도 맘에 들고, 봄 쌤이 그린 수국 그림도 좋아요. 하지만, 준이 형이 사준다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보다시피 여긴 걸 데가 없으니까요. 화실에 걸어둔다면, 종종 가서 감상하면 되니까요.”

나도, 벚나무 아래 그 그림을 보고 싶다. 준이 형이 가게를 연다면, 자주 가서 그 그림 앞에 서고 싶다. 은은한 커피 향과 그 그림이 있다면 금방 단골이 될 것만 같다. 

“너 바리스타 자격증은 있냐”

“아직 시간이 있잖아. 화실 리모델링 하는 동안 따지 뭐.”

“저길 고치게?”

몽이 누나가 천장을 올려다본다. 

“많이는 아니고 조금. 창고를 방으로 개조할까 해. 따로 방을 얻는 것도 그렇고 해서.”

추억은 남겨둔 채로, 고칠 곳은 고치겠지. 변화될 봄봄이 궁금하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제이가 벌떡 일어나 꾸벅 절한다. 세입자에게 이렇게 깍듯하게 인사하는 주인이 있으려나. 피식 웃음이 났다. 준이 형도 엉겹결에 일어나 인사한다. 


“이거, 이거, 그냥 콜라로는 안 되겠는데. 매직아, 샴페인 사러 가자!”

누나는 중독이야. 매직이가 잘 훈련된 푸들처럼 발딱 일어나 주인을 쫓는다.

“순이, 아니 루비 누나도 알아요? 형이 여기 들어오는 거?”

“나한텐 순이가 더 익숙해. 대체 루비는 누가 지은 거야? 어울리지도 않게.”

그게 누나가 스스로 지은 이름이라구요. 

“순이도 알아. 근데 반대해. 다른 데를 놔두고, 왜 이 동네에서 화실을 여냐고. 내가 이 동네에 있는 게 싫은가 봐.”

어쩐지 제이가 안절부절 못 한다. 뭔가 죄지은 사람처럼.  

“근데 난 다른 덴 자신이 없어. 순이가 있는 이 동네가 좋아. 내 이름을 내 건 화실을 하기엔 익숙한 곳이 더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순이 언니가 무슨 말 안 하던가요?”

“무슨 말?”

“아니, 좀, 다른 점 없었어요?”

“아, 그러고 보니, 갑자기 적극적이게 됐어. 도망 다니기만 해서, 이젠 내가 싫어졌구나 했었거든.” 

제이가 가슴을 쓸어내린다. 아무래도 뭔가 있는 거 같은데. 내가 모르는 착한 거짓말 같은 거.


“아까 미용실에서 잡지 봤어요. 사진 대게 잘 나왔던데?”

형이 머쓱한 듯 웃는다.

“그런 식 인터뷰는 처음이라 어색하더라.”

“정말 향수병 때문에 온 거야?”

“그래. 이 동네도 그립고, 엄마 음식도 그립고, 친구도 그립고, 순이도 그리웠어. 거기서도 연애를 하고 친구를 사귀었는데도, 어쩐지 내 마음은 여기 두고 온 것처럼 헛헛했어. 계속 있다가는 그림이고 뭐고 다 필요 없어질 것 같아서 왔어.”

“잘 왔어. 형. 형이 왔으니까, 봄봄 화실도 새로 피어나겠네.”

“그랬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샴페인을 사러 간 매직이와 누나는 오지 않는다. 순이 누나에게 감금된 것인가. 매직이와 몽이 대신 낯선 남자가 크로바 문을 빼꼼 연다. 한눈에 봐도 명품 양복에 명품 외모다. 이런 귀공자께서 이런 누추한 곳이 어쩐 일이신가요. 공연히 굽신거리게 되는 인상이네. 

“저 실례합니다. 수니 슈퍼를 가려고 하는데요. 이쪽 방향이 아닌가 봐요?”

극강의 친절함으로 길을 알려주었다. 최종 목적지는 수니 슈퍼가 아니라, 수니 슈퍼 옆에 있는 누군가의 집이겠지만, 시치미를 떼고 준이 형을 놀리기로 했다. 


“와, 순이 누나 인기 여전하네.”

“응? 그냥 길 물어보는 거 아니었어?”

준이 형이 바짝 긴장한다. 암암, 그래야지. 우리가 이 동네 마스코트인 수니 슈퍼의 순이 누나를 쉽게 내줄 줄 알았어? 

“형이 프랑스에 가 있는 동안, 순이 누나가 옷고름에 눈물이나 찍으며 기다렸을 것 같아? 저 남자도 세 살 연하인데, 그렇게 누날 쫓아 다닌데. 무슨 CEO라던데. 텔레비에도 막 나오고 그런다더라. 얼굴이 낯익지? 아주머니가 사위로 점찍은 남자가 저 남자였던가? 아니, 이 동네에 새로 개업한 치과의사였다고 했나? 하도 많아서 이젠 헷갈리네.”

“순이가 그럴 리가?”

“순이는 잊어. 루비야.”

그리워만 해서는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망설임은 넣어두고, 이젠 달려갈 차례에요. 형. 순이와 준이의 고구마 연애도 슬슬 동치미 국물을 들이킬 때다. 


“언니를 너무 바람둥이로 만든 거 아니야?”

준이 형이 낯모르는 남자를 쫓아 수니 슈퍼로 달려갔을 때 제이가 물었다. 

“거짓말은 나만 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응. 실은…나도 준이 형을 시한부로 만들었어. 언니가 너무 망설이길래.”

“헉, 나보다 더 막장인데?”

그 대담무쌍한 거짓말에 웃음이 터졌다. 루비 누나가 그리 적극적이게 된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였구나. 

“나중에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건 나중일. 뺨 세 대를 맞던가. 석고대죄를 하던가.”

널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꽁지에 불이 붙은 형의 뒷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새어 나왔다. 우리 둘 다 양치기 전문이네.


매직이와 누나가 미적지근해진 샴페인을 들고 들어온다. 보아하니 순이 누나한테 많이 시달린 눈치인데. 그러니까 거길 왜 갔어. 샴페인 정도야 개업식 때 터트려도 되잖아.

“준이 형은?”

“순이 손 잡고 뛰쳐나가던데?”

“응? 그럼 가게는?”

“아저씨가 오실 때까지 우리가 지켰잖아. 순이 년 때문에 이게 뭔 고생이야.”

“늦게 배운 도둑이 밤새는 줄 모른다더니.” 

“그러게 말이다. 콜라나 따라라. 목 마르다.”

누나의 잔에 공손히 술을 따랐다. 어째 매직이가 잠잠한 걸 보니, 이쪽도 분명 뭔가 있는데? 누나가 너무 명랑한 것도 수상하고. 나 몰래 슈퍼에서 심야 데이트라도 한 분위기인데. 


“어. 매직이 입술에 뭐가 묻었는데?”

제이가 고개를 쑥 빼밀고 매직이의 입술을 들여다본다. 가만, 저게 뭐지? 우리 누나가 좋아하는 산호색 립스틱이 왜 저 자식 입술에 발려있는데! 누나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당황한 매직이가 입술을 지워보지만, 이미 늦었다. 이렇게 진도를 빼셨단 말이지. 내가 2차 방정식을 풀랬지. 그래프도 그리고, 막, 함수도 풀고, 막

“앞으로 내 앞에서 오징어 굽지 마! 굽기만 해봐. 아주 둘 다 오징어처럼 바싹 구워 버릴 테니까!” 

제이가 손으로 입을 막고 큭큭 웃는다. 우리 둘은 어쩔 수 없이 꼴찌네. 그 오랜 시간 몽이 누날 좋아했던 매직이도, 순이 누나만 바라보았던 준이 형도, 이제야 사랑을 꽃피운다.


 이제 막 한 걸음 뗀 우리는 아직 겨울 눈과 같다. 아직은 사랑하기엔 추운 계절. 우리는 간질간질 움트는 심장을 들고 서로를 응시한다. 조금씩 잎을 내고, 조금씩 고개를 들며 내며, 천천히. 빠르지 않아 좋고, 기다릴 수 있어서 좋다. 더욱 오래 설레기를, 더욱 오래 사랑할 수 있길.    


#크로바레코드 #달달로맨스 #봄봄화실 #하니와제이 #로코 #웹소설 #현로        

작가의 이전글 크로바레코드 1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