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침묵이 가리어진 슬픔을 알지 못한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우리는 종종 침묵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읽으려 한다. 다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아는 듯 굴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듯 묵묵히 그 고요를 지켜낸다. 아마도 수많은 생각이 오가는 사이, 섣불리 말을 건넸다가 어색한 틈이 생길까 두려운 마음이, 그 침묵을 붙잡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면 할 말을 찾기보다는 차라리 침묵이 낫다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혹여 내뱉은 말이 되돌아와 상처로 박힐까, 여전히 입술을 닫아버리는 것이다.
‘한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을 알면서도, 서로가 먼저 입을 열지 않는 상황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그러면 언젠가 마음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한다. 가족이든 연인이든, 싸움 끝에 지쳐 감정을 소모하기 버겁다고 느낄 때, 대화를 줄이고 부딪힘을 피하려 한다. 마음이 아픈 걸 알면서도, 그 관계를 깨고 싶지 않아서 차마 말들을 다시 삼켜 넣는다.
물론 매일이 좋을 수는 없다. 같을 수 없으니, 이런 날도 저런 날도 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달랜다. 하지만 그런 날들이 잦아질수록 마음속 어딘가에 작은 벽돌이 쌓이는 듯한 씁쓸함이 앞선다. 언젠가는 그 벽이 우리 사이를 가로막지 않을까, 문득 두려움이 스친다. 같은 상처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우리를 지켜내려는 듯 벽을 더 높여 올리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관계라면, 지켜내야 하는 관계라면, 아마 그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침묵을 때로는 ‘보이지 않는 성벽’에 비유한다. 겉으로는 다투지 않고 평화를 지켜내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의 마음을 가만히 가둬두는 벽돌 하나하나가 쌓이고 있는 셈이다. 말하지 않는다는 건 다름 아니라 상처가 새어 나오지 않도록 봉인하는 행위이지만, 동시에 상대의 온기가 스며드는 길마저 막아버린다. 그 벽은 처음엔 얇은 종이장 같아도, 시간이 흐르면 서로의 숨결조차 건너가지 못하는 두터운 장벽이 된다. 결국 침묵은 우리를 지켜주는 옷이자, 천천히 관계를 얼어붙게 만드는 냉기일지도 모른다.
결국 관계란 침묵과 말 사이에서 흔들리는 외줄 타기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때로는 입을 다물어야 지켜지는 평화가 있지만, 또 어떤 순간에는 그 작은 한마디가 오래된 벽을 허물고 다시 다가갈 다리가 되기도 한다. 중요한 건 침묵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침묵 뒤에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가 일 것이다. 우리가 서로를 잃지 않으려 한다면, 언젠가는 그 고요를 뚫고 건네야 할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관계를 둘러싼 벽은 어쩌면 아주 작은 진동에도 무너져, 다시 서로를 품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중요한 건 그 진동이 스쳐 지나갈 때, 우리의 마음이 그것을 놓치지 않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