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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베준 Nov 08. 2024

두 아들의 사랑법

삐뽀 삐뽀, 커피를 찾아라   



정적이 흐르는 오후 7시 30분, 욱 버튼 발생이다.

참고 참았던 분노를 터트리고 난 후의 정적이다. 엄마의 한숨소리를 들은 아이들은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속닥속닥 거리기 시작했다.

'둘이 또 무슨 귀여운 작당모의를 하는 거지?'

궁금했지만, 엄마의 미세한 자존심과 기분은 화 모드로 일관했다.



삐뽀삐뽀, 이상감지가 느껴진다.

엄마의 화가 풀리려면 커피를 찾아라.



주방으로 향하는 두 아이.

달그락달그락,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열심히 뭔가를 만드는 것 같다.

예상되는 일들이 시작된다. 말릴 수가 없는 그 일을.


차례대로 내어오는 다양한 커피들.

예전부터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커피를 찾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육아가 힘이 들 때마다 위안을 주던 커피를. 유독 힘이 들고 지치는 날은 커피를 시켜 마셨고, 행복해하는 엄마를 지켜보았을 터.

'말하지 않아 알아요.' 저절로 콧노래가 나오는 가사처럼

화난 엄마에게 좋아하는 커피를 내어주면 기분이 풀리고 웃겠지? 생각했을 아이들 생각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행동은 꽤나 빠르다. 커피 타는 일은 아이들에게는 소꿉놀이하듯 쉬운 일이었고 그럴싸하게 내어온다.

를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익숙한 손놀림으로 캡슐 커피를 내리고 얼음을 띄우고, 찬우유를 붓는다.

약간의 너스레를 떨며

"서비스로 빨대까지 준비했어, 아 해봐."






엄마 입으로 쏙 친절하게 넣어주는데 어찌 화를 계속 낼 수 있단 말인가.

너의 귀여움에 웃음이 피식 새어 나온다. 한 모금 마시니 차르르 눈 녹듯 기분이 풀린다.

성공이다.


둘째는 캡슐커피가 뜨거우니 만지지 말라는 금지령을 내린 터라 늘 믹스커피를 내어온다.

뜨거운 물 없이도 믹스커피가 가능한지 이때 처음 알았다.

미지근한 생수로 해볼 일은 없었다.


"어떻게 타왔어?"

"그냥 열심히 저었지."

씩.


사실 맹숭맹숭 맛은 없다.

늘 맛있는 척하느라 곤욕이긴 하지만, 낮은 온도의 물에 녹기 힘든 그 프림을 젓느라 무단히 애썼을 아이의 사랑이 느껴지다 보니 맛없게 마실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약간의 연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섬세해서 내 표정을 보고 금방 눈치챈다.

어느 날은 정말 맛이 없어 거의 안 먹으니


"엄마 맛이 없어?"

"아니야 배가 불러서 그래."

"왜 이렇게 많이 남겼어. 맛이 없는 거야?"


엄마가 맛있게 먹을 기대를 한 스푼 두 스푼 넣으면서 열심히 팔을 휘저었을 둘째는 이내 뾰로통해진다.


그날 이후 비록 카페인 과다 복용일지라도 맛있게 마셔주는 연기를 하곤 한다.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날이나, 맛없어 보이면 이어서 계속 다른 커피와 다양한 음료가 나오는 날들도 있다. 열정적인 시도를 말리는 엄마, 그런 모습이 깔깔깔 재미있는 아이들.





아이들이 날마다 웃을 때,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피터팬> 제임스 매튜 배리




화를 내서 엄마에게 서운한 마음보다, 엄마 마음을 빨리 풀어줘야겠다고 생각한 두 아들의 사랑에 마치 오래 끓인 곰탕처럼 푸근하고 따뜻했다.

그리고 진하디 진했다.

 


어떤 날은 수박을 으깨서 주스로 만들어온 너,

씨가 동동 뜨는 주스는 내 생에 처음이지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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