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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Feb 01. 2024

서점과 도서관

아프리카 속담에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생명의 추가 죽음쪽으로 기울어져있는 노인인 나는 “도서관”이라는 단어에 움찔 놀란다. 내 안에 아까워할만한 지혜를 담고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전에 도서관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살았다. 세월 따라 그냥 늙어 지금에 이르렀다. 안타깝다. 숫자로 치면 읽은 책의 수는 제법 되지만 읽은 것들을 소화하고 양분으로 바꾸어 세상을 이롭게 하지는 못했다. 이런! 세상이 다 뭐냐, 나 자신의 삶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했다. 담아둔 활자들은 지혜로 숙성되지 못하고 설익어 떫고 시큼한 활자로 갇혀있다.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현대사회가 문명의 경계 밖으로 여기는 아프리카에서 전해 내려오는 말이다. 아프리카의 지성 아마두 함파테 바Amadou Hampete Ba(1901-1991)가 1962년 유네스코 연설에서 인용한 말이다. 아프리카를 미개한 곳이라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방자한 일인가. 아프리카의 노인들은 많은 책을 읽지 않았어도 삶에서 얻고 축적한 지혜를 이웃에게 나눠주고 어른으로 대접을 받았다. 노인의 삶이 ‘도서관’으로 비유될만큼 지혜로웠다. 그동안 어떤 면에서는 뭐 좀 아는척도 하면서 살아왔던 내가 참 부끄럽다.


아마두 함파테 바의 연설을 듣고 읽을 수 있는 주소.

https://www.unesco.org/fr/resource/10/4  17/19

https://unesdoc.unesco.org/ark:/48223/pf0000090823 


여러 해 전부터 새 책을 사지 않기로 마음 먹었었는데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은 서점에 가서 책을 한 두 권씩 산다. 그동안 책을 무겁게 들고다닐 필요없고 가격 할인도 되는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했었다. 요즘은 활자를 키워서 읽을 수 있는 e-book을 구매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크고 작은 도서관이 곳곳에 있으니 책을 굳이 사지 않아도 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다. 

지난 달부터는 다시 서점에서 책을 사기 시작했다. 서점 운영하는 지인에게서 서점 경영의 어려움을 들었기 때문이다. 온라인 대형서점에 치어 서점에서 책 판매가 어렵다고 한다. 도서정가제를 지켜야하는 서점은 할인을 하지 않아 책값이 온라인 서점보다 비싸다. 코로나 유행으로 운영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자유롭게 다니는 지금도 책 판매는 회복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도시에서 가장 큰 대형 서점인데 매주 갈 때마다 매장은 한산하다. 지인이 운영하는 서점은 팬시용품이나 문구를 팔지 않고 오로지 책만 판매한다. 책에만 집중한다는 운영방침이 경영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내가 매주 한 두 권씩 사더라도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책 구매를 멈췄던 내가 다시 책을 사들이기 시작하니 읽기에 쫓긴다. 안하던 책방 나들이를 하고, 사온 책을 읽느라 바쁘다. 

브런치 지인들이 출간하는 책들을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했었는데 이제는 직접 서점에 가서 사기로 한다. 책을 출간하고 판매부수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나 자신을 생각하면 다른 사람이 출간한 책을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 책이 많이 팔리기를 바라는 만큼 남의 책도 사야한다는 생각이다. 내 책이 1천권 팔렸다면 나는 남의 책을 몇 권 사야할까. 적어도 10권? 100권? 남들이 1천권의 책을 사가는 동안 나는 10권의 책도 제대로 사지 않는다면, 그러면서도 내 책이 팔리기를 기대한다면 욕심쟁이가 아닌가.


서점 내부


서점 사장님은 요즘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한탄하신다. 어린이들이 서점에 오지 않아도 다른 곳에 놀러 다닐 곳이 많고, 책보다 더 재미있는 컴퓨터에 몰입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튜브의 10분~15분 정도의 시간도 길어서 "Shorts"를 보는 세상이니 책은 자꾸만 뒷전으로 밀린다. 서점에서 책을 못 팔아서 화를 내시는 것이 아니라,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에 사람들이 책과 멀어지는 세태를 걱정하는 것이다. 그 분은 사람을 만나면 처음에 동화책을 한 권 읽어주는 것으로 만남을 시작한다. 어른이 와도 동화책을 읽어주신다. 그렇게 수 십년간 서점을 운영해오셨다. 나도 덩달아 동화책에 빠져들었다. 


서점 안에 어린이들을 위한 마루방을 만들어놨다. 의자를 놓은 독서공간도 따로 있다.

오래 전에 어린이 도서관에서 봉사를 했었는데 그곳이 마루방이었다. 아이들이 오면 바닥에 배를 쭈욱 깔고 엎드려 만화책을 읽는 아이도 있고, 이곳저곳을 징검징검 짚으며 걸어다니는 아이도 있고, 친구와 함께 큰 소리로 떠드는 아이도 있다. 처음엔 도서관에서의 그런 모습을 견디기 힘들었고, "지도하지 말고 책과 함께 놀도록 그대로 두라"는 어린이 도서관 봉사자 교육 강의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종이에 "정숙!" "조용히!" 이런 글을 써서 붙이려고 여러번 시도는 했지만 결국엔 붙이지 않았다. 바른 자세로 앉아 조용히 정독해야한다는 제약이 아이들을 책에서 멀리 떨어지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책과 함께 놀도록, 책이 놀이 도구가 되도록 그냥 두었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다. 이야기 속에서 지식도 익히고, 지혜도 쌓고, 재미도 즐긴다. 어린이 책이 흔한 곳에서는 책이 이야기를 해주고, 책이 귀한 곳에서는 직접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마두 함파테 바의 자전적 성장소설 <들판의 아이>는 아이들에게 이야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렇게 서술한다. 

"아프리카 전통 이야기꾼들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놀이판은 아이들에게 그야말로 살아있는 학교였다." <들판의 아이> 2008. 북스코프. 이희정 역. 287쪽.


읽을 책은 쌓여가고, 읽기는 게으르고... 

한동안 이런 말이 있었다. 취미가 무어냐고 물으면 독서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독서는 취미가 아니고 필수'라는 것이다. 필수! 꼭 해야되는 일이다. 일년에 평균 35권~40권을 읽어왔었는데 올해는 최소한 52권을 읽어야 한다. 매주 한 권씩 새 책을 사니까. 많이 읽지도 않은 아프리카 노인의 지혜가 마을 사람들의 삶에 작용하는데, 많이 읽으면 나도 삶에 보탬이 되는 지혜를 쌓을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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