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언어와 기호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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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의 캔버스를 마주할 때 관객은 서서히 말을 잃는다. 붉은색, 검은색, 보랏빛, 혹은 황금빛이 거대한 직사각형으로 겹겹이 놓여 있을 뿐이다. 그 단순한 색의 장막은 압도적인 정서의 파도를 불러일으킨다. 로스코는 “나의 그림은 비극, 황홀, 운명에 관한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색채가 단순한 미학적 요소가 아니라 존재의 심연을 드러내는 매개임을 암시한다.
장-뤽 낭시의 철학 역시 이 지점에서 로스코와 맞닿는다. 낭시는 존재를 단일한 실체로 보지 않고, 관계와 울림 속에서 드러나는 다성적 현상으로 이해했다. 그의 개념으로 말하자면, 로스코의 색면들은 단일한 ‘의미’가 아니라 서로의 경계에서 공명하며 존재의 다층성을 드러낸다. 로스코의 캔버스 앞에서 느껴지는 침묵과 울림은 곧 낭시가 말한 “공유된 존재”의 감각이다.
낭시는 <무위의 공동체>에서 '공동체는 미리 주어진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해체되고 다시 관계 맺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는 ‘함께 있음’을 존재의 본질로 강조했으며, 이 과정은 완결되지 않은 채 열려 있다고 보았다.
"공동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공동체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공동체는 저항한다. 어떤 의미에서, 내가 말한 대로, 그것은 저항 자체이다. 존재?또는 단수적 존재들?의 공동의 나타남이 없다면, 아무것도 없거나, 차라리 그 자신에게만 나타날 뿐 그 자신과 함께 공동 내에 있지도 못하는 존재만이, 두꺼운 외양 속에 잠겨 버린 내재적 존재만이 있을 것이다." 142쪽 <무위의 공동체> 박준상 옮김, 2022, 그린비
로스코의 작품 앞에 선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깊은 고독을 경험한다. 그 고독은 단절이 아니라, 같은 공간에 모인 이들이 동시에 느끼는 집합적 고독이다. 로스코는 실제로 자신의 그림을 작은 방에 걸고, 관객이 혼자 침묵 속에서 몰입하도록 의도했다. 하지만 그 고독은 철저히 사적이지 않다. 낭시의 언어로 말하면, 그것은 “함께-고독”이다. 한 사람의 고독이 다른 사람의 고독과 겹쳐지며 공동체적 체험으로 확장된다.
워싱턴 D.C.의 로스코 채플(Rothko Chapel)이 바로 그 사례다. 종교적 상징이 없는 공간에서, 로스코의 어두운 색조는 인간을 절대적인 침묵과 함께 있음의 체험으로 이끈다. 이는 낭시가 강조한 공동체의 ‘열림’과 깊은 공명을 이룬다.
낭시는 <코르푸스 Corpus>에서 '몸은 세계와 접촉하는 표면이며, 그 자체가 의미의 발생지'라고 했다. 그는 몸을 단순히 육체가 아니라, 감각과 세계가 만나는 ‘경계이자 울림의 자리’로 보았다.
"때때로 이 ‘몸’은 그 자체가 표상이 형성되거나 투사되는 (감각, 인지, 영상, 기억, 관념, 의식) ‘안’이기도 하다. 그럴 때 ‘안’은 몸에게 생소한 것으로, 달리 말해 ‘정신’으로 나타난다.(스스로를 그런 것으로 나타낸다.) 그런가 하면 때때로 몸은 기호 작용을 하는 ‘바깥’이기도 하다(방향 측정 및 조준술에서 말하는 ‘영점,’ 각종 관계의 발원지이자 수신기, 무의식). 이 경우 ‘바깥’은 두터운 내부로, 의향성으로 가득차고 메워진 동굴로 나타난다. 따라서 기호 작용을 하는 몸은 안과 바깥을 교환하고 확장된 것을 유일한 기호의 오르가논 속에 (의미는 거기서 형성되며, 그로부터 형태를 취한다) 폐기해버리는 과정을 끊임없이 되풀이한다." 70쪽. <코르푸스> 김예령 옮김, 2024. 문학과 지성사.
로스코의 색면회화는 바로 이 ‘몸의 경계’를 자극한다. 그의 그림은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색채의 두께와 깊이가 피부로 스며드는 듯한 체험을 만든다. 관객은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색과 접촉하는 듯한 감각을 경험한다. 붉은 색은 맥박처럼 뛰고, 검은 색은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낭시가 말한 “몸의 표면은 접촉의 진동”이라는 개념은 로스코의 색면 앞에서 생생하게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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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sfmoma.org/artwork/97.524/
마크 로스코 <붉음과 검정 사이/No14> 1960. 캔버스에 유채, 290.8 × 268.2cm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샌프란시스코, 미국
로스코의 대표작들은 대부분 넓은 색면이 중첩된 캔버스로 구성된다. 이 그림은 화면 전체가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분할되어 있지만, 단순한 색의 대비가 아니라 빛의 울림처럼 번지는 경계가 특징이다. 그는 '색과 색 사이의 호흡, 그 안의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다.
로스코는 자신의 작품을 ‘추상’이라 부르는 것을 거부했다. 관람자가 화면 앞에 섰을 때 감정적으로 몰입하고, 존재적 체험을 하게 되길 원했다. 로스코는 “나는 추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비극과 황홀, 운명, 그리고 숭고를 그린다.”고 했다(Notes from a conversation with Selden Rodman, 1956 대화록).
그의 그림 앞에 서면 마치 명상 공간처럼 침묵과 내면의 울림을 느끼게된다.
거대한 캔버스에 붉은색과 검은색이 맞부딪히듯 놓여 있다. 관객은 단순한 색의 대립 앞에서 오히려 말문을 잃는다. 그 앞에 서면 색이 단순히 ‘보이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를 압도하는 힘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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