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날아오른다.
EP2.
비행기가 날아오른다. 내 마음이 벅차오른다. 6년 만의 비행이다.
이번 여행은 사실 도피성이다. 나는 도망치고 싶었고, 한국을 벗어나 아주 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내 속에 겹겹이 쌓인 슬픔과 복잡하게 얽혀버린 고민은 아주 먼 곳으로 떠나야만 희석되고 풀어질 것 같았다. 나는 리스본으로 떠나기로 했다. 소심한 나는 이 결심을 하기까지도 한 달이 걸렸고, 비행기표를 결제하기로 결심하기까지도 한 달이 넘게 걸렸다. 웃기게도 내가 그 큰 거금을 사용할 수 있던 용기는 리스본이 나의 도피처가 되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아닌, 200만원의 지진 보상금을 받게 될 가능성에서 나왔다. (나는 포항에서 학교에 다녔고, 지진 피해자였다)
그레고리우스가 프라두의 삶을 따라갔던 것처럼, 난 그레고리우스를 따라간다.
제일 울적했던 재수생시절, 힘들 때마다 학원 앞 웨딩홀 주차장에서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읽으며 위로받았다. 내가 진짜 리스본에 간다면, 나는 이 험난한 세상을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떠난다.
엄마의 존재는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엄마는 완벽한 여행메이트였다. 엄마는 여행 동안 필요한 모든 물건을 하나하나 파우치에 정리해 깔끔하게 짐을 싸주었고, 손목이 아픈 나를 위해 주문한 음식을 가져다주었고, 공항 한구석에서 수화물 캐리어를 열어 생리대를 찾아주기도 했다. (얼마나 짐을 잘 정리하였는지 커다란 캐리어를 활짝 여닫을 때 어느 하나 구르거나 떨어지는 게 없었다) 마땅히 머리 기댈 곳 없는 불편한 중간 자리에 앉으며 창밖을 구경하고 싶은 나에게 창가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또, 내가 원하는 순간마다 사진을 열심히 찍어주었다. 익숙한 장소를 떠났을 뿐인데 엄마의 사랑이 너무나 명료하게 느껴졌다. 왜 진작 엄마와 둘이 여행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온전히 나를 향한 엄마의 사랑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노라면, 지금까지 묵혀둔 내 속의 여러 복잡한 감정과 스스로 괴롭히면서까지 해왔던 머리 아픈 고민은 사실 나를 조금도 해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사소하다는 걸 너무 쉽게 깨닫는다. 나에게 여행할 자격이 없다는 데서 오는 슬픔은 허울일 뿐이고, 노력한 만큼 성적을 받지 못했다는 데서 오는 서러움은 오래 품을만한 게 아니라는 걸.
Love bears all things, believes all things, hopes all things, endures all things.
어떠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내가 무너지지 않고 나아갈 수 있던 이유는 아마도 나를 향한 엄마의 사랑에 있지 않을까?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돌아올까. 이번 여행은 나에게 무엇을 가져다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