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이 Apr 20. 2024

내가 리스본에 갈 수 있을까

엄마와 전화하다 엉엉 울어버렸다.

EP1.


힘들지 않았던 학기가 언제는 있었을까만은, 이번 학기는 유독 힘들었다.


목표했던 성적의 반도 달성하지 못했다. 이번 학기에는 정말 잘하고 싶었다. 기본적으로 외워야 하는 족보 이상으로 모든 과목을 잘 해내고 싶었다. 작년과는 달리 각 과목을 더 철저하게 공부하여 교수님의 기습 질문에도 척척 대답해 내고 싶었다. 매일 잠이 부족했고, 피곤한 하루를 버텨내기 위해 속이 쓰릴만큼 커피를 마셨다. 울렁거리는 빈속에 커피를 들이킬만큼 늘 부담을 짊어매고 살아갔는데, 그것이 나의 패인이었을까.

새벽 네시에도 나는 잠들지 못했다.


일어나자마자 아아를 약처럼 마셨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지 않은 와중, 나는 우리 가족의 첫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여행지는 홋카이도였다. 일본을 여행지로 잡았던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엔화가 많이 떨어졌으니 가성비 여행으로 거하게 본전을 뽑아보고 싶었다. 눈으로 뒤덮인 홋카이도의 풍경을 엄마아빠와 함께 바라본다면 참 감격스러울 것 같기도 했다. (아름다운 풍경은 부수적이었다...) 그러나 홋카이도는 대중교통만 이용하여 관광지를 찾아다니기엔 어려움이 있었고, 이를 해결해 줄 택시투어의 존재를 알게되어 정보를 찾아보던 중... 본업인 공부보다 여행계획에 더 많은 시간을 쏟는 나를 발견했다.


여행지를 바꿨다. 공부와 여행계획으로 지쳐 흐느적거리는 나를 본 동기들이 부모님이랑 자유여행 하기에는 오사카, 교토만한 곳이 없다며 여행 자료를 넘겨주겠다고 한 거다. 그리고 여행 준비는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길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여행의 목적을 다시 생각해봤다. "그런데 잠시만. 왜 오사카에 가기로 했지? 여행계획 짜기 쉬운 곳으로 여행지를 결정하는 게 맞나?" 적어도 우리 가족에겐 해외여행 경비는 거금이어서 해외여행은 고민에 고민을 거쳐야 하는 행사다. 그러한 중대 행사를 고민하기 귀찮으니까 평소 먹던 거 먹으러 가자, 식으로 결정하는 건 나에게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갑자기 여행의 의미에 관해 생각해보던 나는 주저앉아 버렸다. 그때, 마음속 고이 품고 있던 리스본으로 떠나야겠다는 마음이 파도처럼 강하게 아주 강하게 몰려왔다.


그레고리우스는 급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올랐다. 나에게도 리스본으로 떠나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이 거세게 밀려온다. 지금까지 오래 참아왔으니, 이제는 떠나야겠다고 결심하는데 마침 엄마에게 걸려 온 전화. 이제 말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나는 엄마에게 리스본으로 떠나고 싶다고 말하던 중 엉엉 울어버렸다. 지난 일 년을 돌아보았을 때 좋은 성적도 이렇다 할 성취도 나에겐 없었다. 나에게 리스본에 갈 자격이 없다고, 감히 리스본 여행을 꿈꿀 자격조차 없다고 느껴졌다. (당시의 나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아주 불안정하고 또 연약했다.)


"엄마, 나는 리스본에 갈 자격이 없어. 나에게 여행은 사치야."

"여행 가는 데 자격 없는 사람이 어딨어. 리스본 다녀와. 우리 여행은 신경쓰지 말구."

"근데 혼자 갈 용기가 나지 않아."

"엄마가 같이 가줄까?"


우리 엄마, 해외에 나가야겠다는 나에게 늘 여행은 언제나 갈 수 있으니 일단 공부하라는 조언을 해왔던 사람이다. 엄마 아빠와 함께 울며 통화했던 그날 밤 이후에도 엄마 아빠는 나에게 멈추지 않고 위로와 용기를 줬다.


그렇게 나는 리스본에 가게 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