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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봄 Jan 06. 2021

밥 먹이기, 종전을 고하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홍게 한 마리씩을 마주한 날입니다. 아이들은 제 도움 없이 게 다리를 자르고 젓가락을 이리저리 찔러가며 게와 한 판 씨름을 벌입니다. 얼마나 알뜰하게 게살을 발라먹었는지 모르지만 각자 열심히 먹는 모습이 흐뭇합니다. 엄마는 갑각류 만지는 걸 싫어하니 자기가 해주겠다며 접시에 내민 다리살은 형체도 없이 짓이겨져 있지만 마음이 예뻐 얼른 받아먹었어요. 게딱지에 소복이 담은 볶음밥에 게라면까지 싹 비우고 볼록해진 아이들의 배를 보니 웃음이 나네요. 자식들이 먹는 모습만 보아도 배가 부르다는 옛말이 그냥 생긴 건 아니겠지요. 하지만 동시에 아주 묘한 기분이 듭니다.     



  두 아이 모두 잘 먹지 않았어요. 사실 잘 먹지 않았다는 짧은 문장에 담기에는 부족합니다. 징그럽게 안 먹었다고 해야 속이 후련할 것 같아요. 밥 먹이는 스트레스만 없어도 육아가 어렵지 않을 것 같은 날들이 아주 길었거든요. 버려지는 쌀과 재료들은 헤아릴 수 없었고 육수를 달리하면 먹을까, 재료를 바꾸면 먹을까, 시판 이유식은 먹을까 엄마 속은 타들어 갔습니다. 아이가 오죽 먹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은 공기와 물을 먹고 자라는 아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으로 감사해야 한다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힘듦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다행은 다행이되 몸과 마음은 너덜너덜했습니다. 



  안 먹는 것으로는 큰아이와 둘째 아이가 막상막하였지만, 첫째는 성장이 더딘 편은 아니라 50% 언저리의 키와 몸무게를 유지했어요. 그나마 위안이었습니다. 둘째는 작고 말라서 밥 잘 먹는 약을 수시로 먹였습니다. 남자아이는 작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 키 큰 아빠를 두고 나를 닮아 크지 않는 것 일까 봐 더 신경 쓰였지요. 결혼 전, 두 숟갈만 더 먹자며 아이를 따라다니던 어느 엄마를 보며 안 먹으면 그만이지 뭘 저렇게 까지 하나, 절대 저렇게 아이를 키우지는 않겠다던 내가 여기 있습니다.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여보겠다고, 앙 다문 아이의 입을 어떻게든 벌려 보겠다고 어르고 달래고, 화도 내 보고 별 미친 짓을 다 했어요. 보통 한 끼 식사에 걸리는 시간은 한 시간~한 시간 반, 하루 세끼를 준비하고 먹이고 나면 하루가 저물었습니다. 



  사람들은 쉽게 말을 보탰습니다. 며칠 굶기면 다 먹어요, 억지로 먹이면 아이가 음식에 반감을 가지게 되니 먹기 싫어하면 그냥 두세요. 저도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남의 아이 라면요. 내 아이니까, 내 자식이니까 그게 안 되는 걸 어쩌나요. 아이에게 배고프다는 말을 듣고 눈물이 날 뻔했던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당신, 그냥 못 본 척하세요. 



  영화 같은 극적인 변화의 순간은 오지 않습니다. 뭘 먹였더니, 몇 살이 되니 그때부터 잘 먹더라와 같은 공식은 없습니다. 조금씩 양이 늘고, 키가 자라고 살이 오르더라고요. 이제 큰아이는 살찌는 것을 걱정하며 과자나 빵 같은 밀가루 간식을 자제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보며 묘한 기분에 빠지는 것은 제가 감상적인 탓만은 아니겠지요.    



  저는 시간은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말을 싫어합니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시간 동안 버둥거린 내가 한 것이지요. 문제를 해결했든,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었든, 주체는 시간이 아니라 나 자신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첫사랑과 헤어지고 보낸 숱한 불면의 밤과 흘린 눈물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그 사람을 생각해도 울지 않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이 아이들의 식성이며 식욕, 성장을 해결해 주지는 않아요. 긴 시간 애쓴 엄마의 노력이 변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지요. 홍게 잔치를 벌이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오랜 시간 나를 지치게 한 “밥 먹이기” 문제가 고비를 넘어가는 듯 보입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금세 또 다른 골칫거리가 찾아오겠지만요. 그건 내일의 내가 애쓰고 해결할 테니 또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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