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티브이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내 방에는 작은 티브이 한 대가 있었다. 손으로 돌려서 채널과 음량을 조절해야 하는 정말 오래된 티브이였다. 당시에는 저녁 8시 30분이 되면 KBS에서 일일드라마가 방영되었고, 나에게 허락된 티브이 시청시간은 딱 그 드라마 전까지였다. 드라마가 시작되는 시그널이 나오면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는데, 드라마는 너무 보고 싶고 아빠의 불호령은 겁이 나고, 엉덩이 떼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마지막 순간까지 미적거리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예나 지금이나 티브이는 가장 재미있는 오락거리고 금지된 것은 더 달콤해 보이게 마련이니, 부모님은 티브이를 보시면서 나만 자리를 뜨게 하는 처사는 참으로 잔인한 것이었다. 궁여지책으로 내 방 티브이 화면을 소리 죽여 틀어 놓은 채 부모님 방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서울 뚝배기>를 다 보았으니 꼬마의 드라마 사랑도 참 어지간했다.
<가을동화>는 하필이면 고3 때였다. 송혜교를 톱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했던 가을동화가 방영되던 그 가을, 나는 수능을 코앞에 두고 있었는데 드라마가 너무 보고 싶어 공부에 집중이 안 될 정도였다. 야간 자율학습 후 12시가 넘어 집에 돌아와, 예약 녹화 해 둔 드라마를 보고 잠들면 2시께가 되었지만 수능도 입시도 고3의 드라마 사랑을 꺾을 수는 없었다.
티브이는 정말이지 너무 재미있다. 채널이 고작 4-5개에 불과하던 시절에도 그랬는데, 개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채널을 볼 수 있는 지금은 말할 것도 없다. 채널을 돌리다 보면 내 관심을 끌만한 프로그램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렇게 하루 서너 시간 이상을 티브이 앞에서 보내다 소파에서 잠드는 것은 나의 일상이었고, 여전히 누군가의 일상이다.
그런 내가 아이를 낳으면서 티브이를 없앴다. 그렇게 좋아하던 티브이를 어떻게 한 순간에 딱 없앨 결심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소파에 누워 하루 종일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는 내 모습이 마음에 차지 않았을 것이고, 아이에게 같은 습관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야구광인 남편은 야구 중계 시청을 이유로 강력히 반대했지만 끝내 내 뜻을 관철시켰고, 그렇게 아이들은 티브이 없는 집에서 10여 년을 자랐다.
집에 티브이가 없다고 해서 아이들이 티브이를 전혀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는 <뽀로로>와 <타요>를, 지금은 <삼시세끼>며 넷플릭스 어린이 드라마를 컴퓨터로 볼뿐이다. 정해진 요일에 약속된 분량을 보고 나면 더 이상 조르고 말 것이 없으니 티브이 시청 문제로 싸워야 할 일이 없다. 아이들과 벌이는 일상의 끝없는 다툼과 밀당에 티브이 하나가 빠진 것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러던 중 귀국하는 남편이 자가 격리를 하게 되면서 아이들과 나는 부모님 댁으로 잠시 거처를 옮겨야 했다. 부모님 댁은 보는 사람이 없어도 티브이를 켜 둘 때가 많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눈이 티브이에 머무르게 된다.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신서유기> 재방송을 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예능 프로그램의 전개 방식과 유머를 전부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티브이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이어지는 수십 개의 광고도 넋이 나간 듯이 보았다. 물론 평소에 티브이를 보지 않고 지낸 탓에 더 열심히 영상을 소비하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집에 티브이가 있다고 해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기우가 아니라 경험이다. 과거의 내가 그랬다. 집에서 티브이를 퇴출시킨 결정은 옳은 것이었다.
그러나 티브이를 없앴다고 해서 나의 드라마 사랑까지 끝날 수는 없다. 여전히 각종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드라마며 인기 프로그램들을 섭렵하고 있다. 티브이와 스트리밍 서비스의 결정적 차이는 자동성에 있다. 티브이는 내가 보던 드라마가 끝나면 광고가 이어지고 다음 예능 프로그램이 저절로 시작된다. 채널을 바꿀 수 있을지언정 프로그램을 멈출 수 없으니 딱히 재미있지 않더라도 그냥 보고 있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채널을 돌리면 눈물 콧물을 흘리며 보았던 최애 드라마의 재방송이 또 눈길을 사로잡으니 티브이를 끌 때까지 내 시선과 내 시간은 나의 것이 아니다. 반면 스트리밍 서비스는 검색과 클릭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방송을 볼 수 있고, 언제든 중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티브이와 다르다. 이 사소한 동작의 유무는 꽤 큰 시청시간과 만족감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전자제품 가게에서 곡면 티브이를 보면, 그 어마어마한 사이즈와 생생한 색감에 마음을 빼앗긴다. 저런 화면으로 스케일이 큰 영상을 보면 얼마나 황홀할까. 그렇지만 당분간 티브이를 사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이틀 만에 16부작 드라마를 완주하고 눈이 벌겋게 충혈되더라도 그 시간은 내 선택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곡면 티브이 앞에서 채널을 돌리다 잠든 나는, 다음 날이면 분명 생각할 것이다. 에이, 잠이나 더 잘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