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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봄 Dec 31. 2020

여행을 좋아하지 않지만

  지난 1년간 해외여행은 금지되었다. 물론 법적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었지만 국가별 자가 격리기간과 코로나 감염 가능성을 감내하면서까지 여행 가려는 사람은 흔치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여행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주기적으로 해외여행을 가거나, 여행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던 사람들이 갑갑함을 호소하다 못해 비행기를 타고 우리나라 상공을 한 바퀴 돌아오는 상품이 판매되는 웃지 못할 일들이 펼쳐지고 있다.   


   

  나에게 여행이란 긴 연휴를 보내기 위한 한 가지 옵션 중 하나였을 뿐이다. 결혼 생활과 육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도 나는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국내며 해외 여기저기를 다니긴 했지만 꽤 긴 휴가가 주어지는 일을 했음에도 늘 떠나기를 주저하면서 살았다. 한 번씩 여행을 갈 때도 남들처럼 나도 어디든 다녀와야 사는 것처럼 사는 거라는 실체 없는 압박에 꾸역꾸역 짐을 쌌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 지금에 와 결론짓건대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미리 밝혀두자면 나는 예민하지 않다. 좁은 공간을 개의치 않고, 결벽증이나 음식 알레르기도 없다. 김치가 없더라도 꽤 장기간 견딜 수 있고(나이가 들면서 그 기간이 짧아지고 있기는 하다), 수면 조건에도 매우 관대하여 주위 소음과 명암에 신경 쓰지 않고 잘 잔다. 또 하루 이틀쯤은 적게 자고도 무리 없이 일정을 소화할 수 있는 체력도 있다. 적고 보니 나는 여행에 최적화된 특성을 여럿 지닌 사람이다.   


   

  그럼에도 자주 떠나지 않으며 떠남을 주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나는 일상의 루틴이 깨어지는 것을 견뎌야 하는 시간이 힘들다. 정해진 시간을 꼭 지켜 생활하는 칸트 형 인간은 아니지만 적당한 시간에 자고 일어나며,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로 움직이는 게 좋다. 가능하면 건강식으로 모든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여 식사하며, 가족들 각각의 공간과 자유가 적절히 유지되는 일상에 편안함을 느낀다. 여행은 그런 일상을 깨뜨림으로 시작되는 것이니, 나는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것이 늘 어려웠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일상생활과는 다른 차원의 참을성이 요구된다. 기차와 버스를 기다리고 이동하는 시간, 지루해하는 아이들에게 핸드폰과 아이패드를 내어주지 않으려면 인내 3종 세트가 필요했다. 눈높이에 맞는 대화를 이어가고, 각종 보드게임의 상대가 되어주고, 끊임없이 달콤한 군것질거리를 허락해야 하는 일은 생각보다 짜증스러울 때가 많았다. 창밖을 보며 풍경을 감상하거나 노천카페에서 커피나 맥주 한 잔을 즐기는 성인들의 한가로운 여행은 언감생심이었다. 밖에만 나오면 꼭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자연의 부름은 또 어쩔 것인가! 집으로 돌아온 후, 아이들이 일상을 다시 찾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노력까지 생각하면 여행의 피로는 배가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단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주 짐을 싸서 떠났고, 다시 떠날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에게 넓은 세상과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다. 두려움에 거절했던 과거의 기회들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다른 인종,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다양한 사람들. 사는 모습은 제각각이지만, 또 사람 사는 일이 거기서 거기임을 아이들의 눈으로 확인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세상이 조금은 만만하게 느껴지기를, 마주한 기회 앞에서 나처럼 겁내지 않기를, 과감히 도전하는 용기를 지니기를 바란다. 나와 함께 하는 여행이 아이들에게 그런 발판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무너지는 일상쯤은 견뎌보려 한다. 부디 새해에는 모두가 평범한 일상을 되찾고, 어디든 훌쩍 떠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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