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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봄 Dec 28. 2020

가슴에 남은 말

  엄마는 정 많고 따뜻한 분입니다. 그런 엄마가 평생 제게 했던 수많은 말 중, 마음에 꽉 박힌  한마디가 있습니다.      



  그때 저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어요. 종종 이유 없이 머리가 아팠고, 그맘때 아이들이 다 그렇듯 두통이 있을 때마다 엄마에게 달려가 얘기했겠지요. 이전에 엄마가 뭐라고 반응했었는지 기억은 없고 그 날 엄마의 대답만 남았습니다. 또 머리가 아프다는 저에게 "너는 엄마 보면 아프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니?"라는 엄마의 말은 차갑게 쏘아붙인다기보다 기력 없는 탄식에 가까웠습니다. 대학생이 된 후, 엄마와 다른 말끝에 그 날 이야기를 하게 되었을 때, 엄마는 전혀 기억을 못 하셨어요. 그리고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엄마를 속상하게 만들려고 꺼낸 이야기가 아니었는데 우는 엄마를 보며 당황하고 미안했던 순간이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과검진에서 알게 된 두통의 원인은 난시였습니다. 의사는 아이가 두통이 심했을 텐데 난시가 있어 그런 거니 안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어요. 일전에 엄마에게 들었던 말과 안과 의사의 진단이 한 쌍으로 편집된 채, 이제는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어버렸어요.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어린 저에게는 꽤나 상처가 되었던지, 저 말을 떠올리면 이상하게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엄마가 나를 낳았던 서른에, 저도 첫 아이를 낳았습니다. 딸아이가 지금 3학년이니 그때 엄마가 딱 지금 제 나이와 같았겠네요. 아이 둘을 키우는 것만으로 허덕대며 온갖 모진 말을 쏟아내는 제가 여기 있습니다. 워킹맘이라는 말은 있지도 않던 시절, 일도 해야 하고 아이들도 키워야 하는 엄마의 하루가 어땠을지 짐작하고도 남아요. 진 빠진 하루 끝에 아프다고 징징대는 아이에게 무심결에 내뱉은 한마디였을 뿐입니다. 엄마에게 사랑해, 예쁜 내 새끼, 잘했어 같은 칭찬과 사랑이 담긴 말을 얼마나 들었는지 헤아릴 수도 없는데, 딱 한 번 들었을 뿐인 그 말은 엄마를 기억하는 한 내 머릿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모질고 아픈 말은 질긴 생명력으로 오래 살아남으니까요. 무서운 일입니다.      



  그 날을 기억하지만 지금은 전혀 아프지 않아요. 엄마의 말이 상처가 되고 흉터로 남았지만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것은 엄마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상처를 덮고도 남을 만큼 넘치도록 사랑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딸은 나를 꼭 닮았어요. 내가 뱉은 말을 담아두었다 더 크게 돌려주고, 화난 내가 더 독한 말을 토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는 합니다. 이대로 시간이 흘러 아이의 자아가 더 크고, 감정 조절이 원활하지 않은 사춘기가 되면 우리 두 사람의 충돌은 걷잡을 수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그전에 고리를 끊어야 할 텐데, 그것은 엄마인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인 듯합니다. 이미 아이가 받았을 상처를 없앨 수는 없지만 더 많이 사랑함으로써 아물게 해야 하는 일도 역시 제 일입니다. 기억하더라도 아프지는 않을 수 있도록, 우리 엄마가 그랬듯이요.      



  엄마로 사는 일은 참 어렵고 힘들어요. 자신을 감당하기도 부족한 한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을 혼자 서도록 책임져야 하는 길고도 무거운 일입니다. 내 품을 떠난 후에도 어쩌면 눈 감는 순간까지 아이의 모든 발걸음을 마음으로 동행하게 될 테지요. 가끔은 도망치고 싶을 만큼 두렵고, 눈물 납니다. 어쩌자고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단순히 몸이 힘들고 화가 나서가 아니라 한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엄마라는 이름이 유난히 무거운 날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비롯한 모든 엄마들은 그 엄청난 일을 결국 해낼 것입니다. 아이가 웃으면 또 함께 웃고 힘을 얻어 다시, 엄마라는 이름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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