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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봄 Mar 06. 2021

마흔, 오늘을 살다

 “해야만 하는 일은 닥치면 다 하게 된다”는 나의 20대를 채운 삶의 방식이었다. 대단한 철학이나 고집이 있었을 리 없다. 싫은 일을 해야만 할 때,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까지 미루기 위한 자기 최면에 지나지 않았다. 내일의 내가 보여줄 초인적인 힘을 믿었고, 대개의 경우 낙제점은 면할 결과를 내놓았다. 문제는 범인(凡人)의 초인적인 능력은 데드라인 직전에만 발휘된다는 것이다. 시험 전 날, 리포트 제출 3시간 전처럼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코너에 몰리면 엄청난 속독과 단기 기억이 가능했고, 정말이지 최소한의 에너지만 쏟아 채 3점을 채우지 못한 학점으로 졸업하는데 성공(?)했다.   


  

 원하는 학교와 전공이 아니라는 이유가 불성실한 생활의 변명이 될 수는 없겠지만 스무 살 무렵의 내게 대학은 고3 생활보다 더한 감옥이었다. 이만큼 살고 나니 세상 끝까지 가고도 남을 나이의 패기 없는 행동이 바보같이 느껴지지만, 12년간의 학창 시절, 한 번의 일탈 없이 대열과 함께였던 당시의 나에게 휴학이나 재수는 선택 가능한 옵션이 아니었다. 부모와 교사가 시키는 대로 살아온 아이는 길섶으로 내려 서거나 돌아갈 용기가 없었다. 그렇지만 떨어지지 않는 발을 질질 끌고 걷는 걸음도 쉽지는 않았다. 학기마다 휴학 신청서를 품고 다녔지만 결국 4년 후 동기들과 함께 졸업했다. 그 시절, 모두가 같은 종착점을 향해 나아가는 동안 나는 늘 외딴섬이었다.          


 왜 갑작스러운 각성이 마흔인지는 모르겠다. 마흔이라는 숫자가 주는 조바심일 수도 있고, 가뜩이나 저질인 체력이 바닥을 치면서 느낀 불안일 수도 있다. 그도 아니면 이제 반환점을 지나 되돌아오는 길 위에 선 자의 다행스러운 깨달음일지도. 스무 살의 내가 의지했던 내일의 나는 어제만큼 건강하고, 총명하고, 재발랐다. 그러니 하루쯤 잠을 못 자고, 한 두 끼를 건너뛰어도, 어제 미뤄둔 일에 오늘 해야 할 몫을 얹어 두 배로 달려도 끄떡없었다. 젊었으니까.  


    

 밤을 못 샌지 꽤 됐다. 새벽을 맞으며 함께 놀아줄 한가한 동무도 없거니와 어두워야 신날 유흥거리도 이제 구미가 당기지 않지만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같지 않다. 세상이 무너지는 심각한 이야기가 오가도, 몇 년 만에 만난 절친이 눈앞에 있어도 서너 시면 누워야 한다. 자지 않으면 내일을 살아내기가 버거우니 두어 시간이라도 눈을 붙여야 한다. 더 이상은 내일의 나에게 숙제를 미룰 수 없다. 내일의 나는 오늘보다 하루만큼 더 쇠약할 것이고, 더 몽매하고 둔할 것이다. 늙어가고 있다.      



 꽤 쓸만하던 내일의 나는 이제 없다. 미리 당겨서는 못할지언정 미루지는 않아야 한다. 내일의 나를 위해 운동, 일, 도전, 고민까지. 그게 무엇이든 지금 당장 해야 한다.   


    

 마흔에, 오늘을 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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