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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피스 Apr 01. 2020

생존전략

성장기

더 이상 엄마와 같이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나는 집 근처인 돌마리중학교로 배정받았다. 학교가 집 앞 언덕을 넘어 돌무덤 군을 지나면 있었기에 가까워서 좋았다. 좋은 것은 그것뿐 나는 다시 방과 후 혼자 있는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입학식 날 운동장에는 학생들이 학급별로 줄을 서 있었다. 나도 배정받은 1학년 9반을 찾았다. 1학년 전체는 15개 반이었으니 가운데쯤에 우리 반이 있었다. 우리 반 푯말을 찾아 아이들 뒤에 줄을 섰는데, 뭔가 이상했다. 다른 반에 섞여 있는 여자애들이 우리 반에는 없었다. 우리 반만 남자반이었다.


입학식이 끝나고 교실로 찾아 들어갔다. 반에 앉아서 보니 반 아이들이 무리 지어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대부분 2개 초등학교를 같이 다닌 애들이었기에 서로들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졸업한 왕십리 출신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냥 자리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도시락을 열었다. 엄마는 밥과 계란 프라이, 콩나물을 싸주셨다. 밥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었다. 그 순간 다른 녀석이 내 콩나물무침에 포크를 찍었다. 포크를 들어 올리는데 반찬통에 있는 콩나물 전부가 딸려 올라갔다. 


나는 한순간에 비어버린 반찬통을 내려다봤다. 그 녀석은 이미 다른 아이 도시락을 뺏어 먹기 위해 가버린 후였다. 나는 다시 밥을 먹었다. 자꾸 눈물이 나왔다.


남자만 있는 우리 반은 다른 반과 달리 아이들이 거칠고 불만이 많았다. 담임선생님은 기술 과목 담당이었는데, 40대에 눈썹이 짙고 평소에도 관자놀이에 힘줄이 튀어나와 있었다. 오른손엔 항상 노란색 나무 몽둥이를 들고 다니면서 아이들이 시끄러우면 몽둥이를 휘둘렀다.


어느 날 조회시간이었다. 선생님이 들어오시기 전 아이들은 서로 지우개를 집어던지고, 책상 위로 뛰어다녔다. 마침 선생님이 들어와 난장판을 만든 학생 10명을 교탁 앞으로 나오게 했다. 


나는 복도 쪽 책상에 혼자 앉아 있었기에 걸리지 않았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냈다. 한 명씩 엎드리게 한 후 몽둥이로 엉덩이를 때렸다. 그런 후 선생님은 용무가 있다며 교무실로 가셨다.


그때였다. 혼난 애들 중 키가 작은 이진호가 나에게 달려들었다. 자기가 혼날 때 내가 웃은 게 기분 나쁘다는 이유였다. 나는 웃지 않았다고 손을 내 저었다. 그는 내 말을 듣지 않고, 나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나는 주먹을 피하려 고개를 숙였지만, 진호의 주먹이 내 오른쪽 눈을 강타했다. 한쪽 눈에서 별이 튀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반격을 못하고 그대로 눈을 움켜잡고 바닥에 웅크렸다. 그는 그런 나를 계속 발길질했다. 그제야 아이들이 나와 그 아이 사이를 떨어뜨려 더 맞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바뀐 상황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왕십리의 친구들은 나를 전부 잘 알았다. 나는 선생님 아들로 인기스타나 다름없었다. 한순간에 나는 초등학교 때의 그 지위를 잃어버렸다. 나는 다시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길을 생각해봤다. 싸움이나 운동을 못 하니 길은 공부밖에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 중간고사에서 1등을 해야 했다. 


반에서 다른 아이들의 눈치를 보니 이현수라는 아이가 가장 공부를 잘하는 것 같았다. 현수는 하얀 얼굴에 뿔테 안경을 쓰고 머리 가르마를 단정하게 하는 친구였다. 말도 또박또박 잘했고, 성격도 적극적이라 친구도 많았다. 나는 내 타깃을 현수로 정했다. 


나는 시험 기간에 꽤 열심히 공부했다. 과학이나 사회 같은 암기과목은 책을 통째로 외우려 했다. 시험 직전에는 책 없이 혼자 책 내용을 줄줄 말할 정도가 되었다. 그만큼 나는 절실했다.


중간고사를 볼 때도 초등학교 때와는 달리 정말 최선을 다했다. 시험이 끝나고 나서 다른 아이들은 답을 같이 맞혀봤다. 현수는 그들 사이에서 역시 1등이었고, 전 과목에서 단 하나만 틀렸다고 했다. 내가 현수를 이길 방법은 모든 과목에서 다 맞는 수밖에 없었다. 


나도 겨우 예상답안을 구해서 확인해봤는데, 나 역시 전 과목에서 하나 틀린 것 같았다. 근데 어찌 된 일인지 다른 아이들도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수의 친구들은 그럴 리가 없다며 믿지 않았다. 사실 나도 확신이 없었다. 초등학교 때도 항상 필남이에게 져 2등만 했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선생님이 시험 결과를 발표했다. 중간고사 성적표를 등수 순서대로 나눠준다고 하셨다. 먼저 선생님이 1등의 이름을 불렀다. 그런데 그게 나였다. 나는 전 과목에서 백 점을 맞았다. 알고 보니 내가 한 개 틀렸다고 계산했던 문제는 문제에 이상이 있어 복수정답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현수는 예상대로 2등이었다.


아이들은 내가 올백을 맞은 것은 문제에 이상이 있기 때문이라며 내가 현수를 이겼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존재감이 없던 내가 다른 아이들과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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