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피스 Apr 03. 2020

유언장

미리 하는 인생 정리

내 인생은 두려움과의 싸움이었다. 이제 죽음을 앞두고 생각하니, 내 인생의 의미는 무서움을 극복하고 살아낸 것이었다. 유언장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내가 제대로 살아온 것인지, 또 남겨진 사람들이 나를 너무 빨리 잊지 않을지 등등 온갖 것이 두렵다.


나는 원래 무서움이 많았다. 어릴 때부터 집에 혼자 있는 게 무서웠고, 고등학생 때는 지하철 타는 방법을 몰라 두려웠으며, 대학생 때는 햄버거 가게 점원에게 말 거는 게 무서워 덜덜 떨면서 주문을 했다. 음식점에서 밥을 먹다가 점원이 음식 맛이 어떠냐고 물으면 긴장해서 말을 더듬었다.


비행기를 타는 것도 무서웠다. 비행기가 이륙을 시작하면 엄청난 소리가 나고, 내 몸은 누군가 뒤로 당긴 것처럼 젖혀진다. 그러다 내가 살짝 공중에 뜬 것 같아 창문을 보면, 나와 평행하던 활주로가 순식간에 기울어 보이다 사라진다. 


창공에서 비행기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어느새 내 손은 땀으로 축축해진다. 한 번은 서울에서 제주도로 가면서 다른 승객들은 평온하게 눈을 감고 있는데, 나는 내가 창공에 떠 있다는 생각에 두려워 비행 내내 이빨을 덜덜 떨면서 갔다.  


10여 년 전에 아내와 둘이 경비행기를 탈 기회가 있었는데, 기체가 워낙 작아 승객석에서 조종석이 보였다. 비가 와서 그런지 이륙하면서 비행기가 엄청나게 흔들렸다. 그런데 이륙 후 어느 정도 비행기가 안정되자 상공에서 조종사가 조종간을 놓고 신문을 보며 비행하고 있었다. 조종사는 평온해 보였는데 뒤에 앉은 나는 그야말로 기절하는 줄 알았다. 그때 나는 비행 내내 무서움을 잊기 위해 큰소리로 아내와 노래를 불렀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두려웠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다른 사람을 믿지 말라고 했다. 내가 친구가 없다고 고민하면 부모님은 나에게 ‘네가 잘되면 어차피 나중에 다 친구 하고 싶다고 할 테니 공부나 하라.’고 말했다. 여기에 나의 소심한 성격이 더해져서 그런지 나는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려웠다. 


고등학교 때 새 학기가 시작되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무심코 내가 짝에게 펜을 빌려달라고 했더니, 그 애는 ‘얘들아, 얘가 나한테 처음으로 말 걸었어’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한 달이 넘도록 내가 짝에게 말을 한마디도 안 한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또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나한테 질문을 했는데, 나는 대답을 하면서 정면의 벽만 똑바로 보고 말을 했다. 당시 나는 사람의 눈을 마주치는 것도 무서웠고, 말을 할 때 다른 사람 눈을 봐야 한다는 개념도 없었다. 선생님은 황당했던지 나에게 ‘야, 너는 어디 보고 말을 하는 거냐’라고 해서 그때 서야 나는 내가 좀 이상한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나는 여자 친구를 사귀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도 컸다. 남자도 친구로 사귀지를 못하는데 어떻게 여자를 사귀고 사랑을 하겠는가. 난 고등학교 때 머리를 박박 깎고 남자학교를 다녔기에 여자와 말해볼 기회가 없었다. 그리고 외모나 성격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자신감도 부족했다. 그런 내가 지금은 결혼도 했다니 놀라운 일일 뿐이다.


난 언제나 모든 것이 두려웠다. 검사 일을 할 때는 상사와 말하는 것조차 무서웠다. 상사는 나를 찾을 때 주로 사무실에 전화를 했는데, 나중에는 사무실에 전화벨만 울려도 무서워 가슴이 뛰었다. 상사에게 보고할 일이 있으면 급한 일 아니고는 쪽지나 메신저로 했고, 회식 때는 일부러 상사로부터 제일 먼 자리에 앉았다. 회식할 때 상사가 항상 가운데에 앉는데, 상사와 같은 줄 맨 가장자리에 앉으면 회식 중 상사와 눈 마주치거나 말할 일이 없으니 항상 그쪽에 앉으려 했다.


변호사 일을 할 때는 법정에 가는 게 너무 무서웠다. 나는 다른 사람이 화를 내면 나한테 그러는 게 아니라도, 몸이 움츠러들고 스트레스로 배가 아팠다. 법정에서 방청석에 앉아 내 차례를 기다리면, 다른 사건으로 판사와 당사자가 말다툼을 할 때가 많았다. 다른 사람들이 서로 고성으로 싸우고 있으면 난 이미 내 차례가 되기 전에 진이 다 빠졌다. 


그래서 나는 법정에 갈 때 법원 근처에 가면 벌써 손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하고. 법원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내 심장소리가 느껴질 정도로 긴장을 했다. 법원이 무서운 변호사라니 말이 되지 않지만, 그런데도 법무법인을 몇 년간 운영했으니 다행이었다.   


돌아보니 내 인생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이었다. 이제 죽음이라는 거대한 산과 마지막 산과 마주하고 있다. 죽는 순간에 어떤 것이 느껴지는지, 그게 아픈지 슬픈지 알 수 없고, 죽으면 그것이 끝인지 그 뒤에 뭐가 더 있는 것인지 모르니 더더욱 두렵다. 원래 결과를 모르고 기다리는 시간이, 막상 결과가 나왔을 때보다 더 두렵지 않은가. 더군다나, 다른 건 도망이라도 갈 수 있는데 죽음은 도저히 피할 수도 없다.     


그래도 어떻게 되지 않을까. 비행기를 무서워하던 내가 멕시코, 자메이카까지 여행을 다녀봤고,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려웠던 내가 결혼을 했다. 남을 응원하는 변호사 생활도 하면서 살아온 것처럼. 지금 생에서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끝없이 연습해왔다.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그때는 또 다른 걸 경험하며 살고 싶다. 다음 생에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작가의 이전글 겨울나그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