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아파트로 이사 온 건 4년 전 봄이다. 나는 전에 분당에 살았다. 집 옆에 개천이 있고, 개천 옆에 산책로가 있었다. 산책로 옆에는 갈대숲도 있고, 잔디밭도 있어 내가 도심 속에 산다는 생각이 별로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분당에서 서울 중심부로 매일 출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직장 근처 서초동으로 이사를 왔다. 이 동네는 수시로 다녔기에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살기에는 삭막해 보였다. 너무 콘크리트만 있기 때문
이다.
새 아파트는 작은 부지에 30층 가까운 건물들이 세 개 들어서 있다. 그중 내가 살 집은 3동이었다. 3동은 남향인데, 남쪽을 보면 앞에 거대한 2동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그나마 2동 오른쪽으로 하늘을 볼 수 있는데, 그마저도 회색의 법원 건물이 버티고 서 있다.
왼쪽에는 다른 아파트 단지들이 포진해 있다. 이들은 다른 건물보다는 높지 않다. 그래도, 하늘이 겹겹이 건물들로 막혀 있어 주위의 회색빛이 더 강화된다.
더군다나 내가 이사 온 아파트는 좀 유명한 자리에 세워져 있다. 바로 90년대 백화점 건물이 한 번에 무너진 자리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아직 학생이었고, 잠실 쪽에 살고 있어 이쪽 지역은 와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당시의 참혹한 현장을 영상과 사진으로 충분히 봤었다. 사고로부터 5년이 지난 후 이 근처에 다닐 때는 부지에 아무것도 없고 높은 담장만 쳐져 있었다.
여러 가지로 이곳에 사는 게 두려웠지만, 이미 이사하기로 정해졌기에 취소하지 않았다. 또 서울 도심은 어디나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더군다나 나는 자연과 별로 친숙하지 않기에 크게 상관이 없었다.
사실 나는 나무나 꽃에 관심이 없다. 길에 다니면서 보는 식물들의 종류를 전혀 모른다. 개나리, 진달래, 장미같이 널리 알려진 꽃들 외에는 꽃 종류도 잘 모른다. 꽃이 피지 않는 나무는 종류를 알기 더 어렵다. 단풍나무나 은행나무같이 가을이면 색이 변하고, 잎사귀가 특이한 나무 정도나 이름을 알 뿐이다.
내가 도시 사람이라 그럴 수도 있다. 나는 본적지가 서울 황학동이고, 고향은 잠실이라 여기고 있으니, 서울 사람이다. 물론, 내가 잠실 근처에 살 때 그곳은 시골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식물에 대해 알 법도 한데 나는 도통 모른다.
내가 주위에 관심이 없어 식물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나는 나밖에 모른다. 다른 사람에게도 관심을 주지 않는데, 동물도 아닌 식물까지 줄 관심이 있을까 싶다.
그렇게 이곳에 이사 와서 정신없이 산 지 5년이 다 되어간다. 살다 보니 생각보다 집에 있으면 나무를 많이 본다.
그 이유는 우리 집이 3층이기 때문이다. 나무와 집의 높이가 비슷하다. 마루에는 넓은 창이 남향으로 있는데, 창밖 바로 앞에 잎이 무성한 나무가 하나 있다.
나는 마루에 자주 앉아 있다. 우리 집은 텔레비전과 책상이 마루에 있다. 내가 글을 쓰는 주방도 바로 마루에 붙어 있다.
나는 집에 있을 때 눈 둘 곳이 없으면 창밖을 바라본다. 그러면 어느새 그 나무에 시선을 빼앗긴다. 바람이 불면 나무도 같이 춤을 추듯 흔들린다. 가을에는 노릇노릇 잎의 색깔이 변해 계절을 알려준다. 추운 겨울에는 앙상한 나뭇가지에 눈이 쌓인다.
나는 그렇게 매일 그 나무를 보면서도 그 정체를 모르고 있었다. 내가 매일 보는 건 별 특징이 없는, 그냥 ‘나무’였기 때문이다. 가지들이 많이 있고, 이파리들이 적당히 달려있다. 가을이라고 열매가 열리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 나무에 관심이 간 건 이번 봄이었다.
아직 추웠는데, 나무에 연둣빛으로 새순이 돋아있어 신기했던 게 얼마 전이었다. 어느 날 보니 나무가 화사한 빛으로 옷을 갈아입은 게 아닌가. 자세히 볼 것도 없이 벚꽃이었다. 예전에 부산에 살 때 많은 인파를 제치고 진해에서 봤었고, 신혼 때 잠실 5단지에 살면서도 단지 내 가로수 가득 봤었던 꽃이었다.
지난 4번의 봄 동안 나무는 항상 화사한 벚꽃을 자랑했을 텐데 나는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또 내가 알아봤을 때는 이미 절정기가 지난 듯 초록 잎들이 꽃과 많이 섞여 있었다. 나의 주위에 대한 무관심을 또다시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올해도 또 겨울이 오고 저 잎들은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 겨울이 언제 끝나나 하고 괴로울 때, 연둣빛 새순이 마술같이 돋아날 것이다. 내년 봄에는 저 나무가 화려하게 옷을 갈아입을 때 기필코 알아보리라. 나는 그렇게 글 쓰는 사람답게 주위에 관심 갖는 사람으로 변하겠다고 소용없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