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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피스 Apr 07. 2020

돌마리

5월의 화창한 어느 날 우리 가족은 공릉동을 떠났다. 나는 이삿짐을 실은 트럭 운전석 옆자리에 탔다. 높은 트럭에 앉으니 정든 동네 골목이 다 보였다. 엄마는 멀리 간다며 나에게 안전벨트를 채웠다.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차는 돌마리에 도착했다. 


그곳은 잠실에서 가까운데 아파트는커녕 집도 몇 채 없었다. 동네는 허허벌판에 우리 집과 옆집 이렇게 딱 두 집만 서 있었다. 바람이 부는 땅은 나무도 없어 황량했다. 


집 앞을 나가면 왼쪽에 언덕이 있었다. 언덕은 꽤 높아 그 위 나무에 묶어 놓은 줄을 타고 올라가야 했다. 위쪽 또한 온통 버려진 땅이었다. 군데군데 밭에 채소를 키우는 흔적이 있었다. 채소밭을 헤치고 지나가면 돌무더기가 있었다. 옛날 백제 때 왕의 무덤이라고 했다. 내 눈엔 그저 돌 뿐이었다.


대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골목 끝에 가게가 하나 있었다. 그 가게를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도로가 나왔다. 그런데, 돌마리에는 버스 정류장이 없었다. 버스를 타려면 옆 동네인 삼전동으로 가야 했다. 


삼전동으로 가면 주택가가 있고, 그 안에 놀이터가 있었다. 미끄럼틀을 구경하는데 구석에 오래된 비석이 햇볕을 밭고 서 있었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비석은 키도 나보다 훨씬 컸다. 표지판을 보니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항복하고 만든 삼전도비였다. 


돌마리에는 버스가 없어 지하철을 타려면 30분을 걸어야 했다. 집에서 공터와 밭을 지나면 드문드문 주택들이 있고, 어느새 호수가 나왔다. 석촌호수라 불렀는데 호수 주변에 나무만 얼마 있고, 물에 못 들어가게 듬성듬성 울타리만 있었다. 호수 주위를 뱅 둘러 가면 아파트촌 근처에 잠실역이 있었다. 


돌마리에 여름이 오면 방학 숙제인 곤충채집을 할 수 있었다. 집에서 잠실역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면 뚝방길이 나왔다. 그 너머에 옥수수밭과 야트막한 언덕이 있었다. 


그곳 풀숲에는 초록색 메뚜기를 비롯해 뒷다리를 잡으면 머리로 방아를 찧는 방아깨비가 있었다. 앞다리가 낫을 닮은 사마귀도 가끔 보였다. 거기에 하늘에 날고 있는 잠자리까지 잡으면 방학 숙제는 걱정 없었다. 하얀 스티로폼은 온갖 종류의 녀석들로 가득해졌다. 


겨울은 추워 석촌호수가 꽁꽁 얼었다. 얼음을 깨고 낚시하는 아저씨도 있고, 호수를 걸어 가로지르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도 동생과 같이 호수 위로 올라가 봤다. 눈이 쌓인 얼음은 발을 굴러도 꿈적도 안 했다. 


우리 집 옆 언덕 위는 돌무덤만 있을 뿐 나무도 없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 그래서 연날리기를 하기 그만이었다. 나도 할아버지가 만든 연을 하늘에 날리며 아이들과 연줄 끊어먹기 놀이를 했다. 


엄마는 아파트 값이 오르자 같은 값이면 압구정동에 아파트를 살 걸 그랬다며 후회했지만, 나는 돌마리가 좋았다. 해가 떨어지고 골목에 들어서면 집집마다 저녁밥 냄새가 났다. 우리 집 마당에는 큰 대추나무가 있어 가을마다 막대기로 대추를 땄다. 


겨울에는 마당에 항아리를 묻고 김장김치를 보관했다. 한겨울에 눈을 걷어내고 꺼낸 동치미의 맛은 잊을 수 없다. 방에 둔 석유곤로에 물을 끓여 엄마와 같이 전지분유를 타서 먹으면 겨울이 춥지 않았다.


점점 나는 전에 살던 공릉동을 잊어갔다. 내 본적은 중구 황학동인데, 그곳은 아예 모른다. 나는 돌마리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내 기억의 어린 시절은 모두 그곳에 있다. 그래서 나는 돌마리를 내 고향으로 여긴다.


그러던 어느 날 석촌호수에 큰 백화점이 들어선다고 했다. 어른들이 동네가 개발된다며 들썩들썩했다. 그러면서 돌마리에도 여기저기 공사가 시작되었다. 


언덕 아래에 컨테이너 박스가 생기더니 아저씨들이 연일 포클레인으로 언덕을 깎았다. 그렇게 언덕이 사라지고 집들이 들어섰다. 언덕에 있던 복돌이의 묘도 흙과 함께 공사 트럭에 쓸려나갔다. 


우리 집 위층에는 작곡가가 이사를 왔는데, 그리로 얼굴이 까만 무명 가수가 들락거렸다. 또 우리 집 앞에는 작은 건물이 세워졌는데, 1층에서 가수 이수만이 작은 기획사를 차렸다. 


뚝방길 너머의 언덕은 사라지고 가락시장이 생겼다. 돌무덤도 왕릉처럼 바뀌고 주위가 공원처럼 꾸며지더니 백제고분 유적지가 되었다. 석촌호수에는 롯데월드가 생기고, 호수 위로는 놀이기구가 돌아갔다. 버려진 삼전도비도 석촌호수 근처로 자리를 옮기고 제법 모양을 갖췄다. 


우리 집도 단독주택을 허물고 다세대주택을 새로 올렸다. 그와 함께 대추나무도 베어 없애고, 장독을 심던 마당도 시멘트를 깔아 주차장을 만들었다. 이수만이 차린 기획사는 우리 동네를 떠나 거대 기획사가 되었다. 우리 집을 드나들던 얼굴 까만 무명 가수는 ‘잃어버린 30년’으로 유명해졌다.


이제 떠난 지 20년이 되어 다시 찾은 석촌동은 한 번 더 달라져 있었다. 내가 항상 머리를 자르던 ‘정옥주 헤어라인’ 미용실, 고등학생 때 처음으로 비디오테이프를 빌렸던 가게, 대학생 때 동생과 제육볶음을 시켜 먹던 분식집까지 모두 없어졌다. 


못 보던 주택과 건물들로 공터는 찾아볼 수 없다. 버스도 없던 집 앞은 지하철역이 생겨 땅 밑도 채워지고, 심지어 하늘에는 거대한 제2 롯데월드타워가 자리해 있다. 


그런데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니 이건 내가 알던 돌마리가 아니다. 마치 옛 친구가 성형수술을 한 것 같다. 뭔가 비슷하긴 한데 영 아닌 느낌. 변하기 전의 옛 돌마리는 어느새 내 기억에서도 점점 사라진다. 나도 잊혀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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