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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린일기 JooTANDARD Mar 10. 2024

엄마가 결혼앨범을 모조리 버렸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그녀의 사인

집에 도착하니 엄마아빠의 결혼식사진이 담긴 빨간벨벳 표지의 앨범이 어지럽게 버려져있다. 느낌이 이상했지만, 나는 그저 짜증스럽게 저거 왜버렸냐고 묻기만 했다.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기에 나는 늦은 사춘기가 온 여고생이었다. 나도 내 친구처럼 예쁜 가방 사달라고, 좋은 학원 보내달라고 떼쓰고 싶다 라는 생각으로 가득한 하교길이었는데 집에 도착하니 나를 반기는 것은 내동댕이 쳐져있는 우리 가족의 사진들이었다. 


없는 살림이지만 엄마는 사진이 찍고 싶었다. 당시의 사진은 부유의 상징이었어서 그랬을까. 엄마에게 사진은 꿈이었고, 남들처럼 살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특히, 그녀에게는 없었던 '어린 시절 사진들'을 딸들에게는 갖게 해주고 싶었던 마음이 사진에 대한 로망을 키웠겠지.


하지만 30년전쯤의 카메라는 피아노나 컴퓨터처럼 고가의 제품이어서 가가호호 갖고 있기 어려웠는데, 그 와중에도 그녀는 방법을 찾았다. 소유하지 못하면 빌리면 되지!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는 법. 이런 수요를 틈타 동네 사진관에서는 카메라를 하루씩 대여해주는 서비스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카메라를 빌려 소풍이나 가족 모임에서 사진을 찍어주었다. 돈은 없어도 기죽는 것은 죽어도 참을 수 없었던 엄마의 디테일한 노력이었다. 


엄마는 늘 입버릇처럼 말했다. "나중에 마루 있는 집에 살면, 티비 다이랑 그 위에 가족사진을 찍어서 걸어놓을 거야"라고. 


지금 생각하면 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데, 그녀에게 '가족사진'은 본인도 가족이 있다는 증명 같은 것이었을까. 다른 집에 늘 붙어있던 백일사진이며, 놀이공원에 가서 가족끼리 찍은 사진이 걸려있는 모습이 늘 부러웠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고생 끝에 변해버린 변형된 얼굴이 늘 컴플렉스 였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사진이며, 큰 딸의 유치원 소풍에 따라가서 찍은 사진이며, 다른 가족들처럼 번듯하게 옷을 차려입고 봄 꽃 만발한 창경궁에가서 네명의 가족이 나무 앞에서 찍은 가족 사진 같은 것들을 찍어주고 인화하여 앨범으로 잘 모아두었다. 구정물에 손담그며 남의 집 허드렛일을 하는 이유는 어쩌면 이렇게 평범하고 일상적인 행복을 나도 해보고 싶다는 엄마의 꿈과 희망을 담은 하루하루였겠지. 


빨간색 벨벳 표지의 촌스럽지만 그토록 바라던 웨딩드레스를 입고 예쁜 화장을 하고 현대예식장에서 올린 결혼식 사진 앨범, 얻어입힌 옷도 남부럽지 않게 보이려 하나하나 정성스레 다려입힌 큰 딸의 모습이 담긴 앨범, 살림이 조금 나아져 원없이 찍어준 유치원 재롱잔치며 졸업식 사진 같은 것들이 담긴 둘째 딸 앨범까지. 가족의 앨범이 늘어나는 것은 즉 그녀의 희망을 현실로 만든 성취의 산물들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쯤이었을 때, 드디어 우리집만의 카메라가 생겼다. 그 카메라로 엄마는 학교 입학식과 졸업식 사진도 찍고, 걸스카웃 활동하는 사진도 찍어주었고 동네 사진관에서 인화된 사진을 앨범에 차곡차곡 넣었다. 엄마가 바란 것은 정말 일상적이고 평범해서 행복인줄도 몰랐던, 하지만 지금은 사무치게 그리운 순간들이라는 것을 나이가 들면서 더 진하고 아프게 느끼고 있다.


그런데 그 귀한 앨범이 집앞 쓰레기 더미에 버려져있다. 그녀가 아끼던 귀한 그릇세트들과 함께. 물론 완전히 쓰레기 봉투에 넣어진 것은 아니었고 마당 개집 옆 검정봉다리에 아무렇게나 쌓여있었다. 본인이 이렇게 힘들다고, 과거의 흔적을 없애고 세상을 등지기 위한 준비과정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사인이었는데.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나는 그릇은 모르겠고 사진 앨범은 어떻게든 챙겨서 어딘가 두었는데, 다음 집으로 이사를 가며 내가 숨겨둔 것을 찾아서 그녀는 그것들을 모두 버렸다.


모든 것이 끝나고서야 퍼즐 맞추듯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이미 늦어버린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보고싶어도 그녀의 젊은 시절과 결혼식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볼수가 없다. 그녀는 그렇게 우리와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토록 열정적이고 의욕적으로 살던 그녀가 모든 힘을 잃고 세상을 등질 준비에만 힘을 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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