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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일기 JooTANDARD
Mar 17. 2024
부처님과 하나님도 필요 없다고 했다
희망도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으니까
남편이 사기로 퇴직금을 모조리 잃고, 나라도 정신 차리고 딸들 공부를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녀가 차린 식당. 다행히 식당은 입소문을 타고 잘되었다. 이거 아니면 답이 없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사활을 걸고 열심히 했고, 무엇보다 그녀의 손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김치며 반찬이며 정성스럽고 맛있었다. 게다가 매일 반찬이며 국이며 생선조림의 메뉴가 바뀌는 백반이 가격까지 저렴하니 매일 안 먹을 이유가 없는 맛집이 되었다. 매일 찾아 먹는 사람들이 늘었고, 30년 전에 이미 줄을 서는 식당이 되어 그 구역의 직장인들을 넘어 다른 지역에서도 차를 타고 와서도 먹는 맛집이었다.
덕분에 우리 집은 조금씩 가세가 좋아지기 시작했고, 엄마아빠의 지갑에는 늘 만 원짜리며 수표가 꽉 차있었다. 비싼 영어과외도 턱턱 시켜주고 당시 인기절정이었던 소나타 쓰리 자가용도 현금으로 모두 지불했다는 우리 집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던 시절이었다. 엄마는 얼마나 신이 났을까? 본인의 가게에서 본인이 생각했던 일들이 이렇게 좋은 반응으로 우리 가족을 윤택하게 먹여 살릴 수 있다는 현실이 참 좋았겠지.
행복한 순간을 위해 엄마는 매일 아침 기도했다. 엄마는 불교신자였는데, 안방에 걸려있는 절에서 준 달력 앞에서 출근 전에 늘 기도를 했다. 머리도 예쁘게 손질하고 입술에 루즈도 바르고 가장 예쁜 모습으로 점심 장사를 하기 전에 정성스럽게 가슴 앞에 합장을 하고 간절하고 간절하게 오늘 하루도 무사하길 기도했다.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었다.
때가 되면 절에 가서 등을 켜고 초도 켜고 또 간절히 간절히 기도를 했다. 어떤 날은 충청남도에 있는 절에 가서 1박 2일로 기도를 하고 오기도 했다. 엄마는 그렇게 우리 가정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몸과 마음으로 항상 정성스러운 공을 들였다.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는데..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외도를 밥 먹듯 했고 언니는 비행청소년이 되어 엄마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결국 엄마는 뇌졸중으로 14시간이 넘는 뇌 수술을 4차례나 받으며 생사를 오가는 시간을 10여 년에 걸쳐 보냈다.
그 아픈 기간 동안에도 가끔은 절에 가고 싶다고 해서 나는 엄마를 데리고 마을버스를 타고 절에 가서 엄마가 기도할 수 있도록 했다. 엄마는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기운 없는 모습으로 짧게 기도를 하고 집에 와서는 내내 잠을 잤다. 잠을 자며 옆에 카세트 테잎으로 반야심경 같은 것들을 들으며 심신안정을 하려 부단히 노력했지만 어느새 그 노력도 바램도 없는 건조한 환자로 눈에 생기를 잃고 있었다.
언젠가 절에 가자고 내가 먼저 제안했을 때, 엄마는 가기 싫다고 그런 거 필요도 없다고 맥없이 말하고 또 잠을 잤다.
가서 기도라도 하면 좋으련만.
그때 알았다. 기도도 바램도 모두 조금이라도 희망이 보일 때 하는 것이라는 걸.
그녀가 그렇게 꿈꾸던 윤택한 가정, 사람들이 많이 찾는 식당은 점점 사라지고 싸움과 욕설이 오가는 집안과 금고에 돈이 말라가는 식당만 있었다. 그 과정에서 제일 절망스러움을 느꼈던 것은 그녀였다. 그녀가 바란 건 대단한 것이 아니었는데 부처님도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근데 부처님도 하나님도 잘못한 게 없겠지. 그리고 그녀도 잘못한 게 없지.
우리 가정을 지킬 수 있었던 건 그녀 혼자가 아니라 나머지 3명의 가족도 함께였어야 했으니까.
그때 그녀를 외롭게 혼자 두고 당신들은 행복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