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산 May 28. 2024

맨손으로 비둘기 잡는 괴력

그 아이는 늘 흰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 아이를 보면 이상하게도 웃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곱슬 머리에 숏컷을 해서 그런지 구불렁 거리는 머리카락들이 다 밖으로 뻗었다. 

그런 머리카락 밑으로 까무잡잡한 얼굴에는 살이 하나도 없어서 퀭 하다.

그리고 새하얀 이.

누군가 그 아이에게 말을 걸면

눈 밑 볼록 튀어나온 부분이 더 튀어나오며

흰 이는 입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큰 키 덕분에 그 아이는 더 말라 보였다. 

큰 교복은 선배들에게 물려받았는지 마른 몸이 옷걸이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우리 학교는 서울에 있는 덕수궁으로 봄소풍을 간단다. 

다른 학교는 자연농원으로 간다는데, 에이 우리 학교는 무슨 덕수궁이람.

거기 볼게 뭐가 있다고.

비둘기나 많지.

날아다니는 쥐라고 불리는 비둘기. 

우웩. 

생각만 해도 더럽다. 

담임선생님이 은밀히 나를 불러 말씀하셨다.

모든 조에서 그 아이를 거부했으니 우리 조에서 데리고 다니라는 것이었다. 

나야 상관없지만 우리 조원들은 어떨지 모르겠다. 

사실 뭐 선생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시니 싫다고 할 다른 방도도 없었다. 


드디어 소풍날이었다. 

한 시간 남짓 버스를 타고 드디어 덕수궁에 도착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멀미를 하지 않았다. 

어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받은 유니콘 판박이를 팔에 붙이고 왔더니 

왠지 다들 내 팔의 이 판박이를 보고 예쁘다 하는 것 같다.

으히히 기분 좋다.

비둘기만 잔뜩 있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막상 오니 뭐 좋긴 하네.

조별로 함께 다니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우리는 그 아이를 챙겼다. 

그 아이는 자꾸 우리와 함께 다니려 하지 않고 개인행동을 했다. 

그 특유의 웃음을 지으면서 말이다. 

"야! 같이 다녀 쫌!"

"히힛.히힛."

겨우 끌고 와서 우리 조 가까이 데리고 왔다. 

같이 좀 다니자.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 아이는 갑자기 뛰었다. 

그것도 비둘기 떼들이 구구구구 하며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먹느라 정신이 빼앗겨있는 쪽으로. 

쟤가 달리기가 저렇게 빨랐다고?라는 생각이 끝나기 전에 그 아이는 벌써 날아오르는 비둘기들에 에워싸여 있었다. 

정신없이 무언가를 먹다 놀란 비둘기들이 푸드덕거리며 급하게 날아올랐다. 

갑작스러운 그 아이의 공격에 비둘기들의 날갯짓이 굼떠 보인건 기분 탓일까.

그 아이는 갑자기 공중에 손을 뻗어 날아오르려던 비둘기 중 한 마리의 다리를 낚아챘다.

꺄악! 꺄악!! 

그 아이를 보던 우리는 모두 순식간에 공포를 느꼈다. 

맨손으로 비둘기를 잡는 사람이라니!

비둘기는 필사적으로 그 아이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미친 듯이 날갯짓을 해댔고,

그 아이는 그런 비둘기의 다리를 꽉 잡고는 전혀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제발 비둘기를 놔줘!

우리는 거의 오열하다시피 그 아이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 아이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왜? 히힛"

꺄악! 꺄악! 제발!!

우리가 거의 애원하듯 오열하자 그 아이는 특유의 미소를 멈추고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듯 갸우뚱하더니 비둘기를 놓아주었다.

그리고는 손을 툭툭 털고 우리 쪽으로 왔다. 

비둘기를 잡았던 그 손에 자꾸 눈길이 갔다.

에비..

어쩐지 가까이 있기 뭔가 좀 그렇다.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우리와 달랐던 그 아이. 

학년이 바뀌며 전학을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소식이 궁금하지는 않았지만

그 아이의 손아귀에서 푸드덕 거리며 벗어나려 발버둥 치던 비둘기와 

아무렇지도 않게 웃던 깡마른 그 아이의 모습.

너무나 선명하게 자꾸만 생각난다.


작가의 이전글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