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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례온 Sep 26. 2022

나는 너의, 너는 나의,

그토록 방황했기에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있었다

언젠가 네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자랑스러우면서도 불안하다고. 내가 나의 목표를 향해서 달리는 뒷모습이 대단해 보이다가도, 내가 너로부터 달아나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조급하다고.


나는 그 말을 듣고 한참을 벙쪄있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내게만 몰두하는 사이 홀로 두려움과 싸웠을 네게 너무 미안해서, 함부로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만약 너를 사랑하는 내 마음을 꺼내어 보여줄 수만 있다면 당장 그리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서로를 꼭 껴안더라도, 매일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더라도, 이 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다.


보이지 않는 사랑에 자신을 맡기고, 만질 수 없는 믿음에 영원을 맹세한 사람은 한없이 강하다가도 한없이 약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잊고 있었다. 늘 네 곁에 있을 거라는 상투적인 위로는 너에게 닿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너는 아마 나를 빈틈없이 안고 있는 와중에도 자신을 두고 달려 나가는 내 뒷모습을 상상했을 것이다.


울 것만 같은 눈으로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네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아서 한참 동안 단어를 고르고 또 걸러서 이렇게 대답했다. 인생의 궤도는 한 방향으로만 뻗어나가는 직선이 아니라고. 만약 우리가 하나의 직선 위를 따라가는 사람들이라면 내가 앞서 나가는 것이 곧 너와 멀어지는 것을 뜻했겠지만, 그건 진실이 아니라고.


인생은 경계 없이 펼쳐진 벌판 혹은 백지에 가깝다. 방향도, 거리도, 정해진 것 하나 없이 내 마음대로 걷고 달리고, 구르다가도 쉬어가면서 남긴 발자국들을 선으로 이어놓은 것이 우리의 삶이고 흔적이다. 비록 너와 나는 아직 제대로 된 사회생활도 못해본 풋내기들이지만, 우리가 그려온 그림이 뻣뻣한 직선보다는 어린아이가 크레파스로 그린 듯 삐뚤빼뚤한 곡선에 가깝다는 건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구불구불한 선을 그리던 중에, 어디로, 얼만큼 가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이 도화지 위에서 너와 나의 선이 만났다는 건 실은 엄청난 운명이라는 것도 느낄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그려온 곡선을 위에서 바라본다면 아마 형태를 알아보기 힘든 엉터리 그림처럼 보일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달려가게 된다면, 내가 너에게서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우리의 그림은 완성되지 않았다. 사랑을 상징하는 하트 모양도, 길가에 피어있는 아주 작은 들꽃도, 하다못해 너와 나의 이름 석자조차도 곡선 없이는 완성할 수 없으며, 선이 완전히 멈출 때까지는 그림의 정체를 알 수 없다. 직선 하나로 그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만약 너와 나의 인생이 각기 다른 직선이었다면, 우리는 단 한 번의 교차를 끝으로 다시는 만나지 못하고 영영 멀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아직도 내 옆에 있고, 나는 지금도 너를 사랑한다. 우리의 그림이 어떻게 완성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리저리 방황하던 나의 선이, 제자리를 맴돌며 원을 그리던 너의 선을 만난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우리의 도화지를 맞댄 채, 함께 뛰놀며 서로에게 흔적을 남기는 매 순간이 행복하다. 그래서 나는 너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로부터 도망가고 있는 게 아니라, 너의 백지를 나의 선으로 채우고 있는 거라고. 그리고 마침내 너와 내가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그날에, 너는 나의 일부이자 전부가 되어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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