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쪽 남자 선생님 Aug 05. 2023

5년 차 회사 막내는 어때요?

내가 뭘 해도 바뀌지 않는 것들에 내가 취하는 태도

나는 매년 부캐를 만든다.








누구나 신입사원일 때가 있다. 누구나 막내일 때가 있다.


낯선 사무실의 공기, 처음 보는 사람들, 날 뽑아준 사람의 태세 전환, 그려지지 않는 다음 날, 주는 업무는 다 받게 되고 나한테 나가는 업무는 없는, 다른 사람들의 모든 사회생활이 나와 연관이 되는, 듣고 있지만 들리지 않는


기대감과 설렘 그리고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는 그런 때가 누구에게나 있다.


첫 시작을 할 때 그렇고 또 끝이 보이지 않을 때 그렇기도 한다.


우리 팀의 인원은 20명 정도 된다. 그중 나는 5년간 막내였다. 그리고 올해 6년 차이다. 입사순으로 막내를 탈출했을 뿐 업무적 막내임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진정한 막내 탈출은 업무적 막내를 탈출해야 탈출이라고 생각한다.


군대에서도 군생활 2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1년 반을 막내였는데, 사회에 나와도 똑같았다.


업무적 막내를 5년 동안 했었다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받는 업무는 끝이 없고 나가는 업무는 없다. (?)

2. 대장님이 소리 지르면 다 못들 은척하고 나를 쳐다본다.

3. 입사순으로 나보다 나이 어리지만 선배가 두 명이나 존재한다.

4. 지금도 여름휴가를 제일 마지막에 낼 수 있다.

5. 나에게 사정이 생겨서 연차를 내서는 안됨을 선배들이 강조했다.

6. 위에서부터 어떤 업무에 안 하겠다 하면 그대로 다 안 하겠다 하다가 나한테 오는데 그걸 처리할 사람이 내 뒤로는 없다. 그럼 그게 내 것이다.



현재 6년 차에도 입사순 막내는 탈출했지만 업무적 막내임에도 틀림없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내 뒤에 한 명이 생겼는데도 여전히 업무는 나에게 들어오기만 한다. (?????)

2. 회사에선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 일을 많이 준다는 사실을 늦게 깨달았다. (ㅠㅠ)

3. 일부러 일을 못하는 척, 안 하겠다고 하면 내 뒤에 한 명에게 그 일을 줄까 싶어서 테스트해봤는데, 그 일은 대장님이 하시고 대장님이 너에게 적합한 일이 있다면서 다른 일을 두 개 주심. (ㅠㅠ..)

4. 내 뒤에 있는 한 명은 혼자 일을 안 하고 나에게 물어 일을 처리한다. (????)



글을 적다 보니 눈물이 앞을 가려 슬픈 내용은 그만 적고 본론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나는 병원에서 근무한 경력이 전 직장 합쳐 총 8년 정도 된다. 현 직장에서만 6년이다.


나보다 경력도 4년 이상 적고 원무 업무 자체도 모든 파트에서 해본 게 아니고 접수 수납만 할 줄 아는 직원도 나보다 선배다. 아 물론 나이도 나보다 2살이나 어리다.


특히, 병원 원무팀의 특성상 남자보다 여자들이 훨씬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내 선배들은 모두 여자분들이다. 이분들도 남자 후배를 다루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나 또한 이해도 안 되고 납득도 안 되는 험란한 직장 생활 속에서 스스로 괜찮고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고생하는 시절에 했던 업무들과 사회생활들은 앞으로 내가 나아가는 직장 생활에 피와 살이 된다고 했는데, 정말이지 피와 살이 아닌 업무와 능력만 뒤룩뒤룩 쪄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능력자가 되었다.


내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슬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내 뒤에 있는 한 명은 남자 직원이지만 본인 할 것만 한다. 아주 잘하고 있는 친구다. 사회생활은 그렇게 죽은 듯해야 된다고 하는데 나는 못해서 이렇게 되었다. 이것은 다른 의미로 내가 능력이 없는 거고 그 친구가 능력이 있는 거다.


어찌 되었든 간에 나는 스스로 모든 걸 안 해야겠다 보다는 모든 걸 해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도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막내 생활을 이겨내기 위해 찾은 방법은 '부캐'였다.


현 직장에 와서 2년 차부터 부캐를 만들기 시작했으니까, 벌써 6년 차니까.. 나의 부캐는 다섯 개다!





내 막내 생활에 도움을 주었던 부캐들을 간단하게 소개해주고 싶다.


2년 차 부캐 - 예스맨 캐릭터

3년 차 부캐 - 싹싹하게 사람들과 관계하는 캐릭터

4년 차 부캐 - 내가 가진 취미를 회사에 활용하는 캐릭터

5년 차 부캐 - 퇴사 위기에 빠졌지만 잘 이겨낸 긍정 캐릭터

6년 차 부캐(현재) - 안남쌤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힘든 생활들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부캐를 만들고 그 캐릭터에게 내가 그 당시 힘든 부분을 이겨내기 위한 특성들을 주입시켰다. 그리고 내가 그 캐릭터가 되어보는 것이었다.


1년 차 때는 부캐고 뭐고 정신 못 차리면서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뚜들겨 맞기 바쁠 때라 그런 개념은 없었다.


정신 차려보니 2년 차가 되어있었고, 직장 생활이 거의 그렇듯 2년 차 막내 때는 'yes'만 했다. 그때 내가 예스맨을 했던 이유는 그 당시 내 최측근들이 조언을 해준 것이 회사 막내 때는 무조건 '네'라고만 답하고 뛰어다니라고 해서였다. 예스만 하다가 남의 일까지 다 알게 되어버렸다. 이때부터 내 업무의 폭발이었을까?


정신없이 니 일 내 일 안 가리고 일만 하다 3년 차가 되었다.


3년 차 나의 부캐는 싹싹하게 동료들과의 관계를 갖는 캐릭터였다. 처음엔 평소엔 말도 안 걸고 쳐다도 안 보던 주변 동료들에게 먼저 아침 인사를 다짜고짜 건네는 것으로 시작했다. 조금씩 서로 인사를 하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나를 생각해 보기 시작하는 계기도 됐다. 나는 술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다른 선배들이 본인들끼리 술 약속을 잡는 수다를 떨 때 옆에서 듣고 있다가 "저도 껴주세요"라고 용기를 내서 말했었다.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이랑 사적인 자리에서 만나면 또 다른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을까 싶어서 그렇게 했었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나의 피로도가 높은 일들이었고 오래가지 못했다.


그렇게 사람들과의 관계를 좋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4년 차가 되었다.


4년 차의 내 부캐는 내가 가지고 있는 취미, 내가 잘하는 것, 업무 외에 내 개인적으로 관심 있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업무에 적용시켜 보거나 혹은 같은 부서 동료나 타 부서의 사람들까지도 관계를 확장시킬 수 있게 사용해 보는 노력을 했었다. 나는 직장과는 별개로 사진작가로 개인적인 활동을 했었고, 직장에 들어가기 전에 스냅사진 스튜디오 사업을 시작해 볼까 고민도 했었던 사람이다. 또 독서를 매우 좋아하고, 자연을 좋아하고 특히 숲과 나무, 식물들과 같은 초록한 자연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처음에는 내가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사진들이 많으니까, 다른 동료들이 사진이나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만 그 대화에 껴서 이야기를 했었다. 카메라에 대해 알려주기도 하고 사진을 잘 찍는 방법에 대해서도 전수해 줬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사진을 잘 찍는다는 소문이 회사 내에 돌아서 다른 부서에 있는 내 또래의 선생님들과 사진으로 대화하게 되는 계기도 되었었다.


난 개인적으로 이때 내 회사 생활 중 가장 행복하지 않았나 싶다. 역시 사람은 회사에 다니는 이유가 급여 말고 다른 것들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자아실현을 하면서 즐겁게 보내다 보니 어느새 5년 차가 되었다.


5년 차의 내 부캐는 앞으로 몇십 년 동안 해야 하는 끝나지 않는 감정 노동에 대한 막막함으로 가득 찼고, 내가 5년 동안 이 사람들과 일을 하면서 실적도 보여주고 능력도 보여주었지만, 그런 것들과는 별개로 내가 후배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선배 선생님들의 잔소리와 업무와 관련 없는 지적들과 같은 터무니없는 부정적인 감정들에 휩싸여 감정적으로 매우 힘든 해를 보냈다.


이때 내가 했었던 것들은 부정적인 감정들에 스트레스만 받을게 아니라 정면으로 맞서보는 것이었다. 객관적으로 나를 생각해 보려고 노력했고, 나한테 하는 잔소리들에 대한 근원을 찾아서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근원은 찾지 못했고, 그 노력 과정에서 나를 부정적인 감정에서 꺼내는 방법들에 대해 찾을 수 있었다.


동료들과 선배들 그리고 회사를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내가 괜찮아지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다. 오히려 바꿀 수 없는 것을 인정하고 나니까 내 마음은 편안해졌다.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잔소리도 업무와 관련 없는 명령이나 지시들도 나를 화나게 하거나 우울에 빠지게 할 수 없었다.


그때 했던 욱하는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은 몇 개 있다.

1. 잔소리를 들을 때 두 눈을 감고 30초 동안 명상하기

2. 상대방이 나에 태도에 대해 지적했을 때 나는 그 상대방에게 "선생님 일이 많이 힘드시죠?"라고 되물었다.

3. 업무를 왜 그렇게 처리했냐는 핀잔에는 "제 행동에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라고 그냥 뱉었다.



그렇게 나 자신을 다른 공격들에 지키는 방법에 대해 훈련하고 노력하다 보니 어느새 올해가 되었다.


올해 내가 정한 부캐는 '안남쌤'이다.


나는 올해 정한 안남쌤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부캐를 만들지 않아도 되었다.


내 작가명을 안쪽 남자 선생님이라고 정한 이유기도 하다.


안남쌤은 '안쪽 남자 선생님'을 줄인 말로, 이 안쪽 남자 선생님이라는 말은 나를 입사부터 작년까지도 PTSD를 만든 말이었다.


다른 동료들이 저 멀리서 무슨 응대만 하면 "저기 안쪽 남자 선생님한테 가세요"라고 5년을 넘게 했기 때문이다.


환자분들의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입원이나 퇴원 관련된 거나 미수금 관련된 것 혹은 그 이외의 잡다한 업무들로 판단하면 무지성으로 "안쪽 남자 선생님한테 가세요"라고 응대를 해왔었고, 그 말은 들은 환자들은 어김없이 나에게로 와서 내 일이 아닌 것들 조차도 모두 내 일이 되었었다.


그렇게 내게 고통을 주었던 안쪽 남자 선생님이라는 말을 이제는 그 고통에 당당히 마주하여 내 삶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으로 활용해 보고자 결론 내렸다.



그래서 난 더 이상 일이 많은 것도, 동료들이 나에게 감정적으로 힘들게 하는 것도, 부당한 대우를 받게 돼도,


난 안남쌤으로 살며 해답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가장 큰 고통에 내 행복에 대한 키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에 대해 정면으로 맞서고 그 속에서 나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회사 생활 감정 일기 - '당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