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돈 받고 일하는 직장인
그 무렵 나는 원무팀 외래 접수창구에서 접수 업무를 하고 있었다. 원무팀은 고객이 병원에 진료를 보러 와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대표적인 병원 부서다. 외래 접수창구는 고객과의 응대를 통해 고객의 인적사항을 파악하고 입력하여 모든 진료 과정에 고객 인적사항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환자가 호소하는 내용을 토대로 진료를 봐야 하는 적합한 진료과를 판단하고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접수 과정에서는 고객을 다소 귀찮게(?) 할 수밖에 없다. 성함, 생년월일, 거주지 주소, 연락처와 같은 기본 고객 정보뿐만 아니라, 어떤 증상을 호소하는지, 교통사고가 나서 온 것인지, 타 병원에 의뢰되어서 왔는지 등 병원을 온 이유가 고객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이것들을 진료 전 접수 과정에서 파악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접수창구에서 하는 고객 응대에서는 많은 것을 고객에게 물어야 하고 또 들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많은 감정 또한 오고 가는데, 고객에게 묻는 말에 나의 감정도 있고 대답하는 고객의 말에 감정도 있다. 또, 거꾸로 고객이 나에게 묻는 말에 감정이 있고 이것에 답하는 나의 말에도 감정이 있다. 내가 생각했을 때, 대부분의 고객들은 내가 주는 정보를 듣기보다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호소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한다. 내 입장에서는 고객이 호소하는 이야기에 대부분은 불필요한 정보라 계속해서 들어주기 힘들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고객은 개인 한 명이지만, 나는 그 한 명 뒤로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한 명의 고객이 호소하는 이야기를 더 들어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는 다음 고객을 위해서라도 응대하고 있던 고객에게 “말 끊는다, 말도 못 하게 하냐”와 같은 불만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일방적으로 응대를 마치게 된다.
나와 고객의 관계에서 각자의 입장은 매우 다르다. 고객 입장에서는 나를 바라볼 때 개인 대 개인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내 입장에서는 고객을 볼 때 개인 대 다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고객이 적은 날 보다 많은 날일수록 더욱 크게 든다. 대기가 많은 상황일 때 고객들은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거예요!”, “여긴 업무 안 해요? 왜 번호를 안 불러요?”와 같이 자기 자신들의 입장에서만 이야기한다. 반면, 나는 고객 대기가 없을 때는 느끼지 못하다가 고객 대기가 많아지면 빨리 응대를 마치고 다음 고객을 호출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고객 대기가 길어질수록 더 강하게 느껴지는 고객들의 싸늘한 시선들과 공격적인 말투들에 불안함과 조급함을 느끼면서, 나 자신도 모르게 다소 감정적인 말투와 표정으로 고객을 응대하게 된다. 특히, 호출한 고객을 응대 중인 상황인데도 번호 순서를 지키지 않고 호출하지 않은 번호표부터 들이밀며 본인부터 해달라는 고객에는 더욱더 감정적인 말투와 표정으로 말하게 되곤 한다.
솔직하게, 그럼에도 ‘그런 이유는 변명이다 ‘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돈 받고 고객 응대하는 부서 아니냐?”, “그러라고 돈 주고 고용한 거 아니냐 “라고 말해도 할 말이 없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근무하면서 내가 환자에게 들은 수많은 말들 중 기억나는 말이 “돈 받고 하는 일이 그거면서 그따위로 고객한테 응대해!? 고객이 해달라면 해줘야 할 거 아니야! 니들 그런 일 하라고 앉아 있는 거 아니야!? 였다.(더욱 심한 폭언이었지만, 자체 심의를 준수하려 노력함)
난 그 고객에게 최선을 다해 응대했고 고객이 원하는 부분을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해주기 위해 노력했고 그런 무리한 요구를 존중했다. 고객은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요구할 수 있고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노력과는 별개로 돌아오는 폭언과 고함, 욕설은 직원이기 전, 하나의 인격체인 나를 매우 아프게 한다.
나도 친절하게 한 명, 한 명이 모든 고객이 만족하는 응대를 하고 싶다. 고객의 모든 말을 들어주고, 모르거나 헷갈려하는 것들은 하나하나 친절히 알려주며, 마치 개인과 개인이 대화하는 것 같은 친밀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하지만 개인 대 다인을 응대해야 하는 특성이라는 것이 내 노력과는 별개로 고객에게 불만족을 느끼게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업무 시작 전,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을 하고 톤을 올려서 말하는 연습을 한다.
나는 ‘감정노동자’다.